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 이번 시험 잘 봤냐?"
"아니 너무 어려웠어. 아무래도 오늘 실기시험에서 무마시켜야할 것 같애."
"너도냐? 나도 그래야할 것 같은데."
"그럼 오늘 들어오는 건가?"
"아아... 그렇지 뭐"
[드르륵]
그 순간 선생이 들어왔다. 아직까지도 교실이 소란스럽다 까탈스럽고 히스테리틱한 눈초리
로 그들을 쏘아보았다. 아이들은 그제 서야 부랴부랴 제자리를 찾아가 앉기 시작했고 그런
그들의 모습은 그녀의 신경을 거슬렸다. 하지만 아무리 그녀라도 차마 신입생 환영회 날부
터 역정하는 모습을 보일 순 없었나 보다. 그녀는 끓는 분을 억지로 삭이는 듯 하였다.
그녀는 그 검은 뿔테 너머를 거만한 눈빛으로 한번 둘러보더니 이내 콧구멍이 보일 정도로
고개를 세웠다. 그리곤 말했다.
"여러분 오늘은 새로운 아이들이 들어온 날이니 잘 대해주길 바래요. 자... 그럼 들어와서 다
들 자리에 앉도록 하세요."
그녀는 독특한 억양으로 신입생에 대한 간단한 소개말 마쳤다. 대략 23명정도로 보이는 신
입생들은 영문을 모르겠다는 표정으로 문밖을 서성이고 있었다. 선생은그런 그들을 끌어당
겨 자리 를 배치하기 시작했다. 최소한의 대화로 최대한의 효과를 낼려는 듯 그녀는 새로
들어오는 학생들에게 간단한 고갯짓으로 말을 대신하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기존의 아이들
옆자리에 앉혀 주기만 하면 됐기 때문이었다. 첫 순부터 마지막 순까지 끝나게 되자 그녀는
이제 그 녀의 할 일을 다했다 생각했는지 아이들로부터 인사만 받고 밖으로 나가버렸다. 하
지만 새로 들어온 아이들에게 앞으로의 학교 생활을 잘하라는 의미의 측은한 눈빛만은 잊지
않았다. 그것은 일종의 그녀로써의 예의인 듯 하였다.
"너 이름이 뭐냐?"
"응?"
옆자리, 새로 온 학생에게 연중이 물었다. 쫌 어수룩해 보이는 것이 그다지 좋은 환경에서
있던 것 같지 않아보였다. 옷차림도 멀쑥한 것이 좋은 집안 애는 아니었고 눈매가 서글하고
쳐진 것이 활발한 애는 아닌 듯 했다. 신입생은 아직 낮설은 듯 이리저리 눈치를 보았으나
연중에겐 적의나 별다른 뜻은 없는 듯 했다.
"유학..."
"유학? 재밌는 이름이구나..."
유학은 그가 자신의 이름을 가지고 놀리고 있단 생각이 들었다. 고아로 자라오면서 줄곧 놀
림을 받아왔기 때문인지 그런 의심을 품게 되는 것은 그의 버릇과도 같았다. 더 이상 할말
을 찾지 못하고 유학이 머쓱해하자 눈치 빠른 연중은 얼른 말을 바꿨다.
"아아... 미안 친하게 지내고 싶어서 그랬어. 넌 아마 내 파트너가 될 테니깐."
"파트너?"
"그래 파트너. 넌 필기시험은 운 좋게도 안봤지만 오늘 있을 실기시험은 나와함께 봐야할
거야. 어쨌든간 잘만 보면 넌 이 '완벽한 인간'을 양성하는 학교에 잘 적응하게 되는거야.
난 이번 필기시험을 망쳐서 말이지... 솔직히 요번 문제는 너무 어려웠어. 실기시험은 잘 봐
야할텐데..."
그는 마치 독백형식으로 허공에 대고 중얼거렸다. 필기가 여간 심각한 것이 아닌 모양이었
다.
