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떤 할머니가 TV에 나와서 우셨어. 엄마 말씀이 위안부 할머니래. 일본인이 끌고가 일본 군인을 위한 성노예로 부려 먹었다는 거야. 하루에 몇십 명의 군인을 상대하기도 했대. 말도 안 돼. 어떻게 그런 잔인한 일이 있을 수가 있어? 사실일 리가 없어!
일본군 '위안부' - 세계에서 유례가 없는 일이었어
이런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일본은 한국인 처녀 수십만 명을 강제로 끌고가 군사 물자를 만드는 공장에서 부려먹었어. 또 수많은 한국 처녀를 군대 위안부로까지 이용했지.
위안부는 일본 군인을 위해 강제로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던 여성을 말하는데, 오랫동안 ‘정신대(挺身隊)’라고 불려왔어. 정신대란 나라를 위해 몸을 바친 부대라는 뜻으로, 여자들이 스스로 자원한 걸 의미해. 하지만 위안부는 결코 자원해서 간 부대가 아니야.
오랫동안 전쟁을 치르게 된 일본은 괴상한 생각을 하게 됐어. 바로 여성들이 부대와 함께 이동하며 일본 군인들의 성적 위안부가 되어 주는 것이지. 처음에는 일본에서 자원한 여성들이 이 일을 시작했어. 효과가 좋다고 생각한 일본은 우리나라와 중국, 동남아시아 여성들을 속이거나 강제로 끌고가 이런 끔찍한 일을 시킨 거야.
당시 식민지였던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은 수가 동원된 건 두 말할 필요가 없지. 끌려간 여성들의 나이는 10대 초반부터 40대까지 다양했어. 가난한 집안의 여성들이 식당 종업원, 간호사 등을 모집한다는 말에 속아 지원했고, 강제로 끌려간 경우도 많았어.
인간으로서 가장 밑바닥 삶을 산 위안부들
끌려간 여성들은 열악한 군위안소에서 인간으로서 견딜 수 없는 성노예 생활을 해야만 했어. 여성들은 하루에 평균 10명 내외에서 30명 이상의 군인을 상대로 성행위를 강요당했다고 해. 군인들은 요금을 지불했다고 하지만 지불한 요금은 위안부에게 전달되지 않은 경우가 더 많았고, 아예 무료로 운영된 위안소도 있었어.
끌려 온 여성들이 도망가지 못하도록 외출도 엄격히 제한하고, 우리말도 쓰지 못하게 했대. 또한 많은 여성들이 성병에 걸려 고생했다고 해. 더군다나 성병에 걸린 여성들은 죽이거나 쫓겨났어.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
위안부로 끌려간 사람들 | 반장 부인이 동네를 돌아다니며 한 집에 적어도 딸 한 명씩은 내놓아야 한다고 말하며 다녔다. 나는 내가 식모로 있던 집의 딸을 대신해 어떤 일본 사람의 인솔 아래 기차를 타게 되었다. |
| 시골에서 너무 가난해 매일 배가 고팠다. 어느 날 어떤 조선인 남자가 우리 시골 마을 구석까지 와서 일본 공장에 취직할 여자를 모집한다며 돌아다녔다. 나는 배고픔을 면하기 위해 따라 나섰다. |
| 친구 집에 갔다가 돌아오는 길에 파출소 앞을 지나다가 순경에게 붙들려 그 길로 위안소로 끌려갔다. |
일본 정부의 태도 - 위안부는 없다
반성하지 않는 일본 정부
일본이 전쟁에서 지자, 일본군은 ‘위안부’를 숨기기 위해 위안부들을 한데 모아 죽이기까지 했어. 살아남은 여성들은 포로 수용소에 있다가 돌아오거나 개별적으로 힘겹게 돌아오기도 했어.
하지만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한 경우도 많아. 돌아오는 방법을 몰랐거나, 알았어도 포기하고 외국 땅에 남기도 했으며,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경우도 많았어. 가족 앞에도 떳떳이 나서기 어려웠던 이들은 가족과 이웃을 피해 숨어 지내는 고통을 겪어야 했지.
하지만 일본 정부는 1990년까지 위안소는 일본군이 한 일이 아니며, 위안부는 자원해서 온 사람이라고 말했어. 그러나 일본 방위청 도서관에서 위안소 관련 자료가 발견되고, 미국에서 일본군이 위안부를 모집한 문서를 찾아내자 어쩔 수 없이 일본군이 위안부를 강제로 동원한 것을 부분적으로 인정하게 되었지. 하지만 마지못해 사과만 할 뿐 배상은 해주지 않고 있어.
1995년 7월 일본 정부는 ‘여성을 위한 아시아 평화 국민 기금’을 설립했어.
일본 정부가 법적인 책임은 회피하면서 도의적인 책임만 지겠다는 취지로 설립한 것으로, 피해 여성들이 신고할 경우 보상금을 주겠다는 거지.
배상금은 정부의 잘못을 인정하고 받는 것이지만, 보상금은 잘못은 없고 어쩔 수 없는 피해를 입었을 때 주는 거야. 물론 너무 어려운 형편에 이 보상금이라도 받고 더 이상 일본의 책임을 묻지 않기로 약속한 위안부 할머니도 있어.
하지만 대부분의 할머니와 시민 단체는 강하게 반대하고 있지. 단 1엔이라도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한 후에 받겠다는 거야. 하지만 이렇게 외로운 주장을 하는 할머니들이 노환으로 자꾸 돌아가시고 있어.
국제 사회마저도 눈물 흘리게 한 위안부 할머니
국제적으로도 위안부는 큰 문제가 되어 ‘유엔 인권 위원회’에서는 위안부가 국제법상 불법이며, 피해자들의 나이가 많으므로 빨리 해결해야 한다고 말했어. 2008년에는 일본군 '위안부' 문제에 대해 일본 정부에게 정식으로 사죄할 것과 배상할 것을 요구하는 결의안이 한국과 타이완에서 채택되었지.
‘유엔 인권 위원회’에서도 일본 정부가 피해자에게 사죄하고 존엄성을 회복시켜야 하며, 피해를 준 관련자 중 현재 살아있는 사람을 처벌하고 피해자에게는 적절한 보상을 해야 한다는 보고서를 다시 한번 채택했어(2008. 10. 30).
일본 사람들은 모조리 나쁜 사람들이라고 생각하면 안 돼. 일본 사람들 중에서도 자신들이 저지른 과거의 행동이 얼마나 잔인했으며
이웃 나라에 얼마나 큰 아픔을 줬는지 반성하는 사람들도 많아. 그중 한 부부는 위안부 할머니들이 일본에 가서 증언을 하거나 시위를
할 일이 생기면 생업을 미룬 채 할머니들의 손발이 되어 잠자리와 음식을 도와주고 통역도 해 주고 있어. 또 교과서에서도 일부러
다루지 않는 위안부에 대해 가르치다 해직된 양심적인 일본인 교사들도 있지.
더 알아보기 수요 집회가 뭐죠?
일제 강점기 때 끌려갔던 위안부 할머니들과 ‘정신대 대책 위원회’ 회원들이 매주 수요일마다 일본 대사관 앞에서 일본에게 항의하고 배상을 받기 위해 여는 집회야.
위안부 피해자들의 항의에 한마디 대꾸도 하지 않는 일본의 태도에 실망하여 1992년 1월 8일 미야자와 전 일본 총리가 한국을 방문하는 것을 계기로 시작됐어.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거르지 않고 지금까지 매주 이어져 2008년 말까지 845차례의 수요 집회가 열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