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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와 난 정육점에서 고기가 될 뻔했다]
그렇다네 2010-08-11     조회 : 14417
[아버지와 난 정육점에서 고기가 될 뻔했다]

 












길바닥에 흙을 줏워 쳐 먹어도

성장호르몬이 콸콸 분비되는 것만 같았던

94년 중 1 때 있었던 일이다...






어느 한산한 일요일 오후.




TV를 보시던 아버지는 출출하셨는지

오랜만에 통닭이나 사다 먹자고 하셨다.

그리고 본인의 바지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며 물으셨다.



" 거 뭐시냐, 후라이가 맛있냐? 양념이 맛있냐? "


" 후라이요? 후라이드죠~ 무슨 계란후라인가... "


" 흐으음...-_- 새꺄~ 후라이나 후라이드나...
암튼 그거랑 양념이랑 뭐가 더 맛있는 거여? "


" 음~ 아무래도 요즘은 양념이 대세죠.-_-)乃 "


" 그래? 그럼 양념 먹자.
근데 후라이랑 양념이랑 가격이 똑같은 거여? "


" 양념이 뭐 하나 더 발랐으니 당연히 더 비싸죠.
양념이 후라이드보다 천원 더 비싸요.^-^ "


" 양념이 천원 더 비싸다고?
그럼 후라이 먹자.-_- "


" 예? 아..아니 저기... 만원 더 비싼 게 아니고
천원 더 비싸다고요, 천원.-_- "


" 후라이 먹자. "


" 양념이 천원 괜히 비싼 게 아니에요.
그 겉에 발라져있는 양념이 매콤달콤
얼마나 맛있는데요! 더 쫀득쫀득하게 느껴져요.
천원이 전혀 아깝지가 않... "


" 그거 개미 끓더라.
후라이 먹자. "


" ......-_- "




난 통닭을 배달시키기 위해 수화기를 들었다.

그런데 아버지께서 나에게 만원을 내미시며 통닭을 사오라는 게 아닌가.

통닭집에 주문하려고 전화기를 들었던 난

도로 전화기를 내려놓으며 아버지께 어리둥절한 얼굴로 물었다.



" 사오라고요? 왜요? 전화로 배달시키면 되잖아요. "


" 정육점에서는 닭 배달 안 해주잖어? "


" ......-_- "





그렇다...

정육점 치킨이 우리가 흔히 치킨업계 메이커라 일컫는

멕시카나, 페리카나, 처갓집 같은 닭집 치킨보다 2000원 가량 저렴했다.-_-

아버지는 이렇게 늘 맛이니 양이니 다 무시하고

2000원 저렴하다는 이유로 오로지 정육점에서만 통닭을 시켜주셨다.



그래서 어린 마음에 메이커 페리카나, 멕시카나

그 카나 얘네들이 너무 먹고싶어서

정육점 아줌마한테 정육점통닭 가격을

제발 좀 2000원 인상하면 안 되냐고 조른 적도 있었다.-_-



난 아버지께 이번 한번만 메이커 먹자고

다른 때보다 더욱 필사적으로 졸라보려고 했다.



하지만...

그 순간 아버지의 눈동자에선

결코 정육점 이상의 것은 보이지 않았고...

이미 그의 영혼은 정육점 통닭을 우적우적 뜯고있었으리라.......



-_-






결국 난 직접 가서 주문하고 직접 가서 찾아오는 것이 아주 매력적인-_-

정육점 통닭을 사들고 다시 집으로 부리나케 돌아왔다.

비록 싼 맛에 늘 지겹도록 먹어왔던 정육점 통닭이었지만,

그 순간만큼은 통닭을 먹는다는 그 아름다운 현실이 그저 행복해서

통닭을 품에 안은 채

꼬추가 아랫배를 탕탕탕 후려치도록

미칠 듯한 스피드로 집에 뛰쳐들어갔다.



그리고 거실에 상 하나를 펴고

치킨을 먹으려고 아버지랑 둘이 상 앞에 마주앉았다.

그런데 얼른 이 치킨들을 위장에 벽돌 쌓듯 차곡차곡 쌓고싶은 내 심정과는 달리,

아버지는 드시지는 않고 치킨을 봉투 째로 들고 이리저리 살피시는 게 아닌가.

