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 산행의 적이 비라면 겨울산행에서는 바람과 눈이다. 방수·방풍용 덧옷은 산행에서 언제 만날지 모르는 악천후를 대비해 계절에 상관없이 항상 배낭에 넣어 다녀야 하는 등산의류다. 최근엔 방수와 방풍 그리고 땀을 배출하는 투습 기능까지 갖춘 첨단 소재인 고어텍스를 사용한 제품이 시중에서 각광받고 있다. 방수·방풍용 덧옷 중 고어텍스 제품으로 된 오버재킷을 중심으로 기능과 고르는 요령을 알아본다.
1980년대 초만 하더라도 방수·방풍용으로 산악인들이 즐겨입던 의류는 일명 ‘아노락’이라 불렀던 덧옷이었다. 흔히 빨강색 아니면 파랑색이 주류를 이뤄 멀리서도 눈에 쉽게 띄었는데, 가슴 한가운데에 큼지막한 다용도 주머니가 있고 모자가 부착된 이 옷은 위로 입고 벗어야 하는 다소 불편한 형태였다.
아노락(anorak)은 사전적 의미로 말하면 ‘모자가 달린 방한용 코트’인데 산에서 비옷이나 바람막이 옷 혹은 심설등반이나 빙설벽 등반시 기능의 구별없이 두루 사용하였다. 하지만 아노락은 바람을 막아주는 것 이상의 기능을 발휘하지 못해 방수·방풍 의류로는 아주 원시적인 단계인 셈이었다.
흔히 방수·방풍 의류의 상·하의를 가리켜 ‘오버트라우저’라 부르고 있는데 이는 잘못 사용된 용어다. 오버트라우저(overtrouser)는 하의인 덧바지를 말하고, 상의는 오버재킷(overjacket)이라고 해야 맞는 표현이다.
방수·방풍용 덧옷의 혁신 신소재
고어텍스 여름 산행의 최대 적이 비라면 겨울산행에서는 바람과 눈이다. 덧옷은 사시사철 산행에서 언제 만날 지 모르는 이런 악천후를 대비해 항상 지참하고 다녀야 할 등산의류다. 그러나 덧옷을 입고 빗속을 걸어본 사람이라면 그 한계성을 익히 경험했을 것이다. 몇 시간 이상 비를 맞으면 속옷까지 다 젖어버리는 제품들이 허다하다.
반대로 방수가 너무 좋은 나머지 체내에서 발생하는 땀을 방출하지 못해 역으로 몸이 젖어버리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한다. 또 겨울이라면 바람막이 효과는 있을지라도 눈이라도 내리면 천 자체가 얼어버려 몸을 전혀 보호해주지 못하기도 했다. 그래서 동계산행 때는 다운을 넣은 파카를 가지고 다녔는데 파카를 착용하고 활동하기란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혹 젖어버리기라도 하면 심설등반에서 이를 녹이기란 불가능했다. 방수가 되고 방풍도 되면서 쾌적함을 줄 수 있는 신소재 ‘고어텍스(Goar-tex)’의 출현은 그래서 등산 및 스포츠 의류에 일대 혁신을 가져왔다. 고어텍스의 방수투습성의 비밀은 PTFE(폴리테트라 플로로 에틸렌)라 불리는 고어텍스 막에 있다.
PTFE는 1평방 인치당 90억개 이상의 기공을 가지도록 극히 얇게 가공된 불소계 수지막이다. PTFE 기공의 크기는 눈이나 물의 분자에 비해 약 2만배가 작고 땀과 같은 수증기 분자보다는 약 700배 가량이 커서 결국 비나 눈은 차단시키면서 인체의 활동시 생기는 땀은 밖으로 방출시킨다는 원리를 지닌 특수소재다. 고어텍스란 이름은 이 소재를 개발한 미국의 고어박사에서 이름을 따온 것이다. 따라서 국내에서 판매되고 있는 ‘고어’류의 모든 제품은 미국 고어사로부터 원단을 제공받아 생산하고 있다.
고어텍스 원단하면 방수 투습성을 지닌 이 수지 막을 나일론에 접착시키는 방법인 일명 ‘라미네이팅 공법’으로 만들어진 천을 말한다. 등산제조업체의 광고 상품목록을 보면 ‘2PLY 고어텍스’ 라고 소개하는 것이 바로 고어사가 제공하는 기본 2중 원단을 말한다. 여기에 흡습성과 보온성을 지닌 니트류의 소재를 덧붙여 한단계 더 발전시킨 것이 3중원단 ‘3PLY 고어텍스’다. 2중원단과 3중원단은 그림 1에서 보는 것처럼 단면으로 살펴보면 이해가 쉽다.
그러나 고어텍스라고 해도 하루종일 비를 맞거나 눈에 노출되면 어깨나 등판 등의 봉제선을 통해 수분이 스며들어오기 마련이다. 또 세탁을 한번하고 나면 방수 투습 기능이 현저하게 떨어진다는 게 입어본 사람들의 얘기다. 이런 경우 제품이 라미네이팅 공법으로 만들어진 원단인지 의심해봐야 한다.
