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6학년인 빈이.
지각이다!
"아이 씨~ 엄마! 왜 안 깨웠어요!"
짜증섞인 원망을 엄마에게 던지면서 서둘러 책가방을 챙기는 빈이.
엄마는 빈이의 수선에도 아랑곳않고 묵묵히 설거지에만 열중이다.
더 신경질이 나는 빈이. 마치 엄마가 고의로 자신의 지각을 연출시킨 것 만 같아 입이 튀어나온다.
"씨~"
화가나는 빈이는 인사도 없이 뛰어나간다. 그제야 뒤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들린다.
"빈이야, 밥은 먹고 가야지!"
"몰라!"
뾰로통해진 빈이. 엄마에게 걱정을 안겨주고 싶다. 자신이 밥도 먹지 않고 학교에 가면 분명 엄마는 자신을 걱정할 것이다.
'칫! 날 지각하게 만들었으니 엄마 속도 좀 긁어 나야돼!'
그것으로 복수를 대신했다고 생각하며 열심히 뜀박질을 해대던 빈이는 그러나 금새 지친다. 기운이 없다. 배가 고파오는 것이다. 하지만 꾹 참고 학교로 향하는 빈이. '오늘은 점심도 조금만 먹어야지 그래서 아주 홀쭉한 모습으로 엄마앞에 나타나야지...'
하지만 학교가 가까워 올수록 이제 곧 발등에 떨어질 불덩이들 때문에 빈이의 마음은 새로이 무거워진다. 선생님의 꾸지람과 반애들의 조소 섞인 비아냥거림, 그리고 지겨운 방과후의 화장실 청소생각에 엄마에 대한 원망은 잠시 수그러들고 있다.
"아이 씨~ 짱나!"
아무도 없는 휑한 등굣길은 빈이의 마음을 한층 더 뛰게 만든다. 아이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어른들도 아무도 없다. 참으로 기묘한 길거리 풍경이었다.
휑한 아스팔트의 09시 00분, 사람이 아무도 없다.
교문 앞.
살금살금 운동장 안으로 들어서는 빈이.
역시 아무도 없는 빈 운동장이 썰렁하다 못해 무섭다.
빈이의 지각은 이번이 두 번째다. 초등학교 6년간 지각은 단 두 번 뿐인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그 한번의 지각이 바로 어제였다는 것이다. 빈이의 담임은 유난히 지각을 싫어한다. 어젠 그나마 처음이라 상당히 가벼운 벌을 받았었다. 그리고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다는 말로 시작과 끝을 장식한 반성문도 제출했었다.
하지만 바로 오늘 또 지각인 것이다. 그러니 이번엔 꽤 단단히 각오를 해야할 것이었다.
빈이는 벌써부터 심장이 콩닥거린다. 머릿속이 하얘지면서 새삼 엄마가 원망스러워 진다.
조심스레 운동장을 지나 복도로 들어서려는데 뒤에서 누군가의 고함이 터져 나온다.
"얌마! 너 뭐야 임마!"
화들짝 놀라며 뒤돌아보면 그곳엔 레슬링 선수같이 생긴 수위 아저씨가 서 있다.
상당히 험상궂은 얼굴! 빈이는 순간 몸이 얼어붙는다.
그러자 수위가 다가온다.
"너 이새끼... 지각생이구만... 그렇지?"
"예?... 저..."
할말을 잃는 빈이. 그저 다가오고 있는 수위의 거대한 팔뚝만 바라보고 있었다.
수위는 빈이곁으로 다가오자마자 다짜고짜로 머리통을 한 대 갈겼다. 아프기보단 깜짝 놀라서 당황스럽다는 듯이 수위를 올려다보는 빈이. 그런 빈이의 머리통을 한 대 더 갈기는 수위.
빈이는 정말 어이가 없었다. 아무리 자신이 지각을 했다지만 수위에게까지 맞을 이유는 없다고 느낀 것이다.
그렇게 빈이의 머리통을 두 대나 갈긴 수위는 제 할 일을 다 했다는 듯 성큼성큼 저쪽으로 걸어갔다.