그러시더니 이게 무슨 한 마리냐며 살짝 역정을 내시는 것이었다.



아버지 말을 듣고 치킨이 담긴 봉투 안을 살펴보니,

정말 내가 봐도 평소에 비해 양이 다소 비는 것 같았다.

이게 정육점 아줌마의 자의든 실수든 분명 덜 담은 것은 확실했다.



" 아니, 이 아줌마가 무슨 장사를 이따고로 해?!
야, 이거 그대로 정육점에 들고 가서
아줌마한테 보여주고 한 마리 안 되는 것
같으니깐 더 달라고 해. 활화산 너도 다 컸으니까
아빠가 안 가도 니 선에서 끝낼 수 있지? "


" 그럼요!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제가 아줌마한테 따지고 통닭 더 담아올게요!
이 아들 활화산이만 믿으십쇼! "




아버지가 다른 것을 다시 가서 바꿔오라고 하셨으면

그냥 현실에 만족하자는 둥... 이것도 다 운명이라는 둥

귀찮아 가기 싫어하며 온갖 핑계를 대며 뻐팅겼겠지만...



하지만 그 대상이 다른 것도 아니고,

내가 워낙에 미친 듯이 좋아라하는 치킨이었기에!

난 아버지의 지시에 일말의 주저함도 없이

곧바로 치킨봉투를 그대로 들고 정육점으로 향했다!

두세 마리도 아니고 벼룩의 간을 빼먹는 심사로

한 마리 마저 정직하게 담지 않은

이 얍삽한 정육점 아줌마를

사랑과 정의의 이름으로 도저히 용서할 수 없었다!



' 이 아줌마가 어린 중딩이 사러왔다고
날 아주 설렁설렁하게 보고 통닭을 이따고로
담아준 게 틀림없어! 하지만 이 아줌마야,
당신 오늘 상대 잘못 골랐어...
아들 같은 사람한테 어디 개피한번 봐봐!-_-+ '




통닭을 왜 이렇게 양이 비게 담아줬냐고 따지면

분명 정육점 아줌마는 무슨 소리냐고 어린 날 우습게 볼게 뻔했다.

그래서 난 정육점 문 앞에 당도했을 때 두 눈에 빡 힘을 줬고,

아줌마의 기선을 제압하기 위해 반항아처럼

정육점 문을 조금은 힘을 주어 세게 열어 재끼고 들어갔다!




" 아줌마!!! "




내가 큰소리로 아줌마를 부르며 안으로 들어오자,

냉동실에서 걸려있는 고기를 꺼내려고 막 팔을 뻗고있던 아줌마는

조금은 놀란 눈으로 나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방금 튀겨갔던 통닭을

내가 그대로 봉지 째로 들고 다시 돌아온 것을 보고는

아줌마의 그 놀란 눈빛이 의아함으로 바뀌었다.



" 어? 화산이 너 왜 또 왔어?
왜? 닭에 뭔 문제 있니? "




뻔뻔하게 치킨에 뭔 문제 있냐고 묻는 아줌마.

순간 열이 받은 난

통닭 봉투 안을 아줌마에게 벌려 보이며

평소에 비해 확연하게 부족한 통닭 양에 대해 항의를 시작했다!



" 아니, 아줌마!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무슨 한 마리예요? 평소보다 양이 훨씬 적잖..





덜커덩!!!!!!





그러던 그때였다!

내가 막 열을 올리며 통닭 양에 대해

아줌마에게 열을 토하며 따지려고 하는 순간!


갑자기 정육점 출입문이 부셔질 듯 거세게 열리더니

20대 후반의 건장한 청년 한 명이

잔뜩 성이 나서는 씩씩거리며 정육점 안으로 들어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란 나와 정육점 아줌마는 잠시 하던 행동을 멈추고

갑자기 등장한 이 청년을 휘둥그래진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이 청년이 들어오자마자

갑자기 미친 듯이 자신의 옆머리를 마구 쥐어뜯으며

욕설이 섞인 괴성을 지르는 것이 아닌가!-ㅁ-;;




" 흐아아악!!!! 씨바아알~!!!!! "




다혈질의 내가 순간 몸이 움찔거려

나도 모르게 몇 발짝 뒷걸음질을 칠 정도로

청년은 금새라도 누구 하나 쳐죽일 것 마냥

분을 참지 못하고 살벌하게 개난리를 쳐댔다.

