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년만에 완성된 사전
한학자 모로하시 데쓰지는 서재에서 높게 쌓인 책들과 씨름하고 있었다. 책상 주변에는 그가 휘갈겨 쓴 글자들이 빽빽하게 채워진 종이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었다. 그는 1928년, 45세에 시작해 17년째 사전을 만드는 일에만 매달려 왔다. 그는 일에 너무 몰두한 나머지 바깥 세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몰랐다.
어느 날 저녁 귀청을 찢을 것 같은 굉음과 함께 바깥이 환해졌다. 책 속에 얼굴을 파묻고 있던 그가 놀라서 뛰어나가 보니 집 한 쪽이 무너지고 불에 타고 있었다. 바로 2차대전 중이던 그때 공습을 당한 것이다. 불은 순식간에 그의 서재까지 옮겨 붙었다. 그의 눈앞에서 지난 17년 동안의 노력이 몽땅 불에 타 버렸다.
수많은 자료와 조판들이 재로 변한 것을 바라보며 모로하시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내 사전을 모두 재로 만들었겠다. 하지만 나 모로하시 데쓰지는 재로 만들 수 없을 거야.’
그는 다시 사전을 만들 집념을 불태웠다. 하지만 그의 굳은 의지에도 불구하고 한줄기 눈물이 흐르는 것은 막을 수 없었다.
1960년 드디어 14권짜리 사전이 완성되었다. 무려 32년이 걸린 셈이었다. 게다가 한쪽 눈이 실명하는 불운에도 사전 만드는 일에만 매달리는 모로하시의 정성에 감복한 대수관 출판사의 스즈키 사장도 고등학교와 대학에 다니던 아들 셋을 중퇴시키고 함께 간행작업에 매달렸다. 초판 출판 뒤 전면 수정판을 내는 데 다시 12년이 걸렸고 모로하시가 작고한 뒤에도 증보판을 만드는 작업이 계속되고 있다.
이 사전이 바로 《대한화사전》으로 한자문화권 최대의 한자 사전이다. 4만 9천 30자를 수록한 중국 최대의 〈강희자전〉을 능가하는 5만 3백 54자가 수록돼 있다. 한 일(一) 자의 경우 72쪽, 쇠 금(金)은 50쪽에 걸쳐 관련 단어를 수록할 정도이고, 숙어는 52만 6천여 개나 실려 있다. 방대한 어휘도 어휘지만 하나하나에 철저하게 출전을 달아 놓은 이 사전은 연인원 25만 8천 3백 47명이 동원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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