따뜻한 가슴으로 / 법정
함께 어울려 살아가는 세상이라,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해서 그대로 놓아두지 않는다. 공간적으로는 얼마쯤의 거리를 두고 산다 할지라도 시간적으로는 이 시대를 함께 살아가지 않을 수 없는 그런 인연의 줄에 우리는 서로 이어져 있다. 우리가 세상에 있다는 것은 함께 있음을 뜻하기 때문이다.
요즘 내 오두막 둘레에는 모란이 한창이다. 산 아래에서는 영랑(永朗)의 표현대로, 5월 어느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는데, 해발 8백고지나 되는 이곳은 6월에 들어서야 모란이 문을 연다.
▼ 변화 갈망하는 사회 ▼
며칠 전 비바람에 꺾인 한 가지를 주워다가 남색 유리병에 꽂아 식탁 위에 놓아 두었더니 그 빛깔의 조화가 볼 만하다. 자줏빛 꽃잎과 그 안에 보석처럼 돋아난 노란 꽃술, 초록빛 잎사귀에 남색 유리병이 한데 어울려 찬란한 빛깔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식탁의 차림새는 지극히 간소하지만 한가지 꽃으로 인해 어떤 제왕의 수라상보다도 호사스럽게 여겨진다.
우리처럼 외떨어져 거치적거리는 것 없이 단출하게 사는 괴짜들은, 음식물만 가지고 배를 채우지 않는다. 자연이 내려준 한 송이 꽃이나 맑은 물, 따뜻하고 투명한 햇살과 산들거리는 바람결 속에 스며 있는 우주의 살아있는 기운을 평온한 마음으로 감사히 받아들이면, 그게 살이 되고 피가 되어 건강을 이룬다.
표현을 달리하자면 커다란 생명체인 자연의 질서와 조화를 작은 생명체인 내가 받아들이면서 그 질서와 조화를 함께 이루어나갈 때 안팎으로 건강을 유지할 수 있다는 소리다.
이게 어디 사람만의 건강이겠는가. 우리들이 몸담아 사는 세상의 일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오늘날 우리 사회가 온갖 부정과 비리로 인해 끝도 없이 휘청거리고 있는 것도, 생명의 뿌리를 이루고 있는 우주적인 그 질서와 조화를 우리 스스로 깨뜨려 놓았기 때문이다.
사회나 세상은 개체적인 차원에서 보면 지극히 추상적인 개념이다. 존재하는 것은 한사람 한사람의 개인이지 사회가 아니다. 사회는 다양한 사람들로 이루어진 여러 모양의 복합체. 당신과 나 개개인이 사회를 구성하는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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