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걸어가는 곳마다 물의 세상이었다 물 같은 시절이었다 물보다 더 험한 때가 있었을까 나는 물의 집 물의 도시 물의 나라였다 그러니까 나를 건너기 위해 불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내몸에 기름을 끼얹고 불을 질렀던 것이다 활활 타오르는 것이 어둠속에서 꽃 핀 것 마냥 절정으로 황홀하였다 물 건너 누가 살고 있는지 고함치며 부르는 소리가 파문처럼 부딪히며 자꾸 들려왔다 내몸에 빠져 익사하고 싶지 않다고 손사래 치고 발버둥 친 적도 있었다 이 물을 건너가야 다시 나를 만날 수 있다고 신발을 벗고 물속에 뛰어든 적도 있었다 지금은 아니다 곰팡이 지천으로 피고 구데기 창궐하는 나를 버릴 수 있는 길이므로 이 물을 건너가야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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