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세기 후반 임방이라는 사람이 전래되는 괴담이야기를 모은 놓은 책으로 원제목은 <천예록>이라고 한다. 이 책은 일단 재미있다. 어린시절 이불을 뒤집어쓰고 눈만 내민채 바라보던 전설의 고향을 보는 듯하다. 신선과 귀신이야기부터 해서 괴물, 변신, 남녀간 사랑등 다채로운 28편이 실려있다. 짧게 2,3장에 걸쳐서 하나의 이야기가 전개되는데 읽다보면 지루하고 느리게만 움직이는 지하철이 새삼 빠르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각 왕조에는 왕조실록이 있다. 왕조실록은 정사와 역사적인 사실에 대해 연구할 때는 많은 도움이 되겠지만 그 시대 민중들의 실제적인 삶을 살피는데는 무리가 있다. 이 책은 정사의 뒷면에 가리워져 구전으로만 전해졌을 법한 괴담 이야기라는 점에서 흥미롭다. 밤이 길었던 시절에 그 당시 사람들은 귀신이나 괴담이야기로 여흥을 즐기지 않았을까?
서민들의 입을 통해서 전해지는 이야기들, 그것은 왕조와 사대부가의 엄격한 예의범절과 형식에서 벗어나 있다. 아무런 거리낌없는 성적 담론을 포함한 자연스러운 인간본성을 그대로 녹아져 있는 것이다. 이 책을 보면서 이야기가 전해주는 재미 이외에도 두 가지를 느낄 수 있었다.
그 하나는 귀신이나 구렁이나 인간으로 둔갑한 이리나.... 어쨌든 괴스러운 이야기에는 반드시 한을 품고 원수를 갚으려는 개인적인 사연들이 있다는 것이다. 인과응보의 법칙을 배경에 깔고 이야기가 진행된다. 그리고 종내는 원수를 갚고 한을 풀며 업보를 종결짓는다.
이러한 귀신이야기는 서양의 사탄이나 ‘악마’스러운 개념과는 사뭇 다른 것이다. 서양의 공포영화를 보면 원인과 이유도 없이 불특정다수를 무자비하게 죽음으로 몰아넣는 경우가 많다. 왜 죽어야 하는지, 왜 죽여야 하는지조차 알 수 없다. 그냥 죽고 죽이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귀신은 절대로 자신과 원한관계가 없는 사람은 해치지 않았다. 더 나아가 생전에 은혜를 입으면 죽어 귀신이 되어서도 반드시 은혜를 갚았다. 한국의 귀신은 서양의 악령에 비해 얼마나 소박할뿐더러 예의가 밝은가? 우리의 귀신들과 천년묵은 구렁이와 처녀로 둔갑한 여우에게 깊은 애정을 느껴본다.
두 번째는 일탈에서 벗어난 서민들의 모습에 애정을 느끼게 된다는 점이다. 남녀칠세부동석이니 칠거지악이니해서 조선시대는 남녀간 차별이 매우 엄격하였을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이 책에서 등장하는 비범한 여인들편에 나오는 이야기를 읽으면 생각이 달라진다.
우상충은 전라수사에까지 이른 용감한 장군이었지만 그런 그에게도 아내는 공포의 대상이다. 결국 아내에게 두들겨맞고 수염까지 뜯기게 된다. 뿐이던가? 사나운 아내에게 볼기를 맞은 성 진사 이야기를 읽다보면 우리네의 악처들의 이야기를 보는 것 같다. 그리고 신분을 초월한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도 있다. 깊은 사랑앞에서 양반이고 기녀고 종놈이고 상관이 없다. 서양의 로미오와 줄리엣만 사랑의 고전은 아니다. 우리의 조상들도 춘향전말고도 이름없이 떠도는 아름다운 사랑이야기들을 구전을 통해 즐겨왔던 것이다.
마지막으로 덧붙이자면 책속에는 관련된 삽화 몇 점들이 있다. 그중 하나.... 방문을 열고 음탕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영감님의 시선을 따라가다보면 어느 여인의 뒷모습이 눈에 잡힌다. 여인은 고개를 약간 뒤로 돌리며 두 손으로 치마를 잡아 약간 올린 요염한 포즈를 취하고 있다. 그림속에서 천한 신분의 계집종은 주인의 노리개가 될 수 밖에 없었던 슬픈 신분의 시대를 느껴볼 수도 있지만 칭칭 돌려 입은 옷속에서 이러한 은근한 매력과, 또 그런 식으로 남녀간 음욕지정을 표현했던 우리 조상들의 은유와 해학을 느껴볼 수 있다.
그런데 왜일까? 고리타분하고 구태의연할 것 같은 옛날이야기가 이렇게 정겹고 구수하게만 느껴지는 것은? 심심하고 무료하다면 이 책으로 재미있는 전설의 고향을 찾아 떠나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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