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티슈 조각, 플라스틱 숟가락, 닭가슴살 포장 비닐, 과자봉지, 두유팩… 낫으로 종량제 봉투를 툭 치자 각종 생활쓰레기가 터져 나왔다. 순간 기자 본인이 집에서 버린 쓰레기가 아닌가 생각될 정도로 익숙한 모습이었다. "코로나 터지고 1월부터는 플라스틱 일회용품이 늘었어요. 대략 15% 정도로 보면 될 것 같네요." 종량제 봉투의 내용물을 확인하던 주민감시원 김명섭씨가 말했다.
이곳은 서울 노원구에 있는 자원회수시설이다. 쉽게 표현하면 '공공 쓰레기 소각장'이다. 서울시가 위탁 운영하는 소각장 4곳 중 하나다. 6개 자치구(노원, 도봉, 강북, 동대문, 중랑, 성북)의 모든 가정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가 이곳에 다 모인다. 생활쓰레기란 재활용품을 제외하고 종량제 봉투에 넣어야 하는 가연성 폐기물을 뜻한다.
2018년까지 지난 6년 동안 전국 생활쓰레기 중 가장 많은 비중(무게 기준)을 차지한 건 종이류다. 그 다음은 플라스틱류다. 노원 소각장의 주민감시원 박아무개씨는 "코로나 이후로 전혀 보이지 않던 마스크도 간간히 눈에 띈다"고 했다. 마스크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섬유류로 구분된다. 코로나19는 쓰레기 업계에 어떤 파장을 몰고 왔을까.
일회용품∙마스크 늘었다는데 총량은 줄어
시사저널은 7월1일 아침 9시 노원 소각장을 방문했다. 축구장보다 더 큰 넓이의 집하장에 종량제 봉투가 무더기로 쌓여 있었다. 바닥의 깊이는 도무지 가늠할 수 없었다. 새벽 4시부터 수거차량을 통해 받은 쓰레기들이다. 이 가운데 재활용 쓰레기는 '원칙상' 없어야 한다. 가정에서 분리 배출한 재활용 쓰레기는 민간 수거업체가 가져가기 때문이다.
그런데 종량제 봉투에 재활용이 가능해 보이는 플라스틱 용기가 섞여 있었다. 원칙대로라면 이러한 쓰레기를 싣고 온 수거차량에 주의를 줘야 한다. 단 직원들은 아무 말 없이 용기를 집하장으로 던져 보냈다. 음식물이 묻어 있으면 소각 대상이라서다. 수거업체에서도 일일이 세척하는 게 힘들어 대부분 사립 소각장으로 보낸다고 한다. 주민감시원 박씨는 얼굴을 찌푸리며 "배달용기 낭비가 너무 심하다"고 지적했다.
그렇다고 전체 쓰레기 반입량이 늘어난 건 아니다. 코로나19가 터진 뒤 올 1~5월 노원 소각장에 들어온 쓰레기는 총 7만5700톤. 지난해 같은 기간(7만5900톤)에 비해 오히려 200톤(0.2%) 줄었다. 또다른 공공시설인 마포 소각장의 경우 작년 대비 1.9% 감소했고, 양천 소각장에선 2.5% 증가했다. 유의미한 변화로 보기 어렵다.
노원 소각장의 조재학 부장은 "사람들이 집 밖에서 쓰레기를 만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총량이 눈에 띄게 늘진 않았다"고 했다. 이곳은 길거리에서 배출된 쓰레기도 취급하고 있다.
사업장 폐기물을 주로 취급하는 사립 소각장도 상황은 다르지 않다. 경기도 안산의 소각업체 부경산업은 최근 거래처를 기존 50곳에서 70곳으로 늘렸다. 일일 평균 쓰레기 반입량을 채우려면 어쩔 수 없었다고 한다. 김주한 부경산업 대표는 "코로나 사태에 접어들자 항공사나 식품회사 등 주요 거래처에서 배출되는 쓰레기 양이 대폭 줄었다"고 설명했다.
특히 한강에서 나오는 생활쓰레기는 코로나 이후 뚝 끊겼다. 김 대표는 "코로나 이전에 한강사업소와 계약을 맺고 쓰레기 연간 1600톤을 처리해주기로 했는데, 올 4월까지 전혀 보내온 물량이 없었다"고 했다.
그럼 코로나19가 세간의 우려와는 달리 쓰레기를 줄인 걸까. 장담하긴 이르다. 소각장 밖에선 정반대의 모습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환경부에 따르면 올해 2월 이후 전국에서 4개의 '쓰레기산'이 새로 확인됐다. 양으로 치면 총 1만6620톤이다. 작년 한강 쓰레기 배출량(3340톤)의 약 5배다. 환경부 폐자원관리과 관계자는 "발견된 쓰레기산은 2월 전부터 계속 쌓여왔던 것이지만, 7월 중순쯤 확인될 코로나 이후 불법폐기물 발생량도 크게 다르지 않을 걸로 본다"고 예상했다.
재활용업체 포기한 쓰레기…토양오염 유발 가능
쓰레기산 4곳 중 3곳의 폐기물 종류는 재활용품으로 분류되는 비닐류(합성수지류)다. 이와 관련해 쓰레기산의 배경에 재활용품 처리업계가 있다는 지적이 뒤따른다. 민간 재활용품 수거·선별업체들이 손을 놓아버린 것이다. 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로 재활용품 수요가 줄어든 탓이 크다. 유가가 떨어져 플라스틱 제조 원가가 싸진 점도 원인으로 작용했다. 게다가 2018년 중국이 선언한 재활용품 수입 금지 조치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환경부 관계자는 "재활용품 처리업체가 망하거나 고의로 파산해 불법폐기물이 생겨나는 경우도 있다"고 했다.
재활용품이든 아니든 모든 폐기물은 결국 매립되거나 소각된다. 쓰레기산의 운명도 마찬가지다. 지자체는 보통 불법폐기물을 투기자에게 처리하라고 명령하는데, 그래도 안 되면 헐값에 사립 소각장으로 넘긴다. 당장은 소각장의 쓰레기 반입량이 적어 보여도 앞으로는 알 수 없는 셈이다. 이는 또다른 환경 문제를 낳을 수 있다.
국내 모든 소각장은 24시간 환경부의 감시를 받는다. 황산화물 등 유해가스 배출량이 법정 기준을 넘으면 즉시 제재가 가해진다. 문제는 쓰레기를 태운 뒤 작은 입자로 남는 소각재다. 중금속을 함유하고 있는 소각재는 땅에 묻혀 환경오염을 일으킨다. 기자가 사립 소각장 부경산업에 방문해 소각재를 나르는 모습을 지켜봤다. 뿌연 먼지와 매캐한 냄새 속에 새카만 흙더미가 쌓여 있었다. 그 높이는 키를 훌쩍 넘었다.
김주한 부경산업 대표는 "플라스틱 중에서도 PVC 소재는 약품을 아무리 많이 써도 유해물질 배출량을 줄이기 힘들다"고 설명했다. PVC는 비닐을 뜻한다. 소각시 유해물질 배출량이 적은 친환경 소재와 재활용이 권장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소각업체 관계자는 "이미 재활용된 제품을 적극적으로 쓰려는 사람들의 인식 전환도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홍주열 자원순환사회경제연구소 소장은 쓰레기 처리 과정의 공공성을 높일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그는 "영세한 민간 재활용 처리업체들이 난립한 상황에서 채산성이 떨어지면 쓰레기 정체는 반복될 수밖에 없다"며 "정부나 지자체가 쓰레기 분배 등의 방법으로 개입해야 한다"고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