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등학교 저학년 시절 하교할 때였습니다. 갑자기 하늘이 흐려지더니 비가 내리기 시작했습니다. 비를 맞고 집에 갈 생각을 하니 막막해 왔습니다. 현관에 나와 보니 아이를 찾는 엄마들, 엄마와 한 우산을 쓰고 나란히 걸어 나가는 아이들, 아이를 이리저리 찾는 엄마들로 붐볐습니다. 비가 그칠 때까지 기다릴까 하다 전 그냥 뛰어가기로 마음먹고 가방을 머리위로 올렸습니다. 그때 뒤에서 ˝은경아!˝ 하고 불렀습니다.
아빠였습니다. 아빠를 보는 순간 너무 반가웠지만, 아빠와 우산을 쓰고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왜 아빠가 오셨을까? 다른 애들은 다 엄마가 오셨는데, 아빠가 가겔 보고 엄마가 가져와도 되는데, 엄만 장사가 더 중요한가?´ 하며 내내 뾰루퉁했습니다. 그리고 그때부터 중학교 고등학교를 다니는 동안 그렇게 비가 오는 날이면 어김없이 아빠가 오셨습니다.
고3때 갑자기 억수같은 비가 내렸습니다. 그날도 아빠와 함께 우산을 쓰고 집으로 걸어갔지요. 그런데 아빠가 ˝비 오는 날마다 왜 아빠가 우산을 갖고 오는지 아니?˝ 하고 물으셨습니다. 전 ´그냥 비가 와서가 아니라 다른 이유가 있었나?´ 하며 아빨 물끄러미 바라봤습니다. 아빠가 어렸을 적에 할머니가 일찍 돌아가셔서 비가 오는 날이면 늘 가방을 머리에 얹고 집까지 뛰어가야 했다고 하셨습니다. 그때 아빠는 딱 한 번만이라도 할머니가 학교로 우산을 가져다 주셨으면 하고 소원했답니다. 하지만 할머니는 계시지 않았지요. 그래서 그때 빗속을 달리며 이 다음에 내 아이들에게는 내가 꼭 우산을 씌워 주어야겠다고 다짐하셨답니다.
대학생이 된 지금도 느닷없이 비가 내리는 날이면 현관에 서서 버릇처럼 아빠를 기다립니다. 이젠 너무 멀리 떨어져 있어 우산을 가져다줄 수도 없는 지금 말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