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향기 가득
아린아린이 | 2020.03.11 | 조회 227 | 추천 1 댓글 1

집안에 꽃향기가 가득하다.

거실 가장자리에서 다소곳이 없는 듯 숨을 죽여 살던 유두화와 군자란이 꽃 봉을 이루는가 싶더니 이내 세상에서 가장 환한 웃음으로 꽃을 피웠다.

손길을 자주 주며 정성을 많이 쏟는 난에 비해 늘 의붓자식처럼 홀대를 받던 것들인데 보란 듯 찬란한 아름다움을 피워낸 감격이 마냥 나를 감동시키고 들뜨게 한다. 그것도 둘이서 함께 펼친 눈부심과 향기 높음은 그동안 나의 행위에 대한 자책감마저 불러일으켜 그냥 바라보는 것조차 부끄럽고 미안하게 만든다.

그러니까 뒤편 아파트에서 지금의 아파트로 옮겨온 것이 지난 해 8월이었으니 아마 9개월쯤 된 것 같다. 그땐 제법 이사들을 많이 오고 가는 때였는데, 바로 옆집도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간다고 했다. 사람들도 좋고, 또 같은 신앙인들이어서 금방 친해졌었는데 만난 지 얼마 안 되어 바로 헤어진다고 생각하니 서운함이 유별났다.

그런데 짐이 다 내려갔는데 복도에 나무가 심겨진 화분 하나가 남겨져 있지 않은가. 소리쳐서 화분 하나가 남았다고 했더니 그냥 버리고 간다는 것이다. 가느다란 두 개의 가지가 양팔을 벌리듯 하고 있는, 시골 냇가에나 있음직한 나무인데 물도 안 주었는지 흙은 메마를 대로 메말라 돌처럼 굳어 있고, 그나마 잎마다엔 허연 뜨물 같은 것이 묻어 있어 전혀 볼품이 없었다.

헌데 그걸 보는 순간 나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집으로 가져와서 목욕탕으로 들어가 목욕을 시키고, 흙을 파다 더 채우고 이파리를 닦아준 후 약도 뿌려서 우리 집에 함께 살 준비를 해 주었다. 그러나 나무의 이름도 무엇인지 알려고도 하지 않았고, 그냥 화분을 옆 구석에 놓아둔 채 어쩌다 생각나면 물이나 주는 정도로 관심을 가져 주지도 않았었다.

그런데 며칠 전이었다.

난에 물을 주려는데 그 옆 구석의 화분이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걸 보는 순간, 그동안 너무 무심했다는 생각이 들어 오랜만에 이파리나 닦아주어야겠다고 들여다보니, 내가 관심도 주지 않았던 사이에 새로운 이파리들이 많이 나서 싱싱해져 있고, 가지에는 작은 꽃봉오리들까지 맺혀 있었다. 그리고는 며칠이 지난 후부터 조금씩 조금씩 꽃 봉을 여는가 싶더니 앙징스런 연분홍의 작고 이쁜 꽃들을 피워냈다. 한 겨울의 눈 속에서 매화를 보는 것처럼,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여인네의 옷매무새를 연상케 하는 꽃을 바라보며 그 아름다운 모습에 마음을 빼앗기고 말았다. 그제서야 한갓 나무로만 알았던 꽃나무의 이름이 궁금해졌다.

유두화라 했다.

유두화! 이름에 의미가 있는 것 같아 꽃 모양을 찬찬히 살펴보았으나 특별히 이름에 걸맞다는 느낌을 주는 모양은 발견할 수가 없다.

그동안 유두화는 소외 받는 아픔을 꽃을 피워 내는 일념으로 삭이고 이겨냈는지 모른다. 마치 진주를 머금은 진주조개 마냥 외로움과 분노와 슬픔까지도 하늘을 여는 정성으로 키우고 가꿔, 그래 이렇게 눈물같이 정갈한 꽃을 피워냈나 보다. 맑고 아름다운 꽃을 보는 나의 눈에 유두화가 슬픔에 배인 아름다움으로 보이는 것도 그런 이유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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