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을 만난 새는 날갯짓을 하지 않는다 —계불(禊祓) 박찬세 사람들 속에 머물다 온 날은 바람에 몸을 씻는다 하나의 필체를 완성하기 위해 골몰하는 바람 속에서 어두워지는 법을 배운다 새들의 부리가 향하는 곳에서 먹구름이 피고 —— 신음하는 작은 어선들 흔들릴수록 선명해지는 바람이 있다 말은 얼마나 많은 가시를 품고 있는 것일까 눈물의 목적지는 바람이었을 것이다 바람에 묻어 둔 소금기가 살에 감기면 새들이 왜 무수한 바늘로 제 몸을 찌르며 깃을 만드는지 생각한다 바람은 언제나 공범이었다는 생각 한 모금씩 담배를 나누어 피우면 부리가 몰고 온 먹구름이 묵은 깃을 털어낸다 바위 위에서 쉬던 새들이 빗줄기를 뚫고 솟구친다 쏟아지는 빗줄기 속으로 새들이 날갯짓하는 건 거기 바람이 살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빗방울이 기울어진다 바람을 타는 새의 눈동자 속에 섬이 자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