두 눈에 살기가 용접을 넘어 거의 레이저 수준이었다..;;



80년대 후반 조금 노는 남고생들이 많이 따라했었던

약간 파마끼가 있는 강백호머리(삭발말고 슬램덩크 초반부 머리)에

갈색 가죽잠바를 입은 떡대 좋고 매우 거칠어 보이는 이 청년..


정육점 주인아저씨의 막내 동생이었고,

고로 정육점 이 아줌마의 시동생이었다.

이 정육점은 주인부부 내외와 이 시동생 청년까지

이렇게 셋이서 같이 고기장사를 하는 곳이었다.



정육점 아줌마는 깜짝 놀라서는 흥분한 시동생 청년에게 다가가

또 무슨 일이냐고 물으며, 날뛰는 그를 진정시키려고 안간힘을 써댔다.


그러는 바람에...

통닭 양에 대해서 한번 크게 따져줄려고 갔던 난,

통닭봉투를 품에 고이 안은 채

길바닥에 나뒹구는 돌멩이 마냥...

구석에서 점점 존재성이 희미해져 감을 느꼈다...-_-;





" 아이고~ 참... 도련님!
진정 좀 해요, 쫌~ 왜 이렇게 화가 났대 또? "


" 크아아아악!!!! 씨바아알!!! 아아아악!!!! "


" 아이고~ 도련님, 진정 좀 하라니깐!
무슨 일 때문에 그래요, 또? 진정 좀 하고
차분하게 말 좀 해봐. 어디서 이렇게
잔뜩 화가 나서 온 거야.. 하이고 참... "





옆에서 통닭을 품에 고이 안은 채-_-

정육점 아줌마와 시동생 청년의 이야기를 살짝 엿들어보니..

그가 변심한 애인 때문에 그렇게 눈이 돌아갔음을 알 수 있었다.

애인이 딴 놈이 생기면서 이별을 고한 것 같았다.




" 이 씨 발 쌍년놈들 둘 다 찢어 죽여버리겠어!!
크아아아악!!!! 흐아아아아아악!!!!!"


" 아이고~ 참..도련님! 쫌 진정 좀 해요~
도련님, 도련님! 진정 좀 하라니깐, 쫌~!! "


" 아 씨 발 열받어!! 이 잡것들 갈기갈기 찢어 죽여버릴라!!
크아아악!!! 둘 다 사지를 찢어 죽여버리겠어!!! "







거 새끼 참...

찢는 거 되게 좋아하네...;;

그 년놈들이 무슨 김장김치도 아니고...-_-



물론 사연은 안타깝고 시동생 청년에게 측은지심이 들었으나,

솔직히 인간적으로...

이 시동생 청년은 개다혈질이어도 너무 개다혈질이었다..-_-;;




그렇게 변심한 애인으로 인해 분에 못 이겨

나이 많은 형수 앞에서도 안하무인으로

개발광을 떨던 시동생 청년.



한참을 그러다가 자기도 지친 건지...(개발광이 은근히 칼로리 소비가 많다-_-)

아님 변심한 애인에게 분노를 버리고 체념을 한 건지...

FBI가 와도 진압이 안 될 것 같던 시동생 청년은

어느 순간 개발광을 멈추더니 가게 안에 방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그러더니 금새 옷을 갈아입고 나와서는

냉동실에서 걸려있던 큰 고기 덩어리를 꺼내 썰고 자르고

고기손질을 하며 아무 말 없이 묵묵하게 일만 하는 것이었다.

정육점 아줌마도 그때서야 조금 마음이 놓이는 지

시동생이 어지롭혀 놓은 정육점 안을 주섬주섬 정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그의 발광이 상황이 종료되는 듯 하면서

그 광란의 소용돌이였던 정육점에도

고요와 평화가 다시 찾아올 수 있었다...





