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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의 말
swwet 2020-04-19     조회 : 329

옛말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지혜롭게 하지 않고 우매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

통행본 장65장

옛말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지혜롭게 하지 않고 우매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백성을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그 지혜 때문이다.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해악이고
지혜롭지 않음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복덕이다
언제나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같이 본받는 바이니
예나 지금이나 같이 본받는 바를 아는 것을
현묘한 덕이라고 한다
현묘한 덕은 깊고도 아득하구나
뭇 사물과 다른 길을 택하여
크게 순응하는 데 이른다.

.1)

옛말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지혜롭게 하지 않고 우매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고왈()'은 모든 통행본에 '고지()'로 되어 있다. 뜻으로는 차이가 없다.

이 문장은 이른바 『노자』의 우민 정책을 여실히 보여준다. 백성을 우매하게 한다는 것은 아무래도 좋은 느낌을 주지 않기 때문에 왕필·하상공 이하 많은 주해는 이것이 바보로 만든다는 뜻이 아니라 교활한 작은 지혜를 거두고 순박한 원래의 본성으로 돌아가게 한다는 뜻이라고 하였다. 가령 왕필은 여기에서 "우매함이란 지혜를 버리고 참된 본성을 보존하여 자연에 따르는 것"이라고 하였고, 하상공은 "도덕으로 백성을 가르쳐서 순박하게 만들고 거짓을 짓지 않도록 하는 것"이라고 하였다.

맞는 말이다. 백성을 우매하게 한다는 것은 순박하게 만든다는 것과 통한다. 그러나 모든 우민 정책에는 이 정도의 명분쯤은 있게 마련이다. 순박하게 만들려는 본의와 어리석게 만들려는 저의는 쉽게 구분할 수 없고, 분명한 것은 『노자』가 계몽의 노선을 걷지 않았다는 사실이다. 물론 『노자』 시대에 19세기의 계몽주의가 나올 리는 없다. 교화를 주장했던 공자도 "백성들은 그렇게 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유를 알게 할 수는 없다(『논어』 「태백」)"고 하였다. 그렇지만 "마음을 비우게 하고 배를 채우며, 뜻을 약하게 하고 뼈를 강하게 한다(3)"는 노선과 "진실로 인에 뜻을 두면 악이 없을 것(『논어』 「이인」)"이라는 노선의 차이도 간과할 수 없다. 『노자』의 우민 정책이란 백성을 해치려는 악의가 있었다는 말이 아니라 그 노선이 우민화의 방향에 부합했다는 말이다.

오징은 지금 『노자』의 말은 교활한 지혜를 경험하게 되는 타락한 세태에 대한 분세()의 이론이지만 이 때문에 진나라가 경서를 불태워서 백성을 우매하게 만드는 유폐가 나타났다고 말한다. 진의 우민화 정책이 『노자』의 이 말에서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다. 이때 진의 우민 정책을 상징하는 것이 분서다.

진 시황이 분서하게 된 배경은 『사기』 「진시황본기」에 잘 묘사되어 있다. 그에 따르면 시황의 궁정에는 순우월로 대표되는 유가 집단과 이사가 이끄는 법가 집단 사이의 갈등이 있었다. 전자는 옛날을 본받을 것〔〕을 주장했고, 후자는 지금에서 배울 것〔〕을 주장했다. 전자는 옛것에 밝고, 후자는 그렇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이것은 제·노의 선진 문화권에서 진의 궁정으로 찾아온 엘리트 지식인 그룹과 삼진()·진·초 같은 주변 문화권 신진 학자 그룹의 갈등이기도 했다. 이 갈등은 결국 중국의 통일로 자신감을 얻은 주변부의 승리로 끝나고, 이어 분서가 시행되었다. 이사는 분서의 당연성을 이렇게 설명한다.

이제 천하가 이미 정해졌고, 법령은 한 군데에서 나오니 백성들은 집안에서 힘써 농사짓고 물건을 만들 것이며, 선비는 법령과 나라에서 금하는 것을 학습해야 합니다. ……이제 황제께서 천하를 아울러 가졌고 흑백을 구별하여 일존()을 정했는데도 사사로이 공부하면서 서로 모여 법교()를 비난하고, 칙령이 떨어졌다는 것을 들으면 각각 자신의 학문으로 의논하니……이런 것을 금하지 않으면 위로는 임금의 위세가 떨어지고, 아래로는 당파가 만들어질 것입니다.

이사는 통일 중국을 그 이전 시대와 구분하고 통일 시대에는 각자의 소업을 충실히 하고 지식인이라도 법령을 연구하면 그뿐이라고 생각했다. 분명한 우민화를 표방한 것이다. 『노자』는 이사와 같은 패도적 지배를 혐오하지만 "사사로이 공부하면서" "자신의 학문으로 의논하는 것"을 배척하는 점에서는 이사와 같다. 『노자』와 이사는 『노자』와 법가가 그런 것처럼 가깝지도 않지만 그렇다고 아주 멀지도 않은 묘한 거리에 있다. 『노자』의 통치술은 이사의 통치술과 다르지만 그런 통치술이 나오게 된 배경은 공유한다. 이 책은 『노자』가 진나라에서 제작되었다고 주장하였다. 나머지 것은 서문을 참조하기 바란다(다음 참조).

