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원전 8000년경 이른바 '신석기 혁명'으로 문화를 건설하기 시작한 인류는 기원전 3000년경 도시를 건설하고 문자를 사용함으로써 문명의 시대를 열게 되었다. 문명은 메소포타미아, 이집트 등 오리엔트에서 먼저 시작되었고, 기원전 2000년경으로 오면 지중해 세계로 퍼져나갔다. 기원전 1100년경 에게 문명이 몰락한 뒤 도시가 파괴되고 문자가 쓰이지 않던 '암흑시대'를 지나 그리스인들이 알파벳을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기원전 800년경의 일이다.¹⁾

알파벳은 그리스인의 창작품은 아니었고, 그 기원은 동부 지중해 연안에 있던 페니키아 문자였다. 지중해 동부 지역에 비블로스, 시돈, 티루스 등 도시국가를 만들고 지중해를 무대로 활발한 교역 활동을 하던 페니키아인들은 상인들이었을 뿐만 아니라 선진 오리엔트 문명을 서양에 전하는 문명의 전달자이기도 했다. 그들의 활동으로 페니키아 문자가 그리스로 전해졌다.

그렇다고 해서 그리스인들이 페니키아 문자를 그대로 받아들인 것은 아니다.²⁾ 페니키아 문자에는 모음이 없고 자음만 있었다. 그리스어에는 모음이 많았기 때문에 그대로 사용하기가 불편했다. 그래서 그리스인들은 모음을 표기하기 위해서 아람어 문자의 일부 자음을 빌려왔다. A(알파), E(엡실론), O(오미크론), Y(윕실론)을 모음으로 사용했고, 또한 I(이요타) 등 기존의 문자를 변형해서 모음으로 사용했다. 이러한 복잡한 과정을 거쳐 기원전 5세기에 그리스어 알파벳 24개(자음17, 모음 7)가 완성되었다.

알파벳의 사용으로 지식의 대중화가 가능해졌다. 그때까지만 해도 문자는 성직자나 귀족 등 소수 엘리트의 전유물이었다. 한자를 알려면 적어도 1000자, 메소포타미아의 서기들은 600자의 설형문자를 알아야 문자생활이 가능했다. 그러나 그리스인들은 24자의 알파벳만 알고 있으면 자유자재로 사물과 추상적 관념을 표현할 수 있었다. 문자를 연구하는 학자들은 알파벳의 발명이야말로 지식의 대중화를 가져온 혁명적인 사건이라고 평가한다. 알파벳을 통해서 대중 교육이 가능해졌다.

알파벳의 탄생: 페니키아로부터 그리스로.

기원전 5세기와 4세기에 그리스 지식인들은 그리스 문자를 사용하여 시, 희곡, 서사시 등의 문학과 역사, 철학 등 서양의 고전들을 기록으로 남길 수 있었다. 이후 서양 문명의 지적 원천으로 작용할 수 있었던 것도 그 기저에는 알파벳이 있었다.

그리스인들은 기원전 8세기에 그리스 본토에서 폴리스들을 세운 이후 활발한 해상 활동과 식민운동을 통해서 지중해 여러 곳으로 퍼져 나갔다. 그들의 대외 활동은 곧 그리스 알파벳의 확대를 의미했다. 기원전 6세기부터 라틴어 알파벳 금석문들이 나타나는데, 학자들은 그리스 알파벳이 에트루리아인들을 거쳐 라티움 지방으로 들어온 것으로 생각한다. 그리고 로마인들이 사용한 라틴어 문자는 기독교 교회의 공식 문자가 되어 중세로 이어지고, 중세 이후 서양 언어의 모체가 되었다. 많은 로마 문명의 내용이 그러하듯이 라틴어 문자는 그리스 알파벳에서 나왔기에 로마인들은 문명을 담는 그릇, 즉 문자에서 그리스인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고 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