그러던 중 정육점 아줌마는,

예상치 못한 시동생사태로 인해 잔뜩 쫄아서는

통닭봉투를 품에 안은 채

벽 구석탱이에 마네킹 마냥 뻣뻣이 서있던 나를 발견하고는

넌 또 뭐야?! 하는 눈빛으로 흠칫 놀라는 것이었다.-_-



" 화산이 넌 또 왜 그래?
너 왜 아까부터 닭 들고 그러고 서 있어?
닭에 무슨 문제 있니? 왜 닭 들고 다시 왔어? "



아줌마가 이렇게 나에게 물어오면서,

그제서야 시동생 청년으로 인해 우주 저 멀리 사라졌었던

내 존재성이 서서히 돌아옴을 느꼈다...-_-



고개를 숙여 봉투 안에 치킨들을 들여다보니

시들어 가는 한 떨기의 장미처럼

그 생기를 잃고 점점 을씨년스럽게 식어가고 있었다...

그래! 난 얍삽하게 장사한 아줌마를 응징하고

부족한 통닭을 정당하게 더 받아갈려고 온 게 아닌가!



'야, 활화산! 너 지금 바보처럼 뭐하고 있는 거야?!
저 시동생 아저씨를 니가 왜 의식해?!
저 시동생 아저씨 무섭다고 통닭 못 받아갈 이유가 어딨어?!


지 혼자 애인한테 차이고 개발광 떠는 거 아냐!
니가 저 시동생 아저씨 찼니?
넌 손님이야! 저 아저씨랑 아무 상관없어!
너는 그저 아줌마한테 따지고 통닭만 더 받아 가면 되는 거야!
얼른 아줌마한테 따져! 정육점을 뒤집어버리란 말이야!!! '



난 이렇게 내 스스로에게 질책을 가하고

다시 한번 독하고 냉정하게 마음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다시 한번 아줌마에게 통닭봉투 안을 보여주며

평소보다 부족한 통닭 양에 대해 따져야만 했다!



무..물론 바로 앞에서

시동생 청년이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은 얼굴을 한 채

고기 덩어리를 칼로 썰고 자르고 찢고있었던지라;;

목소리는 감기몸살 된통 걸린 락커 마냥

한 두 옥타브 정도 내려야만 했다...;




안 그래도 개다혈질의 불같은 시동생 청년.

거기에다가 변심한 애인한테 차이고 와서 정신분열상태..

그런 그가 지금 피카츄인형도 아니고 바비인형도 아닌,

칼을 들고있지 않은가!

칼을...-_-;;



물론 정육점에서 일하는 그이기에 칼 든 모습에

이상할 것도 무서워할 것도 없건만..

앞서서 그의 개발광을 본 직후였고

더구나 붉은 핏빛의 정육점 안에서 그랬으니,

칼 들고 고기를 써는 그의 모습이 어린 내 눈에는

더더욱 무섭고 그 순간 살인마처럼 보이는 것이었다...;;




아무튼 나로서는 얼른 아줌마한테 따지고

치킨을 더 받아서 이 지옥 같은 정육점에서 후다닥 뛰쳐나가야만 했다!

난 바로 앞에서 고기를 손질하는 그의 눈치를 살살 보며

아줌마에게 조심스럽게 통닭 양에 대해 따지기 시작했다.


물론 아줌마한테 따지긴 따지되,

거의 부드럽게 속삭이는 귓속말 수준이었다.

따짐이 너무 감미로워서

아줌마가 행여나 느낄까 무서웠으리라...-_-;;




" 아니, 아줌마... 어떻게 이러실 수 있어요...?
이것 좀 보세요. 이게 무슨 한 마리예요..?
평소보다 양이 훨씬 적잖.. "






빠직!!!!! 쾅쾅쾅쾅쾅!!!!!!



" 크아아아아악!!!! 씨바아아알~!!!!!! "








허억...

내가 아줌마에게 따질려는 그 순간..

묵묵히 고기 덩어리를 손질하고 있던 시동생 청년이

고기를 썰다가 또 자신을 찬 애인이 생각이 났는 지

갑자기 또 폭발을 해서는 도끼질 하 듯이

칼로 고기 덩어리를 내려찍는 게 아닌가!

