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 다시 태어난다면, 운문사 극락교 너머 비밀의 숲에 이름 없는 한 포기 풀꽃으로 살고 싶네. 구름도 쉬어가는 이목소 맑은 물 갈봄 없이 내려와 얼굴을 씻는 소나무 곁에 정갈한 수건 한 장 두 손으로 받들고 비구니 꽃으로 늙어가도 좋겠네. 이른 아침, 호거산 병풍을 펴는 예불소리에 눈뜨고 깊은 밤, 구름문 열고 산책 나온 달빛, 그 하얀 발자국 소리를 베고 잠이 들겠네. 문살을 스치는 바람에도 일어나 합장하고 오백년 소나무가 땅을 향해 경배하는 겸손을 배우겠네. 그대, 마음이 슬프거나, 어지럽다면 함께 가지 않겠나. 호거산 줄기 속 연꽃처럼 피어난 운문사 극락교 너머 비밀의 숲으로, 목탁 속 같은 이 골짜기 몸속을 울리고 나오는 독경 소리들 비스듬히 열린 장지문에 저녁햇살로 살면 또 어떠하겠나, 우리, 가슴을 열면 하늘문도 열리는 것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