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1월 13일 조봉암 진보당 당수가 시경으로 자진 출두하는 도중 보안법 혐의로 검거되었다.
3대 대통령 선거에서 신익희가 급서한 뒤 야당 대통령 후보는 진보당의 조봉암으로 단일화 됐고, 진보당의 부통령 후보였던 박기출이 자진사퇴해 야당의 부통령 후보는 민주당 장면으로 단일화 되었다.
그러나 민주당의 핵심 주도 세력인 조병옥 김준연 등은 "이승만의 영구집권은 지원할지언정 조봉암을 지원할 수 없다", "야당 세력에 조봉암을 가담시킬 수 없다"는 강경론을 폈다.
조봉암은 58년 1월 12일 진보당 간부인 윤길중 김세룡 박기출 등과 거물 간첩 양명산이 체포된 다음날인 1월 13일 구속되었다.
조봉암과 양명산은 1심에서 각각 징역 5년을 선고받았다.
극우 단체들의 법원.판사집 난입과 정권측의 거센 항의 뒤에 열린 2심에서 둘은 사형을 선고받았다.
59년 7월 30일 대법원은 이들의 재심청구를 기각했고, 이정권은 7월 31일 두 사람의 사형을 신속하게 집행하였다.
'이승만의 장기 집권은 용인할지언정 죽산을 지원할 수는 없다'는 야당의 냉전적 사고방식 속에서 조봉암 제거의 역사적 음모는 가능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