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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아버지를 용서하렵니다
이유아이유 2020-02-01     조회 : 231

어머니는 나를 낳다가 돌아가셨다. 한참 바쁜 농사철에 건설현장으로 일 나가신 아버지를 대신해 혼자 농사일을 하느라 무리하신 탓이었다.
어머니의 갑작스런 죽음으로 집안은 그야말로 엉망이 되고 말았다. 여러 날을 술로 지새우던 아버지는 ˝어미 잡고 태어난 년˝이라며 갓 태어난 나를 학대하기 시작했다. 며칠씩 벽장 속에 넣어 두기도 했는데, 언니 오빠들에게 발견되어 간신히 살아나곤 했다.

하지만 나는 여전히 아버지의 눈에만 띄면 매를 맞았고 말리는 언니 오빠들도 함께 곤욕을 치르곤 했다. 참다 못한 큰 오빠는 가출을 했다. 얼마 뒤 오빠에게서 편지가 왔는데, 큰언니는 편지를 보다 말고 나를 부둥켜안고 하염없이 울더니 자리잡히면 꼭 데리러 오겠다는 말만 남기고 떠나 버렸다. 그제야 아버지도 정신이 좀 드셨는지 술도 줄이고 묵혀 놓은 논밭 손질도 새로 하셨다.

그러던 어느날, 아버지는 느닷없이 새옷을 사다가 내게 입히시더니, 신작로로 데리고 가 한복판에 앉혀 놓고는 차가 알아서 피해 갈테니 꼼짝말고 놀고 있으라고 하셨다. 그러고는 좀 떨어진 곳에서 일하는 척하면서 힐끔힐끔 나를 감시했다. 지나가는 차들이 빵빵거리며 비키라고 야단이었지만 나는 아버지가 더 무서웠다. 어쩔 줄 모르고 앉아 있던 나는 달려오는 커다란 트럭을 피하다가 그만 치이고 말았다.

멀리 아버지가 달려오는 것이 보였지만 금세 정신을 잃었다. 그 일로 나는 결국 왼쪽 다리를 절게 되었다. 아버지는 비정하게도 딸을 그렇게 죽이려 했던 것이다. 운 나쁘게 걸린 그 운전사는 아버지의 억지에 못 이겨 많은 돈을 보상해야 했다. 나중에 이 일을 알게된 큰오빠는 그 울분으로 자원입대해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전사하고 말았다. 소식을 듣고 달려온 큰언니 역시 아버지에게 어떻게 그럴 수 있느냐며 대들다가 심하게 매를 맞은 뒤 아버지를 절대로 용서하지 않겠다고, 돌아가셔도 장례식에조차 오지 않겠다는 말을 남기고 다시 집을 나갔다.

나의 사고로 벌어들인 돈과 큰오빠의 전사 보상금으로 목돈이 생긴 아버지는 자주 읍내를 들락거리시더니 어느 날 젊은 여자를 집으로 데려왔다. 새엄마였다. 세련되고 상냥한 그녀는 우리에게 호감을 샀고 동네 사람들과도 금방 친해졌다. 그러다가 임신을 했는데 아버지는 옆에서 보기 민망할 정도로 기뻐하셨다. 그 즈음부터 새엄마는 조금 달라졌다. 남들 앞에선 잘해 주면서도 뒤로는 구박을 많이 했다. 고등학교에 입학한 둘째 오빠에게 앞으로는 기술을 익혀 두는 것이 시시한 고등학교를 졸업하는 것보다 낫다며 은근히 공장으로 가기를 바랐다. 물론 도시락도 제대로 챙겨 주지 않았고 용돈 또한 없었다. 결국 한창 사춘기였던 오빠는 집을 나가 절로 들어가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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