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허망에 대하여 -김남조 - 
 내 마음을 열
 열쇠꾸러미를 너에게 준다.
 어느 방 어느 서랍이나 금고도
 원하거든 열거라
 그러하고
 무엇이나 가져도 된다
 가진 후 빈 그릇에
 허공부스러기쯤 담아 두려거든
 그렇게 하여라
 
 이 세상에선
 누군가 주는 이 있고
 누군가 받는 이도 있다
 받아선 내버리거나
 서서히 시들게 놔두기도 하는 일
 이런 일 허망이라 한다
 허망은 삶의 예삿일이며
 이를테면 사람의 식량이다
 
 나는 너를
 허망의 짝으로 선택했다
 너를 사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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