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불과 몇 년 전까지만 해도 술을 많이 마시고, 초상집 고스톱판에 어울리는 것을 즐겨 했었다. 그러나 이제 예수를 열심히 믿어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나서 술을 딱 끊었다. 물론 고스톱판에도 어울리지 않는다. 어쩌다가 회식이라도 있는 날이면 콜라나 사이다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것이 고작이다.
당연히 옛날 술친구들은 멀리 하게 되었고, 깃이 같은 새가 모인다고 예수 믿는 사람들과 어울리는 때가 많다. 회식이 끝나고 나면 으레 2차로 노래방에 가자고 한다. 나는 못 이기는척 하고 따라가기가 일쑤다. 세상에 음치가 나 말고 또 누가 있을까? 나는 타고난 음치다. 그러나 요즈음 내 노래의 18번은 ˝하룻밤 풋사랑˝ 이다. ˝하룻밤 풋사랑에 이 밤을 새우고 사랑에 못이 박혀 흐르는 눈물.....˝ 곡이 애절할 뿐 아니라 가사까지 서글픔을 느끼게 한다.
노래를 못 부르는 사람이 반주 맞추랴 자막 맞추랴 또 감정 살리랴 진땀을 흘리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런데 노래가 끝나고 나니 95점이라며 팡파르가 울려 퍼지는 것이 아닌가? 속으로 ´노래방이 잘 안되니 점수도 바겐세일 하는 구나´ 하면서도 동료들의 박수소리에 기분이 좋았다.
˝하룻밤 풋사랑˝ 은 흘러간 옛노래다. 내가 어릴 때 유행하던 노래다. 지금도 그렇게 하룻밤 풋사랑이 있는 것일까? 아무데서나 남녀가 눈이 맞으면 육체의 쾌감만을 추구하는 세상을 하룻밤 풋사랑으로 노래 할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본다. 비록 하룻밤이라고 하더러도 만리장성을 쌓듯이 가슴 설레이며 영원히 변치 않는 사랑이 하룻밤 풋사랑이다. 작년 여름 구치소 안에서 실제로 있었던 일이다. 이른 아침에 재소자 한사람이 위독한 상태가 되었다.
만약 구치소나 교도소 안에서 사람이 죽으면 세상 사람들은 무슨 큰 일이라도 난 것처럼 떠들어 댄다. 구치소나 교도소는 사람이 사는 곳이기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그러나 외부에서는 의혹의 눈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죽은 사람은 말이 없기 때문이다. 부랴부랴 외부 병원으로 옮겨 구속집행정지 결정을 받았다. 병원측에서 응급조치를 하고 최선을 다했지만 결국 하늘 나라로 가고 말았다. 사인은 갑작스런 심장마비로 밝혀졌다. 사체를 인도해야 하는데 연고자가 나타나 주지 않았다. 그의 형제들이 있어 연락이 되었지만 모두가 거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