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엔 고경민 기자]

연기경력 50년의 배우 이순재는 8월 16일 열린 MBC '천번의 입맞춤' 제작발표회에서 "배우는 어떤 이유에서든지 현장을 떠날 수 없다. 시청자와의 약속이 가장 우선이다"며 KBS 2TV '스파이명월'의 여주인공으로서 촬영을 펑크내고 미국으로 출국한 한예슬의 무책임한 태도를 강도높게 비판했다.

하지만 이순재는 "드라마 제작 현장이 그런 상황이 돼 있다. 실제 젊은 배우들은 미니시리즈 촬영 중 며칠 밤을 새운다. 초인적인 작업이다. 여유있게 제작 여건을 만들어야 한다"는 지적도 잊지 않았다.

한예슬 사태는 어쩌면 예고된 것이었을까? 쪽대본과 생방송을 방불케하는 고질적인 드라마 제작 여건 속에 그간 제작진과 출연진의 트러블은 심심찮게 있었고 배우들은 큰 소리를 내진 못했지만 고통을 호소해왔다. 높은 출연료를 받는 주연배우들은 그만큼 잠을 헌납하고 그 이상으로 몸을 혹사시켰고 이에 드라마 출연을 꺼리는 배우들도 생겼을 정도다.

올 상반기 최고의 화제작으로 꼽히는 '최고의 사랑'(최사)의 여주인공 공효진은 드라마 종영 후 인터뷰를 통해 '최사'를 촬영한 3개월은 "인생 최대의 고비였다"고 고충을 토로했다. 드라마를 찍는 동안 링거 투혼도 불사했다는 공효진은 우스갯소리로 "지옥같았다"는 표현을 쓰기도 했다.

남자 주인공 차승원도 "로맨틱 코미디라 그런지 찍어야 될 신이 너무 많았다. 평균 3시간 정도 잤나? 하지만 우리보다 스태프들이 더 잠을 못자서 미안했다"고 했다. 하지만 드라마가 잘돼서 그만큼 보상을 받은 것 같다며 더이상의 언급은 하지 않았다.

지난 7월 종영한 MBC '미스리플리'에서 제작진과 배우들 사이에 트러블이 있었다는 것은 공공연히 아는 사실이었다. 하지만 드라마를 예정된 시간에 완성해야하는 시청자와의 약속, 대전제에 있어선 모두가 공감을 했기에 배우들은 큰 소란없이 16부를 완성했다. 하지만 이들의 불협화음은 주요 배우들이 전부 종방연에 참석하지 않은 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설명되는 대목이었다.

한 드라마 관계자는 "작가, 감독과 출연진 간에 소통이 잘되지 않았던 것은 인정한다. 처음 시놉시스로 봤던 캐릭터가 수시로 바뀌었고 한 스태프는 '우리 드라마는 편집이나 대본이 마치 일일드라마를 보는 것 같다'고 했다. 드라마는 이미 끝났다. 아쉬움보다 속시원하다고 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왜 이런 문제가 생겼는지는 한번쯤 깊이 생각해 볼 문제다"고 말했다.

여주인공 이다해도 종영후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이렇게 힘들었던 적은 이전에도 앞으로도 없을 것 같다" 고 토로했다. 살인적인 촬영 스케줄로 며칠 밤을 새기가 일쑤였고 촬영 중간 링거도 맞고, 생전 먹지않던 보양식에, 잠을 이기기 위해 입에 대지도 않는 커피까지 챙겨 먹어야 했다고 전했다. 이에 이다해는 국내 드라마 콘텐츠의 수준에 비해 제작 환경은 다른 나라에서도 깜짝 놀랄 정도라며 개선이 필요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한편 한예슬은 지난 14일 '스파이명월' 촬영을 거부하고 미국으로 돌연 출국, 드라마가 결방하는 초유의 사태를 일으켰다. 그가 이런 돌발 행동을 한 원인으로는 주5일제 촬영 요구에 따른 갈등, 특히 연출자 황인혁PD와의 불화설 등이 꼽히고 있다.

고경민 기자 gogini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