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쟁 당시 당한 부상으로 목숨을 잃은 참전용사가 68년 만에 전사자로 인정 받을 수 있는 길이 열렸다. 또 50년 전 수류탄 폭발 사고를 내고 숨진 병사가 사실은 피해자였던 것으로 드러났다. 정경두 국방부장관이 지난해 9월 28일 오후 서울 중구 소공로 포스트타워에서 열린 군 사망사고 진상규명위원회 출범식에 참석해 축사하고 있다. [뉴스1] 대통령 소속 군사망사고진상규명위원회는 25일 출범 1주년을 맞아 이 같은 내용의 조사활동 보고서를 내고 13건에 대해 진상을 규명했다고 밝혔다. 위원회에 따르면 1951년 6·25 전쟁에 장교로 참전한 ‘박 소위’는 전투 중 부상 및 군병원 입원·치료기록을 확인할 수 없고 제적등본상 강제 전역처분된 이후 사망했다는 이유로 전사자로 인정되지 않았지만 이번 조사를 통해 전투 중 부상을 입고 사망한 것으로 판단됐다. 당시 14살이던 박 소위의 남동생으로부터 “형이 육군 병원에 입원했다”는 구체적인 진술이 나왔고, 군 복무 자료와 현장 확인에서도 이런 내용이 확인됐다는 게 위원회 측의 설명이다. 위원회는 “박 소위가 군인사법의 ‘전사자’ 요건인 적과의 교전 또는 적의 행위로 인하여 사망한 사람에 해당된다”며 “중상자라는 이유로 강제로 소집 해제를 시키고 전사자로 인정하지 않는 것은 국가가 책임을 다하지 않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위원회는 1969년 수류탄 사고를 일으킨 뒤 사망한 정 일병에 대해선 가해자라는 기존 판단을 뒤집었다. 당시 군 수사 결과는 “정 일병이 선임병 2명이 근무하고 있던 초소에 찾아가 호기심으로 수류탄을 만지다 폭발해 사망했고, 함께 있던 선임병들은 이 실수로 큰 부상을 입게 됐다”고 나왔지만 위원회는 “정 일병이 수류탄 폭발 사고의 제공자가 아닌 피해자였다”고 발표했다. 군 수사가 객관적이고 구체적인 수사를 진행하지 않고 망인을 가해자라고 단정 지었다는 것이다. 위원회 측은 “동료 장병들의 진술, 상처 부위 등 관련 자료의 분석과 전문가 의견을 종합한 결과 수류탄 폭발은 정 일병 책임이 아닌 불상의 원인에 의한 것”이라며 “정 일병은 50년 이상 억울한 누명을 쓰게 됐고, 이로 인해 가족들도 큰 상처를 입었다”고 설명했다.
군대 내 부조리로 사망한 장병들에 대해서도 진상 규명이 이뤄졌다. 1985년 군복무 중 사망한 김 일병의 경우 당시 군 당국에 의해 자해사망한 것으로 처리됐지만 위원회는 “선임병에 의한 지속적인 구타, 구타로 인한 상처감염, 구타한 선임병과 격리해야한다는 군의관의 조언 무시가 극단적인 선택의 배경이 됐다”고 밝혔다. 같은 해 자해사망으로 처리된 김 병장 역시 당시 불우한 가정환경, 초소 근무에 따른 군 복무 염증이 자살 이유로 꼽혔지만, 위원회 조사에서 선임하사의 지속적이고 심한 구타 및 폭언, 가혹행위가 있었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위원회는 진상 규명에 성공한 13건 사망자 중 박 소위에 대해선 ‘전사’로, 정 일병 등 다른 사망자에 대해선 ‘순직’으로 각각 재심사할 것을 국방부 등 관계기관에 요청했다. 위원회는 조사를 거쳐 명예회복 및 보상 등이 필요하다고 인정되는 사건에 대해서는 국방부에 재심사 등을 요구할 수 있으며, 국방부는 특별한 사정이 없으면 이 요청을 수용해야 한다. 위원회 관계자는 “출범 이후 1년간 접수된 703건의 진상규명 신청 중 619건은 조사가 진행되고 있고 나머지 71건은 각하·취하 등으로 종결됐다”고 말했다.
이근평 기자 lee.keunp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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