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정러시아는 우랄산맥을 넘어 팽창하다 17세기 중반 청나라 강희제에 막혀 남쪽 진출이 여의치 않자 동진을 계속했다. 사할린섬을 차지하고 덴마크 항해사 베링을 보내 북아메리카에서 알래스카도 발견했다. 러시아는 ‘루스키 아메리카’라는 이름으로 50년가량 무주공산 알래스카를 지배하다 1867년 720만 달러에 알래스카를 미국에 팔았다. 미국은 쓸모없는 땅을 샀다는 비판을 받았으나 러시아로서는 역사상 가장 손해 본 거래로 꼽을 만하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최근 덴마크로부터 그린란드를 매입하겠다는 희망을 밝히자 ‘미친 짓’이라는 비판까지 나왔지만 그린란드에 눈독을 들인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니다. 알래스카를 사들인 그해 앤드루 존슨 대통령은 그린란드도 사려다 실패했다. 1946년 해리 트루먼 대통령은 1억 달러라는 구체적인 가격까지 제시했으나 거절당했다. 미국 영토 중 미시시피강 서쪽과 로키산맥 동쪽 사이의 방대한 면적의 루이지애나 지역은 1803년 1500만 달러에 프랑스로부터 사들인 것이다. 한 뼘의 땅을 놓고도 전쟁을 불사하는 지금으로서는 상상이 안 되는 일들이다.
▷인구 5만6400여 명이지만 멕시코보다 큰 세계 최대 섬 그린란드는 85% 이상이 얼음으로 덮여 있고 경작지는 2% 미만인, 말 그대로 동토의 땅이다. 녹색땅이라는 이름을 붙인 것은 ‘붉은 털 에리크’라는 노르웨이인이라고 한다. 980년경 살인죄로 추방돼 끝없이 얼음이 덮인 그린란드 서쪽 해안에 도착한 그는 온화한 느낌을 주는 이름을 지어 널리 알리면 다른 정착민들도 올 것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지구온난화는 지구촌의 재앙이지만 그린란드에는 새로운 기회다. 얼음이 녹으면서 석유와 가스 우라늄 등 지하자원 개발 가능성이 커지고, 북극 해저 자원과 빙하가 녹아 항로가 활성화되는 ‘북극 경제’ 시대에 북극 연안 지역으로서 지분이 있다. 부동산개발업자 출신 트럼프가 “대규모 부동산 딜”이라며 사려고 하는 것도 치솟은 가치와 무관치 않을 것이다.
▷노르웨이와 스웨덴에 이어 덴마크가 18세기 초 그린란드를 개척했으나 영유권 다툼이 벌어졌다. 덴마크는 개척 200여 년 만인 1933년 국제사법재판소(ICJ) 판결을 통해 영토로 인정받았다. 그런 땅을 느닷없이 팔라고 하자 덴마크는 “판매용이 아니다”며 턱도 없는 소리라고 일축하고 있다. 그런데도 트럼프는 다음 달로 예정된 방문 일정까지 일방적으로 취소하는 등 압박을 가하고 있다. 대통령이 돼서도 부동산업자 근성을 못 버리는 트럼프의 안하무인에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구자룡 논설위원 bonhong@donga.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