도마가 금방이라도 두 동강이 날 것만 같았다...;




" 크아아아아악!!!! 이 개 같은 녀어어언~!!!!! "



쾅쾅쾅쾅쾅쾅~!!!!

푸쉭푸쉭푸쉭!!!!



" 감히 딴 놈이랑 바람이 나~?!!
나쁜 년! 내가 지한테 얼마나 잘해줬는데!
크아아아아아악!!!!! "



찌지지지직~!!!!

쓰싹쓰싹쓰싹!!!!

쾅쾅쾅쾅쾅쾅!!!!





그는 고기 덩어리에 감정이입하고 있는 것이 분명했다!-_-;;

고기 덩어리를 미친 듯이 쑤시고 찢고 썰고 내려찍고...

실연에 의한 극도의 분노가 실리면서

고기손질이 아니라 점점 난도질에 가까워지고 있었다!!!



차라리 고기 덩어리에 하이킥을 날려라.. 이 미친놈아!-_-



그의 미친 듯이 난자하는 광폭한 분노의 칼질에,

고기 덩어리는 도마 위에서 들썩들썩..

발레 백조의 호수를 공연하고 있었다...



정신없이 일하면서 실연의 그 분을 삭히려고 했던 시동생 청년.

하지만 끝내 얼마 못 가 분을 못이기고 또 다시 폭발해버린 것이었다...

정말 야성미로 새 역사를 쓰는 새끼였다.-_-;;



그리고 그로 인해 내 닭에 대한 항의투쟁은

그렇게 또 한번 짐승의 발광 앞에 철저하게 묻혀버렸고,

내 말을 듣고있던 아줌마가

어이구~ 이걸 어째! 하며 시동생 청년에게 고개를 돌려버리면서...

내 존재성은 또 다시 허공에 사라지는 담배연기처럼 희미해져갔고..

희미해져 가는 존재성을 넘어,

난 점점 투명인간이 되어가고 있었으리라......-_-;;




정말이지...

김수미 간장게장에

풍덩 다이빙하는 기분이었다...






그런데 그러던 그때!!!

난 고기 덩어리를 거칠게 썰던 그와

순간적으로 우연히 눈이 마주쳐버리고야 말았다!



거칠게 씩씩거리는 그는 칼질을 멈추고

넌 뭐야? 하는 눈빛으로 계속 날 노려보았고,

왜 사람이 앞에 있는 대상이 너무 무서우면

오히려 다른 쪽으로 눈길을 돌리는 게 아니라

순간 넋을 잃고 그 대상을 더 바라보게 되지 않던가.

얼어버린 난 그렇게 그와 몇 초간이나 눈을 맞추고 있었다...-_-;;;




" ......(-┏+ "


" ......(-ㅁ-;; "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잊을 수 없는 눈빛이었다.

그것은 사람의 눈이 아니었다...

정말 누군가를 금방이라도 쳐죽여버릴 것 같은

살기 가득한 살인마의 눈빛이었다!

사람 눈보고 그 자리에서 가위눌려보기는 처음이었다...


아마 동물의 제왕 숫사자도 이 새끼와 눈이 마주쳤다면,

갈기를 여고생처럼 양 갈래로 곱게 따고

아흥~♡하고 애교를 부렸을 것이다...



눈빛이 꼭 날 냉동실에 걸린 고기 보듯 보는 눈빛이었다.

순간 극도의 공포에 휩싸여버린 난,



으으... 안돼...
아무리 그래도 인육은 불법이라구~!!
난 고작 14살이란 말이야~! 이 짐승새꺄~!!T 0 T;;



라고 속으로 울부짖으며

나도 모르게 벌벌 떨다가 밖으로 도망쳐버리고야 말았다!

그리고 집까지 부랄이 바람결에 휘날리도록 미친 듯이 뛰었다!!






집에 들어가니 기다리다 지치신 아버지께서

거실로 나오시며 물으셨다.



" 아니, 뭐가 이렇게 오래 걸린겨?
왜 아줌마가 통닭 더 달랬더니 막 뭐라고 하디?
한 마리 다 준거라고 우겨? "


" 아..아니요..."