"왜 때려요?"
빈이가 억울한 심정으로 소리치자 저 만치 가던 수위가 뒤를 홱 돌아다본다.
"으헉!"
빈이는 순간 심장이 내려앉은 듯 깜짝 놀랬다.
돌아보는 수위의 두 눈이 주황색이었던 것이다!
"이놈 자슥이..."
수위가 다시 빈이에게로 다가오고 있었다.
그는 빈이에게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있는 듯 했다.
아니 살기를 띄고 있었다.
수위의 눈은 검은 동자가 없이 전체가 그냥 주황색으로 빛나고 있었다. 그리고 그의 근육들이 거대하게 부풀어오르고 있었다.
빈이는 그런 수위에게서 극심한 공포를 느꼈다.
도대체 수위가 왜 저러는지 도무지 알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결국 저 수위가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뇌리를 스쳤다.
"으아악!"
빈이는 기겁을 했다.
있는 힘껏 도망치기 시작했다.
"거기서 새꺄!"
뒤에서 수위의 성난 목소리가 들려왔지만 빈이는 쉬지않고 뛰었다. 자신이 어디로 뛰고 있는지도 제대로 파악이 안되는 상황속에서 그저 무작정 뛰었다.
뒤에서 쫓아오던 발소리가 점점 희미해지기 시작했다. 거리가 꽤 멀어진 것이다.
그래도 안심이 안된 빈이는 일단 눈앞에 보이는 화장실 안으로 몸을 숨겼다.
헉헉, 가쁜 숨을 조심스레 내쉬며 좌변기에 쭈그리고 앉아 상황을 정리해보는 빈이.
일단 자신이 지각을 했었다.
그래서 바삐 학교로 왔다.
그러다가 복도에서 수위아저씨를 만났다.
그런데 수위아저씨가 다짜고짜로 자신의 머리를 때렸다.
그리고 잠시후 그의 눈동자가 주황색으로 변하면서 자신을 쫓아왔다.
그리하여 자신은 도망쳐 여기로 오게되었다.
여기까지였다. 다시한번 좀전에 일어났던 일들을 찬찬히 생각해보던 빈이는 머리를 저었다.
납득이 가지 않는 상황이었다.
지각생을 수위가 그렇게 때릴리도 만무했고 그 수위의 눈이 무섭게 변해 자신을 쫓아온다는 것도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빈이는 놀란 가슴을 어느정도 진정시키고 살며시 화장실을 빠져 나가 보았다.
복도에는 아무도 없었다.
어디선가 동요를 부르는 아이들의 합창소리가 나직하게 들려왔다. 새삼 주위를 둘러보는 빈이. 그곳은 3학년 교실 앞이었다.
서둘러 자신의 반으로 향하는 빈이.
근데 그날따라 자신의 반이 어디있는지 도통 찾을 수가 없었다. 이 학교에서 6년을 다닌 자신이 자기반을 못찾아서 헤맨다는 것은 말이 안되었다.
하지만 분명히 자기 반이 있어야할 자리에는 엉뚱하게 양호실이 있었고 혹시나 싶어 양호실이 있었던 곳으로 가보면 그곳엔 체육기구 보관창고가 있었다.
6학년이 있어야할 층엔 1학년 꼬마애들이 득시글거렸고, 어떤 층엔 창문이 하나도 없는 교실들만 가득하기도 했었다.
'우리학교에 이런 곳이 다 있었나?'
마치 하루사이에 누군가가 학교의 모든 구조를 엉망으로 뒤바꿔 버린 것만 같았다.
결국 교실 전체를 다 돌아다닌 끝에 빈이는 가까스로 자신의 반을 찾았다.
'아, 이런곳에 우리반이 있었구나!'
하지만 그동안 시간은 또다시 막무가내로 흘러가버려 어느새 1교시 수업이 끝나갈 무렵이었다.
늦어도 대책없이 늦은 것이었다.
'아아... 어쩌지...'
빈이는 교실문을 열 엄두가 나지 않았다.
'그냥 1교시 끝나면 들어갈까?'
하지만 조금이라도 더 빨리가는게 나을 듯 싶었다.
