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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은 낙엽 안되기
북기 | 2020.03.10 | 조회 235 | 추천 1 댓글 1

요즘은 약간 달라졌지만 얼마 전만 해도 우리나라의 최고경영자(CEO)들을 소개하는 인터뷰는 항상 비슷한 내용이었다. 얼마나 쉬지 않고 일했나, 얼마나 회사의 발전을 위해 충성했나 등이 영웅담처럼 소개되게 마련이었다. 그들에게 ´일벌레´의 칭호는 훈장처럼 보였다. 젊은이들이 이들에게서 배워야 할 미덕은 자기희생이었다. 인터뷰 말미에는 항상 자신을 위해 희생한 아내와 자녀들에 대한 미안함이 빠지지 않았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가족의 희생은 여전히 계속돼야 할 뿐이다.

일벌레의 존재는 직장에서의 지위로만 확인된다. 직장상사나 부하 직원 외에는 별다른 인간관계가 없다. 항상 일에 관련된 이야기만 할 뿐이다. 휴가를 반납할 정도로 항상 바쁘다. 회사 업무 외에 심각한 문제는 없다. 그러나 빨리 올라간 만큼 빨리 내려와야 하는 그들의 진짜 문제는 회사를 떠난 후에 비로소 시작된다. 더 이상 자신의 존재를 확인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한때 이 땅의 남자들은 성실하고 일과 회사밖에 모르는 일본의 일벌레를 무척이나 닮고 싶어했다. 그러나 정작 일본의 아내들은 은퇴한 남편들을 ´누레오치바(젖은 낙엽)´라 부른다. 쓸어내려고 해도 땅바닥에 딱 붙어 떨어지지 않는 젖은 낙엽.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고, 오직 아내의 치마 끝만 붙잡고 다니는 은퇴한 남편을 치워버리고 싶지만 치워버릴 수 없다. 게다가 한번 태워보려고 해도 매캐한 연기만 요란하게 나올 뿐 불붙을 기미는 보이지도 않는 젖은 낙엽은 그저 짜증나는 존재일 뿐이다.

한국 남자들의 심리적 정년은 37.5세라고 한다. 학교를 마친 후 입사한 첫 직장에서 마흔살까지 버티기도 힘들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뿐만 아니다. 은퇴할 때까지 적어도 네번은 직장을 바꿔야 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평생직장은 더 이상 없다고 생각한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회사의 지위나 일을 통해 자신의 아이덴티티를 확인하려 한다. 도로의 끝이 낭떠러지인 것을 알면서도 그저 아무 생각 없이 달릴 뿐이다. 남들도 다 그렇게 하니까.

이젠 남들과 다르게 살아야 한다. 회사의 지위나 연봉이 아니라 자신만이 재미있어 하는 것을 통해 존재를 확인해야 하는 시대가 된 것이다. 은퇴는 미리 준비할수록 좋다. 재테크뿐만 아니라 즐기는 방법을 배우는 휴테크도 젊었을 때 익혀야 한다. 아내와 즐기는 법도 평소에 꾸준히 익혀야 한다. 어느 날 갑자기 돈 있고 시간 있다고 자동적으로 즐길 수 있게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즐기는 법을 배우는 과정이 곧 행복이다.

지금 전화를 들어 아내와 우아한 곳에서 외식을 약속하고 5시 정각에 칼퇴근하자. 상사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그들은 당신을 ´젖은 낙엽´으로 만들 수는 있어도 당신과 당신 아내의 행복은 절대 책임지지 않는다. 시간이 없다. ´젖은 낙엽´은 의외로 빨리 당신의 운명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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