" 뭐여?! 이게! 통닭 그대로 아녀?!
하나도 안 받아왔네? 아줌마한테 말 안 한거여? "




내가 오자마자 통닭을 더 받아왔나 하고

봉투 안을 들여다보신 아버지께서는

달라진 게 전혀 없자 인상을 쓰시며 물으시는 것이었다.



" 너 정육점 갔다오긴 갖다온거여? "


" 그..그럼요! 가..갖다왔죠. 하하...^-^;; "


" 그런데 왜 통닭이 그대론겨?
이게이게 또 가갔고 아무 말도 못하고 왔구먼!
14살이나 먹어 갖곤 그런 말도 제대로 못하고 와? "


" 아니에요~ 말하고 막 따졌어요.
그리고 제가 양이 빈다고 더 달랬더니
아줌마가 미안하다고 사과하면서
치킨 몇 조각 더 담아줬어요. "


" 이게 웃기고 있어, 아주그냥!
임마! 그럼 왜 통닭이 그대로냐고? "


" 오다가 배고파서
제가 몇 조각 집어먹어서 그래요..하하..^-^;; "




나로서는 아버지께 이렇게 거짓말을 할 수밖에 없었다.

우리 아버지도 정육점 그 새끼보다는 덜 하셨지만

다혈질이 아주 심하신 분이셨기에,

괜히 정육점에 직접 행차해서 말싸움이라도 벌어졌다간

아버지와 시동생 청년 이 시한폭탄 같은 두 사람 사이에

무슨 끔찍한 불상사가 일어날 지 모르는 일이었다.

우리 아버지 성격에 손님 앞에서도 그 개발광 떠는 청년의 모습을

그냥 보고만 있으실 분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이것이 걱정되어 어떻게든

아버지께서 정육점에 가시는 일이 없도록 거짓말을 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는 내 말을 믿지 않으셨다.






" 이 새끼가 어디서 아빠 앞에서 거짓말이여?!
뭘 오다가 배고파서 집어먹어? 아까 그대~로고만!
아빠가 딱 보면 모를 것 같냐? 이게 보니깐 정육점
까지 갔다가 괜히 말하기 뭐하니깐 별 말도 못하고
그냥 왔고만 뭐. "


" 아빠.. 그..그게 아니라... "


" 시끄러워, 이눔새꺄. 아빠 앞에서 계속 거짓말할거여?
으이그~ 이놈아! 사내새끼가 그렇게 숫기가 없어 어떡하냐?
가갔고 양 부족합니다! 더 주세요! 라는 말을 왜 못햐?
그 아줌마 잘못이고 당연히 우리가 더 받아와야 하는 건데..
이런 말도 못하고 나중에 사회생활 어떡할려고 그러냐?
으이그~ 이걸 엇다 써? "


" 그..그게 아니라..-_-;; "


" 됐어! 넌 집에 있어. 아빠가 가서 더 받아올텡게. "


" 예..예~?! 지금 정육점 가신다고요?-ㅁ-; "


" 새끼가 이게 뭐 어려운 일이라고
아빠가 직접 나서게 만드는 거여? 으이그~
기다리고 있어. 아주 그냥 한 마리 반을 받아올거여!"





이것도 하늘의 뜻이다...

이번 한번만 이 양에 만족하고 먹자...

닭고기 많이 먹어서 좋을 거 없지 않느냐...

난 정말 애절하게 아버지의 팔을 붙잡고

그 짐승이 도사리고 있는 정육점에 못 가시도록 말려보았지만,

아버지는 끝까지 뜻을 굽히지 않으시고

씩씩거리며 정육점을 가시고야 말았다.



차라리 아버지가 겁이 많고 확 쪼는 성격이면

큰 일이 생길 일도 없기에 오히려 안심이 되겠지만,

불같은 성격상 그러실 분이 아닌 걸 잘 알기에

정육점 시동생 청년과 여차했다 불상사라도 생길까봐 걱정이 됐다.





그렇게 아버지께서 정육점에 가신 지

5분이 지나고...

10분이 지나고...