빈이는 용기를 내어 살며시 교실문을 조금 열었다. 그리고 문 틈새로 교실안의 분위기를 살펴보았다. 교실안은 정말 쥐죽은듯이 조용했다. 아무리 수업시간 중이라지만 이렇게까지 조용한 자신의 반을 본적이 없었던 같았다. 너무 조용해서 또 다시 잘못 찾은 건 아닌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그렇게 잠깐 문틈사이로 안을 살피던 빈이는 어느순간 담임선생님과 눈이 마주친다!
"헉!"
자신도 모르게 외마디 소리가 튀어나오는 빈이.
선생님의 눈빛!
그 눈빛이 너무 낯설다!
그리고 너무 무섭다!
빈이는 두려움에 떨며 슬금슬금 뒷걸음질을 하기 시작했다.
그 때였다.
갑자기 교실문이 확 열리며 담임선생님의 무서운 모습이 드러났다!
"이빈! 뭐하고 있는 거야?"
버럭 고함을 지르는 선생님.
빈이는 숨이 탁 막혀왔다. 예상했던거 보다 선생님의 반응은 훨씬 무섭고 살벌했기 때문이다.
"이리 따라들어와!"
선생님은 빈이를 냉담하게 노려보다가 교실안으로 들어간다.
어쩔 수 없이 교실로 들어가는 빈이.
자신에게로 쏠리는 아이들의 시선이 따갑다 못해 부담스럽다.
교탁 옆에는 빈이의 친구 철민이가 무슨 잘못을 하다 걸렸는지 무릎을 꿇고 손을 들고 있는게 보였다.
'철민인 무슨 잘못을 한 거야?'
그러는 찰나에 종이 울린다. 1교시가 끝난 것이다.
그러자 선생님은 빈이와 철민을 보며 따라오라고 하며 어딘 가로 간다.
빈이는 책가방도 못 풀고 철민과 함께 선생님의 뒤를 따라 어디론가 갔다.
그런데 선생님이 가는 곳이 이상했다.
처음에 교무실로 갔는데 교무실 안쪽에 또 조그만 문이 있었고 그 안으로 들어가니 자그마한 방이 나왔다. 무슨 병원 진료실 같은 분위기의 방이었다.
" 여기서 기다리고 있어!"
선생님은 잔뜩 화난 얼굴로 그렇게 말하고는 자신은 또 어느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갔다.
선생님의 모습이 사라지자 빈이와 철민은 동시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는 서로를 바라보며 조금 안심을 한다.
"야, 철민아 넌 무슨 잘못했냐?"
조금 여유를 찾은 빈이가 나지막하게 물었다.
"잘못은 무슨 잘못... 그냥 책읽다가 좀 더듬거렸더니 그것가지고 막 화를 내면서 불러냈어."
"진짜?"
"그래 임마! 오늘 우리 선생님 좀 이상해. 별것도 아닌 것 가지고 괜히 버럭 화를 내고말야, 야 내가 책 잘 못읽는게 어제오늘 일도 아니었잖아. 그거가지고 새삼스레 말야..."
철민은 상당히 불만스런 목소리였다. 듣고 보니 선생님이 좀 이상했다. 평소 선생님의 성격은 꽤 온화하고 부드러웠었는데, 그만한 일로 애들을 벌주지는 않았었다.
"야, 근데 여긴 어디야? 왜 이런데로 우릴 데려왔지? 여기 청소 시킬려구 그러나?"
철민이 의아스레 여기면 주위를 다시 둘러보고 있었다. 빈이는 왠지 느낌이 안 좋았다. 별안간 좀전에 보았던 수위의 끔찍했던 주황색 눈동자가 떠올랐다. 소름이 끼치는 빈이는 저도 모르게 잠깐 경련을 일으켰다.
그런 빈이를 놀란 눈으로 쳐다보는 철민.
"야, 왜 그래 너?"
"아, 아냐... 철민아."
"왜?"
"너 말야 오늘 수위아저씨 본적있냐?"
"수위 아저씨? 그 레슬링 금메달 말야?"