"어떤건데?"
"음... 뭐 어렵다면 어려울 수도 있고 쉽다면 쉬울 수도 있고, 그래도 기대되는 시험이지.
지금까지 배운 과목을 자신의 창의력을 쏟아 실습하는 거니깐. 자세히 설명하자면 길어. 그
러니깐 우선 학교부터 둘러보게 해줄꼐."
연중은 사람 좋아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제안했다. 그는 되도록 유학이 자신에게 편히 마음
을 놓을 수 있도록 하는 배려하고 있었다. 그러나 유학은 오히려 당황스러웠다. 물론 좋다고
말하고 싶지만 그것이 상대방의 신경을 거슬리지나 않을 지하는 걱정부터 들었다. 그래서
이도 저도 아닌 대답으로 대충 그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였다.
"어어?... 아니 난 괜찮은데... 굳이 이렇게 피해를 ..."
"아아... 전혀 그렇지 않으니깐 걱정하지마. 원래 신입생이 들어오면 기존에 있던 학생들이
새로 들어온 옆자리 학생을 돌봐주도록 되어있어. 그러면서 자연히 파트너도 하는거고... 처
음엔 나도 도움을 받은 적이 있기 때문에 이러는거야. 좋은 전통이지.
유학이 마음에 걸릴만한 요소들을 자잘하게 설명해준 연중이 내심 고마웠다. 유학은 연중이
라면 아주 좋은 친구가 될 수 있을 거란 예감이 들었고 그와 함께 학교를 돌아보았다.
"자... 여기가 화장실이고 저쪽이 우리 화학실이야. 어때 놀랍지?"
"세상에... 화장실이 우리 고아원보다 커."
유학은 얼떨떨한 마음에 홀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이내 자신이 무슨 말을 했는지를 깨닫고
선 입을 닫았지만 이미 한번 나온 말은 주울 수 없는 법이었다.
"고아원에서 왔니?"
연중이 꺼낸 질문에 유학은 얼른 답해줄수가 없었다. 아마 연중도 자신을 업신 여기게 될거
란 생각이 들었고 역시 괜히 그에게 학교소개를 부탁했다란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그렇게
후회하는 그에게 연중이 한말은 뜻 밖이었다.
"진짜? 나도 고아원에서 왔어."
도저히 그래보이지 않는 연중의 입에서 그런 말이 나오자 유학은 놀랐다. 이리저리 아무리
보아도 분명 연중은 꽤 높은 집 도련님 내지는 귀족의 아들 같았다. 오똑하고 조각같은 얼
굴에 기다란 다리. 기품있고 기분 좋은 웃음을 달고 있는 입가. 모든 것이 유학과는 달라보
였고 그래서 그냥 농담이었겠거니 하고 넘겼다. 하지만 연중은 그렇지 않다며 자신의 이야
기를 열심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자신도 원래 고아원에 있다가 능력검사시험에서 천재적 소
유자로 인정 받아 이 학교로 오게된 이야기서부터 이런 지위도 신분도 상관없는 제도는 좋
다, 나쁘다, 그리고 지금 현재까지 있었던 일을 모두 세세하게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마지막
에 유학 역시 몇 달만 있으면 자신처럼 될 거란 말을 잊지 않았다.
"어디까지나 우리는 [완벽한 인간]이 되기 위해, 그리고 그 자격을 받아 이 자리에 서게 된
거야. 얼마나 대단한 일이니. 우리들만한 행운아는 또 없을꺼야. 그러니 너도 자부심을 갖고
어깨 좀 펴."