점점 시간이 흐를 수록

극도의 불안감이 전신을 휘어 감기 시작했다.

그렇다고 무슨 일이 생겼을 것 같은 불길함에

정육점에 가 볼 엄두도 나지 않는 것이었다.


거실에서 왔다갔다하며 아버지를 기다리는 시간동안

1분이 한 시간처럼 느껴졌고 아무 일 없도록 기도까지 했다.

제발...

제발.......




마음을 편하게 먹고 기다려보려 했지만

워낙 불같은 아버지의 성격을 잘 알고

정육점 청년이 얼마나 애니멀스러운 지 잘 봤기에

두 맹수를 생각하면 도저히 마음을 놓을 수가 없었다.



그리고 극도로 불안하다보니

어쩔 수 없이 자꾸만 머릿속에서

두 사람간의 불길한 장면들이 상상되는 것이었다...

그리고 그 상상 끝에는 꼭 아까 봤던

칼 든 시동생 청년의 모습이...-_-;;





그렇게 노심초사 안절부절하며 거실에서 아버지를 기다렸다.

그러던 그때! 10분쯤 더 흘렀을까?

정말 천만다행히도 아버지께서 어디 한군데 흐트러짐 없이

너무나도 멀쩡한 모습으로 집에 돌아오신 것이었다!

어찌나 반갑던 지 눈가에 눈물이 고일 뻔하기까지 했다.



아버지께서는 정육점 가서 아줌마에게 따지고

자신이 호언장담한대로 통닭을 더 받아오는데 성공하셨는지

통닭봉투를 든 채 잠시 날 의기양양한 얼굴로 바라보셨다.

그리고 나에게 다시 한번 질책하듯이 한 말씀 하셨다.



" 임마! 아빠처럼 이렇게 가갔고 딱 받아오면 되지,
이게 뭐가 어렵다고... 새끼! 더 달라고 왜 말을 못햐? "


" 더 달라니까 바로 줘요?-ㅁ- "


" 그럼! 아빠가 달라는데 더 주지! 안 주냐?
안 그럼 아빠가 정육점 확 뒤집어 엎어버렸지! "


" 저..저기 혹시 지금 정육점에 아줌마 혼자 있어요..?
옆에 또 누구 없던가요...?
칼 들고있는 놈이라던 지..-_-)a "


" 아 이놈아! 그럼 정육점에서 칼 들고있지,
뭐 국어사전 들고있겠냐?
아! 아줌마 옆에 혈기왕성한 놈 하나 있긴 하더라.
그런데 왜? 그건 왜 물어? "


" 아..아무 것도 아니에요...^-^; "





오.. 역시 우리 아버지였다.+_+

지금도 그 짐승이 칼로 고기를 난자하며 씩씩거리고 있었을 텐데

그놈이 그 발광하는 와중 속에서도

아줌마에게 따지고 닭을 더 받아오시다니...

역시 어른들의 세계인가...

14살 어린 내 눈에만 그 짐승놈이 무섭게 보인 거였나..?-_-)a




아무튼 난 아버지가 그 순간 너무 자랑스러웠고!

경건할 정도의 존경심을 표했다.+_+













하지만...

그 존경심은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정말 이상하게도 아버지께서는

통닭봉투를 상에다가 내려놓으시자마자,

내가 치킨을 집을 엄두도 못 내게

봉투 안에 손을 푹푹 찔러 넣으시며

몇 조각을 우르르 끄집어내어

허겁지겁 급하게 막 드시는 게 아닌가!



치킨을 그렇게 좋아하시는 분도 아니고,

두세 조각 정도 천천히 드시고 나면

느끼해서 못 먹겠다고 자리에서 일어나시는 분인데..

이 순간 아버지의 이 모습은 충격적일 정도로 낯선 모습이었다...




하지만 아버지께서 갑자기 왜 이렇게

치킨을 우르르 쏟아내시며 허겁지겁 급하게 드시는 지..

난 아버지께서 통닭봉투를 상에 내려놓으시는 그 순간에

바로 눈치를 챌 수 있었다...









그 순간 난 분명히 보았다...


통닭의 양에

전혀 변화가 없었음을.......





< 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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