아이들끼리 부르는 수위의 별명이었다.
"으응."
"못 봤는데 왜?"
"난 아까 봤는데 말야... 그 아저씨 눈이..."
빈이는 여기서 잠시 멈칫했다.
괜한 헛소리를 하는 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든 것이었다. 자신이 잘못 봤을 수도 있는 것인데...
철민은 빈이의 다음말이 상당히 궁금한 모양이었다.
"왜 임마, 레슬링 금메달 눈이 왜?"
"그게 말야... 좀 이상했어."
"어떻게?"
"눈이..."
하려는데 작은 문이 벌컥 열리며 선생님이 나타난다.
빈이와 철민은 동시에 깜짝 놀라며 돌아다본다.
선생님은 예의 그 무시무시한 눈빛으로 빈이와 철민을 번갈아 노려보고 있다.
숨이 막혀오는 빈이와 철민!
이윽고,
"철민이, 너부터 이리 들어와!"
선생님이 철민을 부른다. 한껏 기가죽은 모습으로 슬금슬금 선생님에게로 향하는 철민. 그러다가 빈이를 한번 슬쩍 본다. 그 때 철민의 눈빛!
빈이는 너무 안쓰러웠다. 왠지 철민을 그 곳에 보내면 안 될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감히 어떤 행동도 취하지 못하고 바짝 얼어있기만 하는 빈이. 그저 선생님을 따라 작은 문안으로 들어가는 철민의 뒷모습을 바라만 볼뿐이었다. 선생님은 철민이 안으로 들어오자 다시 한번 빈이를 힐끔 노려보고는 문을 쾅 닫는다.
그리고 시간이 흐르고...
이제 혼자가 되어 더욱 불안하고 초조해져만 가는 빈이.
안에서 뭘하는거지?
그러는 사이에 2교시 수업을 알리는 종이 울리고...
'선생님은 뭐 하시는 거야? 종 쳤는데...'
그리고
잠시 후,
빈이는 기겁을 한다.
작은 문에서 철민의 자지러지는 비명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으아악!"
이 새끼!"
선생님의 무시무시한 호통소리!
그러더니,
빡!
"악!"
빡! 빡!
"으아악!"
빡! 빡! 빡! 빡! 빡!!!
빈이는 다리가 후들거리기 시작했다.
이건 소리만 들어도 상황이 어떠한지 눈앞에 훤했다.
무시무시한 몽둥이로 얻어맞고 있을 철민과 몽둥이보다 더 무서운 얼굴로 사정없이 철민을 줘 패고 있을 선생님의 얼굴을 떠올리니 절로 심장이 조여들었다.
이상했다.
철민이 그다지 큰 잘못을 한 것도 아닌데, 아니 설사 정말 큰 잘못을 했다 치더라도 어떻게 초등학생을 저렇게 무지막지하게 때릴 수 있단 말인가!
이건 흡사 사람을 잡는 소리였다.
빈이는 살며시 다가가 작은 문을 조금 열어보았다.
아니나 다를까 어디서 구해온건지 잘린 동파이프를 거머쥐고 미친 듯이 휘둘러대는 선생님의 얼굴이 보인다.
휑, 휑~
동파이프가 바람을 가를 때마다 철민의 끔찍스런 비명이 터져 나왔다.
선생님의 얼굴은 빈이 자신이 알던 그 얼굴이 아닌 것 같았다. 너무도 차가운 인상에 잔뜩 독이 올라있는 섬뜩한 그 얼굴은 그대로 악마를 떠올리게 했다.
빡! 빡!
빈이는 문을 조금 더 열어 보았다.
그러자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어있는 철민의 처참하기 이를 데 없는 몰골이 드러났다.
'으흑~'
차마 눈뜨고 볼 수 없을 만큼 끔찍하고 소름끼치는 광경이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철민의 눈이 빈이의 눈과 마주쳤다!
흠칫 놀라는 빈이.
짧은 순간 빈이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내는 철민.
어쩔 줄 모르는 빈이!
그러나 다음순간 파이프가 철민의 뒷덜미를 가격하고 눈을 치켜뜬채 그대로 무너져 버리는 철민!
