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나무의 매듭과도 같은 크고 진동 있는 일보다 작고 사소한 것들이 선명한 색조로 떠오를 때가 있다. 많은 세월을 살았고, 그 세월 속에는 숱한 사건들이 첩첩이 쌓여 있기 때문인지 모른다. 장대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붕어빵을 굽던 할아버지 기억도 그 하나에 속한다. 나는 거침없이 그 분을 할아버지라 부르고 있지만, 그 분은 어쩌면 할아버지가 아니었을지도 모른다. 예순이나 쉰쯤 되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때 열 살이었던 어린 나에게는 이마에 주름이 패이고 검버섯이 핀 그 분이 할아버지로밖에 보이지 않았다.
할아버지는 유리창 안 가게에서 열심히 빵 틀에 밀가루죽과 팥죽을 넣으며 빵을 굽고 있었고 나는 버스정류장 처마 아래에서 할아버지를 보고 있었다. 비는 계속 내리고 내 옷은 비에 젖어 갔다. 한기가 스며 왔다. 계절은 초가을쯤이었고 나는 아버지의 약을 구하러 외할머니 댁에 다녀오는 길이었다.
그 무렵 아버지는 거의 생명을 포기하신 듯했다. 포기할 만도 했다. 광주로, 전주로, 순천으로 반년 동안 큰 병원을 찾아다녔으나 회복 기미가 보이지 않았다. 나는 슬프고 외로웠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던지 할아버지가 “얘야, 이리 온” 하고 나를 불렀다. 주춤주춤 다가갔더니 붕어빵 세 개를 헌 신문지에 싸 주었다. “먹고 좀 뜀박질을 해라.” 나는 빵을 받아 들고 할아버지가 보이지 않는 곳으로 가 야금야금 먹었다. 배가 불러 오고 추위가 가셨다. 그리고 버스가 부릉부릉 정류장에 와 멈추었다. 나는 버스에 올랐다. 그날 나는 버스 안에서 몇 번이고, 반드시 성공하여 할아버지를 찾아뵐 것이며 붕어빵을 잊지 않을 것이라고 다짐하고 또 다짐했다.
서너 달 뒤, 아버지는 돌아가시고 우리집은 급전직하로 가난의 나락으로 굴러 떨어졌다. 나는 신문배달에 공책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며 학비를 벌어야 했다. 내 기억 속에는 붕어빵 할아버지가 자리할 틈이 없었다. 그렇게 50여 년의 세월이 번개같이 흘러갔다. 어느덧 나는 붕어빵 할아버지와 엇비슷한 나이가 되어 있었고, 그런 어느 시간, 붕어빵 할아버지가 기억의 거울 앞에 나타났다. 그러자 이상스럽게도 역사적 사건들은 순식간에 녹아 사라지고 이웃집 네 살배기 사내아이 건하가 엉금엉금 걸어왔다. 나는 얼마 전 선물로 들어온 한식과자를 한 움큼 쥐어 그 애에게 주었다. 수줍음이 많은 아이는 고개를 푸욱 숙이고 손을 내밀었다. 나는 하늘의 할아버지께 “건하에게 한식과자를 주고 있어요”라고 속으로 뇌었다. 웃음이 입 가장자리에 스며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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