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힐의 역사 : 고대 그리스시절부터 시작통굽 구두 단순히 굽이 높은 구두가 하이힐이라는 전제로 이야기를 시작하자면, 하이힐의 역사는 고대 그리스 시절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고대 그리스극의 아버지인 아이스킬로스가 무대 위의 배우들을 돋보이게 하기 위해 코르토르노스(Korthornos)라는 통굽 구두를 신겼다. 이후 등자(말안장에 발을 거는 고리)가 개발되면서 통굽 구두는 남성들에게 애용된다. 하이힐의 유래초핀 그렇다면 오늘날 여성들이 열광하는 하이힐의 시작은 언제일까? 현대적인 하이힐의 시초는 16세기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16세기 베네치아 여인들이 거리의 오물을 피해다니기 위해 신었다는 높은 굽의 초핀(Chopine, ‘쇼핀느’라고도 한다)이 하이힐의 시작이었다(스페인 여자들이 신고 다녔다는 나무로 만든 통굽 신발이 하이힐의 원조라고 하는 의견도 있다). 하이힐을 대중화로 이끈 루이 14세소년기의 루이 15세역시 하이힐을 신고 있다. 초핀으로 시작된 하이힐을 오늘날의 형태로 완성시킨 것은 로코코 시대의 절대왕정이었다. 태양왕 루이 14세와 루이 15세의 애첩인 퐁파두르 부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특히 루이 14세는 자신의 다리에 푹 빠져 있는 진정한 나르시시스트였다. 그는 자신의 다리를 정말 사랑했기에 이를 위해 수백, 수천 켤레의 구두를 구입했고 뽐내듯이 신고 다녔다. 절대왕정 시대의 남성용 하이힐이 대목에서 중요한 것은 절대왕정 시대의 하이힐은 여성용보다 남성용이 훨씬 더 화려하고 아름다웠다는 점이다. 왜 그럴까? 이유는 의외로 간단하다. 바로 노출의 차이였다. 루이 14세 앞에 나타난 주불 페르시아 대사들모두 하이힐을 신고 있다. 로코코 시대 여성들은 바닥을 끌 정도로 긴 치마를 입었다. 아무리 화려한 구두라도 보여줄 수 없다면 신을 이유가 없지 않을까? 같은 이유로 남성들의 구두는 화려했다. 남에게 보여주기 위해서 남성들의 하이힐은 화려해져만 갔다. 하이힐의 원조, 루이힐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 루이 14세의 하이힐 시대를 이어받은 것이 루이 15세의 애첩이었던 퐁파두르 부인이었다. 로코코 문화의 완성자이자 당대 문화예술의 후원자로 이름을 널리 알렸던 퐁파두르 부인은 진정한 패션 리더였다. 그녀는 자신만의 굽 높은 구두를 만들어 신고 베르사이유 궁전 안의 귀족들을 압도했다. 독특한 패션 감각이 물씬 묻어나오는 구두 앞에서 귀족들은 너 나 할 것 없이 이를 따라 했고, 이어 사람들은 퐁파두르 부인의 굽 높은 구두를 ‘루이힐’이라는 애칭으로 부르게 된다. 이 루이힐이 오늘날 하이힐의 원조다. 300년간 여성의 발을 혹사시킨 루이힐루이힐은 이후 300여 년간 여성들의 발에서 평화와 안식을 빼앗아갔다. 아름다움을 위해서는 약간의 고통쯤이야 아무렇지 않게 감내하는 것이 여성이라지만 하이힐을 신기 위해 감내해야 하는 고통은 신체 변형을 각오한 ‘단호한 결의’가 포함된 것이어야 했다.
하이힐을 신고 15분만 걸어도 발가락이 받는 압력은 300킬로파스칼(kPa)이 넘어간다. 압력 밥솥에서 밥이 끓을 때 압력이 약 70킬로파스칼이니 하이힐을 신고 걸어 다니는 발은 압력밥솥 4배의 압력을 받고 있다는 소리다. 이 정도면 하이힐이 얼마나 여성의 발을 혹사하는지 쉽게 확인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건 시작일 뿐이다. [네이버 지식백과] 하이힐 - 육체적 고통을 이긴 착시 효과 (사물의 민낯, 2012. 4. 16., 김지룡, 갈릴레오 SNC)
여성의 발을 혹사시키는 것 같아 슬프네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