빈이는 그만 눈을 질끈 감았다.
'저 사람은 선생님이 아냐! 선생님이 아냐! 아냐!'
마치 기도라도 외듯이 속으로 그렇게 뇌아리는 빈이.
도무지 눈앞의 일들을 믿을 수 가 없었다.
이건 예전에 아빠가 빌려보시던 깡패영화에서나 나옴직한 끔찍한 광경이었다.
그런데,
그런데...
살며시 다시 눈을 떠보는 빈이.
문틈새로 쓰러진 철민을 책상 위에다가 올리는 선생님이 보였다.
그리고는 선생님은 철민의 몸 이곳 저곳을 가리키며 혼자 뭐라고 중얼중얼 댄다.
그의 표정은 상당히 진진해져 있다.
빈이는 뭔가에 홀린 듯 계속해서 그 모습을 바라보다가 이윽고 이제 곧 자신의 차례임을 인지한다.
아!
어서 도망가야만 했다.
그 때였다.
선생님이 이쪽으로 성큼성큼 걸어오는 것이었다.
재빨리 뒷걸음질을 치는 빈이. 이것저것 생각할 겨를도 없이 그저 교무실로 향하는 문손잡이를 돌렸다.
문은 잠기어 있지 않았다.
빈이가 교무실로 나가면서 문을 닫으려는 순간 저쪽 작은 문이 열리며 아무일 없었다는 듯 냉담한 얼굴로 고개를 내미는 선생님이 보였다.
그리고 그가 별안간 흠칫 놀란 눈이되어 자신을 쳐다보려는 순간 빈이는 문을 닫는다.
"이빈!"
안에서 선생님의 외침이 들렸다.
그러나 무시하고 교무실 밖으로 내달리는 빈이.
뒤에서 선생님이 문을 박차고 뛰쳐나오는 소리가 들린다.
죽을힘을 다해 뛰는 빈이.
아직도 등엔 책가방이 그대로 매달려 있었다.
그러나 그것을 벗어 던질 여유조차 없었다.
운동장으로 뛰쳐나온 빈이.
운동장엔 여태껏 아무도 없었다.
"도와주세요!"
빈이는 마침내 목청껏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나 자신의 목소리는 빈 운동장을 공허하게 울려만 댈 뿐, 아무도 도와주지 않는다.
도와주는건 고사하고 아무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의 모습이라고는 찾을 수가 없었다.
이건 마치 학교전체가 텅 빈 듯 적막하기 이를 때가 없었다.
아니 좀전에 분명 빈이의 반아이들은 있었다.
그리고 자신은 지금 이렇게 목이 터져라 살려달라고, 도와달라고 고함을 쳐대고 있다.
그렇다면 응당 몇 명은 내다봐야 정상이다.
그런데 모두들 뭐하고 있나?
어찌하여 아무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것인가?
한참을 뛰다가 보니 빈이는 어느새 다시 교문으로 향하고 있었다.
슬쩍 뒤를 돌아다보니 저 끝에서 아직도 자신을 뒤쫓고 있는 선생님의 모습이 보였다. 한 손엔 동파이프를 들고서...
그러나 거리차이가 꽤 났던지라 어느 정도 안심이 되는 빈이.
교문을 막 빠져나가려는 순간,
누군가가 뒤통수를 갈긴다.
"으악!"
자지러지게 놀라며 돌아보면 예의 그 레슬링 선수같은 수위가 서있다.
그의 두 눈은 여전히 짙은 주황색이다!
"으아아!"
빈이는 극도의 공포를 느끼며 다시 뛰었다.
그러나 이내 뒷덜미를 잡힌다.
수위는 다시 빈이의 뒤통수를 친다.
"으악! 이거 놔요!"
빈이가 거칠게 몸부림을 치자 수위의 얼굴이 험악해진다. 주황색의 눈동자가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이 커진다.
그 때 돌아보니 선생님이 다가오고 있었다. 빈이는 미칠 것 같았다.
회심의 미소를 띄우며 다가오고 있는 선생님의 눈동자도 주황색이었던 것이다!