연중은 유학의 등판을 철썩하고 쳤다. 그 덕분에 반동으로 유학의 등은 꼿꼿이 펴졌고 그런
그를 보며 연중은 브이자를 그려보았다. 이일을 계기로 유학과 연중은 아주 절친해졌다. 불
과 반나절 세에 말이다. 유학으로선 그런 연중이 아주 듬직했다. 처음 온 학교에 어떻게 적
응을 할까하는 것도 문제였고 과연 자신이 천재적인 재능을 가진 사람인지도 의심스러웠는
데 그나마 마음의 짐이 덜해지는 듯한 느낌이었다. 그 뒤로도 그 둘은 여러곳을 돌아다녔다.
얼마나 넓은지 위치를 외우기는커녕 하루안에 다 돌아다니기도 힘들 것 같았다. 유학은 혹
시라도 길을 잃게 되면 굶어 죽게 될지도 모른다는 진담반 농담 반 말을 건넸다. 하지만 그
뒤론 두번 다신 그런말을 꺼내지 않았다. 왜냐하면 실제로도 그런일이 있었다며 겁을 주는
연중의 말을 들었기 때문이었다.
"다음은 수영장이야. 항상 일정하게 기온이 유지되기 때문에 겨울에도 수영을 할 수 있지.
엇!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되었네. 유학아 우리 조금 뒤에 실기시험이 있거든? 잠깐만 기다려
주지 않을래? 준비해 올게 있어서..."
"응 알았어."
"그래 금방갔다올께."
연중은 인사를 하며 복도를 뛰어갔다. 꽤나 한참이 지나서야 연중의 모습은 유학의 시아에
서 사라졌다.
그렇게 남겨진 유학은 널찍한 복도에 혼자 기대앉았다. 지금까지 일어난 모든 일들이 꿈만
같았다. 갑작스레 쳐들어온 사람들은 사랑의 집 원장님에게 유학을 넘겨줄 것을 제안했으며,
그것은 제빨리 진행되었다. 그리고 유학은 이렇게 좋은 학교에 입학하게 된 것이다. 모든 것
이 한줌의 신기루처럼 부서져버릴 것만 같았다. 연중과 이야기를 하고 있을 때에도 그는 연
신 불안했다. 갑자기 연중의 대화가 끊기면서 자신은 또 다시 초라한 고아원에서 눈을 뜨지
않을까 하고... 오늘의 하루 반나절은 몇일 전의 한시간보다 짧았다. 만약 이것이 진정으로
얻어진 기회라면, 좀더 비약할 수 있는 환경이라면 꼭 열심히하겠노라고 유학은 굳게 다짐
하였다. 눈에 보이는 이 화려한 궁전같은 학교와 좋은 시설. 그리고 생전 처음 사귀어본 좋
은 친구 연중. 앞으로 성공했을 때 보이는 자신의 미래. 그리고 연중의 말에 힘입어 생겨나
는 자부심. 유학은 이 모든 것을 잃고 싶지 않았다. 지금부터라도 자신의 행복을 위해 열심
히 개척해 나가리라... 당장에라도 좋은 옷을 주문해 입고 건방도 떨어보고, 기어코 우등한
인물이 되리라...
창밖 느티나무의 잎사귀 개수를 새는 듯 몇번이고 다짐을 중얼거리는 유학의 뒤로 연중이
다가섰다.
옆으로 매는 가방과 책 몇권을 들고 온 듯한데, 얼굴 표정이 심상치가 않았다.
"워!"
장난기 많은 연중이 깜작 놀라게 해준 답시고 유학을 밀었다.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유학은
소스라치게 놀라 자빠졌다. 그리고 넘어지는 바람에 머리를 부딪쳐 이마를 깨박쳤다.
"야. 괜찮아?"
연중은 너무 놀란 듯 허둥대었다. 너무 당황스럽고 미안해서 어쩔 줄을 몰라하고 있었다.
"어떻하지? 어떻하지? 괜찮냐? 상처는 깊어? 이리와봐 내가 봐줄께."
"아아... 괜찮아. 좀있으면 멎을꺼야."
"사람들의 돌팔매질에 몇번인가 머리가 깨지곤 했던 유학은 그저 덤덤하게 말하였다.