흔히 수지를 천에 직접 뿌리는 코팅공법의 고어텍스 원단은 이런 기능저하 현상이 심각하게 나타난다는 게 전문가들의 의견이다. 그러나 소비자나 등산장비점의 판매원이 제품을 보고 그것의 원단이 라미네이팅 공법에 의한 것인지 코팅 공법에 의한 것인지를 구별해 내기는 불가능하다. 따라서 구입하기 전 전문가의 조언을 얻거나 제조업체가 배포하는 상품 광고목록을 세심히 살펴보는 것이 중요하다.
고어텍스 의류는 일반 품목보다 가격이 2∼4배까지 나가므로 소비자들에게는 아직도 부담스런 가격이다. 고가의 고어텍스에 대항하기 위해 국내외에서는 미크로텍스, 엔트란트, 하이포라, 미크로포어, 바이엑스 등의 소재를 개발했지만 ‘투습성’만은 고어텍스에 현저하게 미치지 못했다. 국내에서도 가격상의 문제로 방수·방풍용 덧옷 같은 극히 한정된 품목에만 적용되어 왔고 소수 전문 산악인들만 착용했던 게 실정이었다. 그러나 소재의 성능이 월등한 만큼 침낭커버를 비롯해 등산화 텐트 모자 장갑 신발 같은 등산장비에도 고어텍스로 만든 제품이 선보이고 있다.
겨드랑이와 팔꿈치가 편해야
활동하기 좋아 오버재킷을 고를 때 원단 다음으로 중요한 점은 활동성이다. 오버재킷은 기본 산행 복장 위에 겹쳐 입기 때문에 활동성에 민감한 영향을 미친다. 겨울 산행시는 기본 복장이 두꺼워 신축성이 없는 오버재킷을 착용한 후 몸놀림이 불편하다면 산행 내내 곤혹스럽기 그지없다.
오버재킷이야말로 품이 넉넉하면서도 활동 기능을 최대한 살린 디자인이 요구된다. 옷은 겨드랑이가 잘 맞고 팔꿈치가 곡선으로 디자인된 것이라야 한다. 팔을 상하좌우로 움직였을 때 옷이 딸려 올라가거나 등이 당기지 않고, 팔을 굽혔을 때 편안하게 느껴지면 일단 합격이다. 오버재킷을 껴입고 조금만 움직여도 겨드랑이에는 땀이 나기 쉽다.
그래 요즘엔 겨드랑이에 지퍼로 통풍구를 낸 제품도 많이 나온다. 소매는 고무줄을 넣은 것보다 벨크로테이프로 처리한 것이 입고 벗기에 한결 편하다. 모자는 필수다. 눈비가 올 때를 대비해 챙이 있는 것이 좋은데 특히 안경을 쓴 사람이라면 유용하다. 뒤통수에는 모자 깊이를 조절할 수 있도록 벨크로테이프나 스토파를 이용하는 조임장치가 있다. 또 모자는 볼까지 가려주는 것으로 고른다.
강풍이 불거나 눈이나 비가 많이 내릴 때 시야를 확보하기 쉽게 만든 제품도 선보이고 있다. 모자는 탈착형이 편리한데 어떤 것은 모자를 접어 칼라에 고정하게 만든 제품도 있다. 활동 정도에 따라 옷의 길이도 선택할 수 있다. 암빙벽 등반이나 스키 등 격한 활동에는 엉덩이를 덮지 않는 것이 편하고, 배낭을 메고 오래 걷거나 심설등반을 할 때는 몸을 충분히 감쌀 수 있도록 엉덩이를 덮는 것을 선택한다.
엉덩이를 덮는 오버재킷의 경우 밑단뿐 아니라 허리에도 조임장치가 들어있으면 옷을 몸에 알맞게 고정시켜 밑에서 들어오는 바람을 막아주는 보온효과도 있고 몸놀림도 한결 편하다. 또한 뒤쪽의 옷길이를 앞보다 조금 길게 설계한 것이 있는데 이는 격한 활동시 몸을 앞으로 굽혔을 때 허리가 노출되거나 혹은 심설등반시 눈이 들어가는 것을 막아준다.
또한 허리 아래 부분에는 바람막이를 만들어 여밀 수 있도록 한 옷이 있는데 한기가 허리로 올라오는 것을 최대한 막아준다. 칼라 안쪽에 플리스와 같은 천 소재를 댄 것은 한겨울에도 목이 차갑지 않아 좋다.
눈비가 곧바로 떨어지는 어깨부위에는 가능한 봉제선이 없는 것으로 선택한다. 주머니 형태도 다양하다. 비가 오거나 눈보라 불어 오버재킷을 입고 산
행할 때는 자주 쓰는 물건을 크고 깊은 주머니 안에 넣어두면 한결 편리하다. 폴라시스템이 나오면서 겨울산행용 의류 착용 형태도 많이 변했다. 과거의 두껍고 몸놀림이 불편한 파카대신 폴라텍이나 폴라플리스 재킷을 입고 그 위에 오버재킷을 입는 경향이 대다수다.
의류제조업체들은 오버재킷과 플리스를 지퍼로 결합해 입도록 만든 제품도 많이 선보이고 있다. 다소 비싸더라도 소재와 기능이 우수한 제품을 마련해 두면 따뜻한 겨울산행이 될 것이다. <이정숙 기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