'이들은 같은 편이구나!'
주황색의 끔찍스런 눈을 끔벅이며 빈이에게로 다가오는 선생님.
빈이는 처참하게 피투성이가 되어 쓰러지던 철민의 마지막 모습이 떠올랐다.
이제 곧 자신의 모습이 될 것이었다.
드디어 바로 앞에까지 다가온 선생님.
뒷덜미를 수위에게 붙잡혀 꼼짝을 못하는 빈이.
선생님이 파이프를 치켜든다!
위기의 순간!
별안간 빈이의 뇌리를 스치는 번개같은 관념하나!
'이거 꿈 아냐?'
순간, 파이프를 치켜들던 선생님의 표정이 굳어버린다!
뒷덜미를 잡고 있던 수위의 손아귀에서 힘이 빠지고 있다!
빈이는 뒤돌아본다.
수위의 표정도 잔뜩 굳어있다.
아니 그 표정은 조마조마해 하는 표정이었다.
조마조마...
두근두근...
숨기고 있었던 뭔가가 들통나려 할 때의 그런 감정!
빈이는 느낄 수 있었다.
상황이 반전되었다는 것을.
'이제 저들이 떨고 있다. 저들은 내가 모르길 바라겠지? 하지만 난 이제 알았어. 처음부터 꿈이 아니곤 일어날 수 없는 일들 뿐이었어!'
자신의 지각, 텅 빈 거리, 텅 빈 운동장, 주황색 눈으로 자신을 뒤쫓던 수위, 뒤죽박죽이 되어버린 교실들, 그리고 철민을 죽일 듯이 때리고 자신을 쫓아오던 악마 같던 선생님...
이 모든 것들...
이제야 이해가 갔다.
그래. 가능하지. 이런 무시무시한 일들.
꿈속에서라면...
자신이 꿈을 꾸고 있음을 완전히 인식해버리는 순간, 주황색 눈의 무섭던 선생님과 수위는 각각, 주황색 볼펜과 지우개로 바뀌어 졌다.
그리고 그것들을 막 필통속으로 집어넣으려는 순간,
빈이는 꿈에서 깨어난다!
눈을 뜨는 빈이.
온몸이 식은땀에 축축이 젖어 있었다.
'아! 정말 꿈이었구나...'
후우~
한숨이 절로 나왔다.
끔찍한 악몽이었다.
시계를 보니 새벽 한시 반이었다.
빈이는 부스스 일어났다. 갈증이 느껴졌다.
거실로 나가는 빈이.
냉장고로 향하는데 마침 엄마가 아직까지 설거지를 하고 있었다.
이 늦은 시간에 엄마를 보자 반가운 빈이.
"엄마! 아직 안 잤어? 나 금방 악몽 꿨어..."
하면서 다가가는데,
엄마가 갑자기 홱 돌아다본다!
순간, 빈이는 심장이 멎는 것만 같다.
엄마는 설거지를 하고 있었던 게 아니었다.
네 살짜리 동생의 얼굴을 물속에 처박고 있었다!
이미 숨이 끊어진 듯 머리가 물 속에 잠긴 채 거꾸로 처박혀 있는 동생의 몸은 축 늘어져 있다.
"어... 엄마..."
엄마는 빈이에게 슬슬 다가온다.
"너 봤구나... 자고 있는 줄 알았는데..."
"어... 엄마..."
"넌 안 죽일려구 했는데..."
빈이를 향해 다가오는 엄마의 손아귀엔 시커먼 부엌칼이 쥐어져 있다.
그리고 핏발선 엄마의 두눈이 빈이에겐 주황색으로 보인다!
빈이는 다리에 힘이 빠져 그만 털썩 주저앉아 버린다.
엄마가 미친 것인가?
아니면 이것도 아직 악몽인 것인가?
하지만 악몽도 아니고 엄마도 미치지 않았다면...
지금 눈앞에 벌어지고 있는 섬뜩한 광경이 엄연한 현실이라면!
빈이는 차라리 좀전의 악몽 속으로 다시 돌아가고 싶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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