"시끄러워. 보여달라면 보여줘."
그러자 연중은 굉장히 성을 내며 유학을 나무랐다. 그러고선 상처 부위에 가지고 다니던 약
상자로 세심한 치료를 해주었다.
"이런... 실수로 상처를 내다니..."
그렇게 해주고 나서도 그는 미안한 듯 계속 중얼거렸다.
"정말 괜찮아. 그나저나 나 좀 일으켜 주지 않을래?"
"아아... 그런 거라면야 ."
하며 연중은 유학의 손을 잡았다. 그리곤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하지만 그게 또 너무 과도
했던 탓인지 이번엔 둘다 넘어지고 말았다.
"아야야야...살살좀 해라 ..."
"미안..."
"됐어. 어?"
앉아서 아픈 부위를 쓰다듬고 있던 유학의 눈에 뭔가 눈에 띄이는 것이 있었다. 그건 방금
전 까지 연중이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꽤 두꺼운 빨간 책이었다. 근데 그게 참 독특한 제목
이었다. 그러나 상당히 흥미를 끄는 제목이긴 하였다. 유학은 그 책으로 엉금 엉금 기어가
책장을 열었다. 처음엔 차례가 나와있었고 참으로 끔찍하기 그지 없는 단원들이 나열 되어
있었다. 한 장을 더 넘기자 그 곳에서부턴 아주 곳곳에 줄이 쳐져 있고 세밀하게 필기가 되
어있었다. 마치 공부라도 한 것처럼 말이다 아무래도 여기서부터가 이 책의 본 내용인 듯
하였다.
"야... 연중아 너 이런거 보냐? 이런게 재미있냐? 가끔 이런걸 좋아하는 녀석들이 있긴 하던
데... 니가 그런 애일 줄은 몰랐다. 어?"
[사삭, 사삭]
"미안하구나."
워낙 순식간에 일어난 일이었다. 웃으면서 뒤를 돌아보는 유학을 찌른 것은. 정말 찰나의 시
간이었다.
어느센가 꺼내든 연중의 칼은 정확히 유학의 상박동맥과(팔꿈치의 안쪽 부위) 요골 동맥(손
목)을 자르고 있었다. 상처의 크기를 최소화하면서 완벽하게 절단하는 솜씨는 이미 프로였
다. 상처는 적게, 고통은 최대로, 되도록 빠르게 연중은 움직였다. 손에 위치한 급소들을 정
확히 찔린 유학은 찔렸다는 것을 인식하기도 전에 쏟아나오는 혈액에 기겁해야했다.
"이... 이게 무슨...."
비록 한나절이라지만 절친한 사이라 믿었던 연중의 행동에 유학은 당혹스러워하는 듯 하였
다. 또 그와 동시에 두려워하고 있는 듯 하였다.
"그렇게 놀랄 것은 없어... 넌 내 파트너였잖아?"
"그게 무슨 소리지?"
유학은 희미해져가는 눈을 잡으며 그에게 말했다. 태연한 연중의 얼굴이 두렵기도 하고 증
오스럽기도 하여 한 대 갈겨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건 마음 뿐이었고 이미 혈액부족으로 반
항이 여지도 남아있지 않은 듯 했다.
연중은 상당히 신중하게 다시금 유학의 쇄골하맥(쇄골부위)을 찔렀다.
그리고 이제 막 숨을 거두기 직전인 유학에게 말했다.
" 이게 실기 시험이야..."
유학의 손에 힘이 풀리자 들고 있던 책이 스스로의 무게로 덮였다.
그리고 책 앞면에는 이렇게 쓰여있었다.
[완벽한 살인기계가 되기 위한 지침서]
불쌍한 유학을 앞에 두고선 연중은 이렇게 애도했다.
"젠장... 이마의 상처 때문에 감점 받을거야......이번 시험은 완전히 죽쒔군..."
-The e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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