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최초의 타투는 우연에 의해 발생했을 것으로 추측되고있다. 가벼운 상처를 입은 사람이 재와같은것이 묻은 손으로 상처를 문지르고 난뒤 남은 영구적 자국이 최초의 타투가 되지 않았을까 추정되고있다. 타투의 기원은 5천년 가량 된 냉동 상태의 남자사체 한 구가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 국경근처의 산에서 발견되면서 5천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것을 확인 할 수 있었다. 현재까지 발견된 청동기시대인의 사체 중 가장 그 보존 상태가 좋은 이 냉동인간 몸에는 모두 57개의 타투가 새겨져 남아있었다.
피라미드를 건설했던 이집트의 제 3대, 4대 왕조는 크레타 섬, 스리스 페르시아 보다 먼저 국가로 발전해갔으며 많은 문명과 문화를 향유하였다. 그 중에 문신도 한 분야를 차지하고 있었으나 초기 고고학자들은 타투를 수치스럽게 여긴 당시 사회의 전반적인 태도로 인해, 고대 이집트인들의 타투와 관련된 문서 기록이나 유물, 예술품 등을 사실상 외면해왔다. 그러나 기원전 2000년경의 고대 이집트 11왕조 초기의 것으로 추정되는 미라와 세티 1세(재위 B.C1317~B.C1301)의 무덤에서 나온 인형들이 발굴되면서, 예술 형식으로서의 타투를 가늠할 수 있는 계기들이 생겨났다. 우리들에게 잘 알려진 고대 이집트 타투의 흔적으로는 1891년 그리스 중부의 보이오타에 있던 테베에서 고고학자들에의해 한 여성의 미라가 소상(小像)들과 함께 발굴되었다. 이 미라는 11왕조 시키 테베의 여신 하토르(Hathor)를 모시는 여사제였던 아무네트(Amunet)의 미라였다. 이 미라의 몸은 잘 보존되어 있었으며 팔과 넓적다리에 평행선의 무늬들이 있었고 배꽃 아래쪽에는 타원형 문양들이 새겨져 있었다. 이 타투들은 추상적인 기하학적 무늬를 이루고 있었다. 이러한 형식은 오직 여성들에게만 허용되던 것으로, 아무네트는 종교적 제의와 관련된 사람이었다. 아무네트와 함께 발견된 소상들의 배꼽 아래쪽에도 유사한 타투가 있었다. 이처럼 B.C 2000년경 이집트에서 출토된 미라에서 보여지는 타투의 풍습은 세계의 문신 관습을 전파하는데 공이 컸다. 1948년, 러시아와 중국 국경 북쪽으로 120마일 떨어진 곳에서는 러시아의 고고학자 세르게이 루덴코(Sergei Rudenko)에 의해 여러 개의 무덤, 즉 러시아어로 고분을 뜻하는 '쿠르간(Kurgan)’이 발견되었다. 이 무덤에서 발견된 미라들은 약 2400년 전의 것으로 추정된다. 이 미라들에는 다양한 동물 형상의 타투가 남아 있었다. 그리핀이나 여러 괴물의 모습을 그린 타투는 마술적 힘을 의하하는 것으로 보이지만, 다른 동물 타투의 경우는 순전히 장식적인 목적으로 새겨진 것으로 보인다.
일본 내의 타투 관습에 대한 최초의 기록은 297년에 편찬된 중국 왕조사에서 찾아볼수있다. 이 책에는 ‘일본 남자들은 늙으나 젊으나 모두 얼굴에 타투를 하고, 몸에는 문양들이 장식되어 있다.’고 기록되어있다. 7세기가되자 일본 통치자들이 중국의 문화 관습을 따르게 되면서 타투도 덩달아 냉대를 받게 되었다. 17세기 초가 되자 타투는 범죄자와 부랑아를 나타내는 표시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다. 18세기에는 당시 도쿄의 명칭이었던 에도의 대중문화와 관련된 그림타투가 유행했다. 18세기 중반에 중국소설 『수호지』가 일본어로 번역되면서 타투의 인기는 더욱 높아졌다. 이는 소설 속의 영웅들 대부분이 타투를 했기때문이다. 여러 다양한 화가들이 소설 속의 타투를 독창적으로 해석하여 『수호지』의 일본판 그림책을 만들어냈고 타투이스트들은 그러한 문양들을 복제하여 시술함으로써 타투가 급속히 발전해갔다.
태평양 지역의 문화권에서 타투는 역사적으로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갖고있다. 폴리네시아의 타투는 고대 사회의 문신 행위 중 가장 복잡하고 정교한 기술이다. 폴리네시아인들은 영적 능력이나 생명력이 타투를 통해 보여질수있다고 믿었다. 오랫동안 사모아 섬에서 행해진 손으로 타투를 새기는 전통, 일명 ‘타타우(tatau)’는 추장이나 그 보좌역처럼 지명도 있는 가문에서 출생 순서에 맞게 전해지는 신분과 직위를 의미하였다. 젊은 추장이 사춘기에 들어거세되면 행해지는 이러한 타투 의식은 큰 행사였으며, 그가 지도자의 위치에서 지배권을 획득하는데 있어서 매우 중요한 부분이었다. 이 타투들은 문화적 전통에 대한 헌신과 인내력을 영원히 찬미하기 위해 새겨졌다. 사모아 섬에 첫발을 들인 유럽인들은 1787년의 프랑스 원정 대원들이었는데, 원주민들을 가까이에서 본 그들은 그 모습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있다. ‘이곳 사람들은 허벅지에 그림을 그리거나 타투를 새겼다. 이들은 거의 벌거벗고 지내지만, 그 모습은 마치 옷을 입은 것처럼 생각될 정도이다.’ 교차 문화로서의 특성을 지닌 타타우의 역사와 사모아 섬의 타투 픙습이 지닌 신화적 기원은 뉴질랜의 이민자 사회에까지 전달되었으며, 이후에는 오클랜드부터 네덜란드에까지 이르는 다양한 전 세계의 하위문화들로 퍼지게 되었다.
하와이의 원주민들에게도 전통적인 타투 에술이 존재하는데, 이를 ‘카카우(Kakau)’라 한다. 이는 장식이나 신분을 구별하는 의미뿐만아니라 신체적 건강과 영적 행복을 지키기 위한 목적으로도 행해졌다. 남자들은 갈대가 꼬인 모습이나 다른 자연 형상의 모습을 본뜬 복잡한 무늬들로 팔 과 다리 몸통과 얼굴을 장식하였고 여성들은 보통 손이나 손가락 손목에 타투를 새겼으며 가끔은 혀에 새기는 경우도 있었다. 역사상 대다수의 기독교회가 문신 행위를 금지했던 바, 이 지역들 역시 서구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타투라는 독특한 예술 형식이 쇠퇴를 맞이했다.
검은 피부로 인해 색깔이 있는 타투를 하는 것이 어려웠던 아프리카에서는 다른 타투 기술을 개발해 왔는데 몸에 상처를 내는 난절법이다. 이는 피부를 약간 드러내 칼 등의 날카로운 도구로 베어낸 후 특수한 모래나 재로 문지름으로써 커진 상처가 몸 위에서 일정한 무늬를 이룰 수 있도록 하는 것이다 점자처럼 보이기도하는 이러한 무늬들은 지역의 전통을 따르는 경우도 많았다.
저는 개인적으로 무서워서 타투 좋아하지 않아요.. 헤나 정도는 괜찮지만.. 어린이집 다니는 딸이 각종 스티커로 예쁘게 붙여준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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