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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옥희의 영화>는 보지 못할 것 같았습니다. 추석 시즌에 개봉하는 영화들이 너무 많은
관계로 과연 이 작품까지 차례가 올 것 같지는 않았지요. 그런데 금주 개봉작이 전무하고
때마침 한주만에 와이드 개봉작들을 처리하고 나니 홍상수 감독의 신작을 만날 수 있었네요.
이 작품은 이제껏 홍상수 감독의 작품 중에서 가장 이질적인 작품이 아닌가 합니다. 형식은
네 개의 에피소드로 풀어냈지만 이건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얽히고 설켜 있으며, 같은
인물인 듯 하면서도 조금씩 다른 인물을 연기하는 배우들의 모습을 보니 종종 새로움과
혼란을 동시에 겪게 되었습니다. 아마도 이런 작품을 좀처럼 만나기 힘들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습니다. 영화에 대해 만족을 하든 하지 않든 간에 분명 새로운 화두나 생각거리를
던져줄 작품인 건 확실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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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평론가분이 홍상수 감독의 영화를 여름과 겨울로 분류하는 걸 봤습니다. 저 역시
홍상수 감독의 여름 영화들이 더 취향에 맞는 것 같더군요. 특히나 근래 <해변의 여인>이나
<잘 알지도 못하면서>를 무척이나 흥미롭게 봐온 입장에서 <하하하>까지 즐거운 관람이
되었으니까요. 그런데 <옥희의 영화>는 겨울영화였습니다. 뭐 배경이 겨울이기도 하지만,
다른 영화들처럼 본능이 꿈틀대는 여름영화가 아닌 본능과 이성, 그리고 감정이 이상한
곡선을 그리는 겨울영화란 느낌이 들더군요. 얼핏 생각해도 여름영화는 결말이 어느 정도
청량한 느낌이 드는 반면, 겨울 영화는 쓸쓸한 기운이 우세한 것이 사실인데 이 작품 역시
쓸쓸함과 씁쓸함이 동시에 느껴지는 작품이라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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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핏 네 개의 에피도스들은 각 인물이 모두 동일인이며, 시간의 배치만 바꾼 작품으로
여겨지다가도 어느 순간 다른 인물로 느껴지기도 합니다. 심지어 다른 인물과 시간대를
표현함에 있어서도 동일한 장소를 배경으로 할 때도 있더군요. 그만큼 이 작품은 보통의
우리 범인들이 생각하는 일반적인 형식으로 만들어진 영화가 아니라서 무척이나 신선하게
다가왔습니다. 보통 홍상수 감독의 영화에서 제가 즐기는 것은 욕망과 본능에 취한 찌질한
남자들을 보는 재미가 일품인데(실제로 종종 표풀하지 못하는 제 자신의 모습인 것 같아
더욱 흥미롭습니다^^) 이 작품은 조금은 다른 노선을 택합니다. 보통은 한가지 사건이나
상황에 대해 다른 인물의 각기 다른 해석을 보는 재미가 있지만 이 작품은 특이하게도
다른 두 가지 상황을 한 사람이 비교하며 보여주는 파격을 선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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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그게 파격까지는 아니겠지만 마지막 에피소드에서 나레이션과 함께 깔리는 상황의
묘사는 종종 뜨끔하다가도 쓸쓸한 느낌도 전하는 묘한 여운이 남습니다. 각각의 남자를
만나고 동일한 장소를 방문했지만 다른 감정을 느끼고 있는 여성의 심리가 건조한 말 한마디
나레이션으로 들리는 순간, 그리고 황급히 끝나 버리는 영화의 엔딩을 보면서 마음이
황망해지기도 하더군요. 마지막을 여성의 나레이션으로 끝냄으로써 이 작품을 여성의
작품으로 느껴지게 만들었습니다.
영화를 자세히 따올려 보면 결국 그 사람은 그 사람이었고, 그 얘기는 저 얘기였다는 식으로
정리를 할 수도 있을 것 같은데...모르겠습니다. 확신이 서질 않네요. 하지만 이 작품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스토리가 아니라 형식인 것 같습니다. 정녕코 이 영화는 <옥희의 영화>라
할 수 있는 것 같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