그러므로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해악이고, 지혜롭지 않음으로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의 복덕이다


여기에서 '지()'는 다스린다는 뜻으로 '치()'와 통한다. 원래 통행본에는 '치'로 되어 있지만 왕필주에 "지()는 치()와 같다"고 한 것을 보면 원래 왕필본도 '지()'로 되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또 '덕()'은 대부분 '복()'으로 되어 있는데, 서로 통하는 말이다(주겸지).

왕필이 말하는 대로 "지혜로운 법술로써 백성을 충동하여 간사한 마음이 이미 발동되었는데 다시 교묘한 법술로써 백성의 거짓된 행동을 막으려고 하면 백성들이 그 술책을 알아채고 그것을 피하려고 하니 생각은 점점 교만해지고 허위와 거짓은 날로 자라나기 때문에" 지혜로써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것이다. 『여씨춘추』 「사용론·상농」에 보면 "백성이 근본(농사일)을 버리고 말단에 종사하면 지혜를 좋아하게 된다. 지혜를 좋아하게 되면 사기를 일삼게 되고, 사기를 일삼으면 법령을 정교하게 만들게 된다. 옳은 것을 그르다고 하고, 그른 것을 옳다고 하게 된다"는 말이 있는데, 역시 『노자』의 이 문장과 통한다.

『한비자』 「난삼」에 따르면 『노자』의 이 말은 정나라의 명재상 자산()을 비판하는 말이다. 비판 요지는 자산이 너무 자신의 지혜만을 믿고 모든 것을 스스로 하려고 했기 때문에 일만 많고 비효율적이었다는 것이다.

놓쳐버린 사물은 많고 지혜는 적다.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이길 수 없으니 지혜로는 사물을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사물에 따라서 사물을 다스려야 한다〔〕. 아랫사람은 많고 윗사람은 적다. 적은 것은 많은 것을 이길 수 없으니 말하는 임금은 신하를 속속들이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알아야 한다〔〕. 이 때문에 몸은 수고롭지 않으면서도 일은 다스려지고, 지혜와 생각을 쓰지 않으면서도 간악한 사람을 잡을 수 있다. ……노자는 "지혜로써 나라〔〕를 다스리는 것은 나라를 해치는 것"이라고 하였으니 자산을 말한 것이다.

이 설명에 따르면 지금 『노자』는 사물에 따라서 사물을 다스리고, 사람을 통해서 사람을 아는 이런 인순의 정치술을 이야기하는 셈이다.

「난삼」의 이 글은 『노자』의 연대 논쟁에서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과거에는 의심스러운 「해로」, 「유로」 두 편은 제외하더라도 다른 편에서 『한비자』가 『노자』를 인용하고 있기 때문에 『노자』는 적어도 『한비자』보다 앞선 작품이라고 보았다. 이때는 노담의 말도 포함해서 생각했다. 『한비자』가 인용한 노담의 말은 현행본 『노자』에 나오고, 노담과 노자를 일치시키는 것이 관행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노담은 『노자』의 한 구성 요소일 뿐이므로 『한비자』가 노담을 인용하고 있다고 해서 『노자』가 『한비자』보다 앞선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런데 『한비자』는 노담이 아니라 직접 『노자』를 명기하면서 현행본 『노자』를 인용하기도 한다. 이것은 노담을 인용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 그 인용이 한비의 것이라면 『노자』는 한비자보다 앞선다. 이런 경우는 『한비자』에 단 한 번 나온다. 방금 인용한 문장이 그것이다.

그렇지만 여기에서 「난삼」이 『노자』를 인용하면서 백서의 '방()'이 들어갈 자리에 '국()'이라는 글자를 쓰고 있는 것을 눈여겨 보라. 여러 번 이야기했듯이 이런 글자의 뒤바뀜이 일어난 것은 한 고조의 이름이 방()이었기 때문이다. 『노자』 을본 이하는 황제의 이름을 피하기 위해서 '방' 대신 뜻이 같은 '국'이라는 글자를 썼다. 「난삼」도 마찬가지다. 곧 「난삼」은 한 고조 이후의 판본을 보고 『노자』를 인용한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을 가지고 『노자』가 한비자보다 앞선다고 할 수 없다. 만약 『한비자』도 『노자』 을본 이하처럼 일률적으로 '방'이라는 글자를 '국'이라는 글자로 바꾸어 적었다면 이야기가 또 다르겠다. 하지만 『한비자』가 '방'이라는 글자를 일률적으로 휘하지 않았다는 것은 조금만 뒤적여보면 금세 알 수 있다.

언제나 이 두 가지를 아는 것이 또한 예나 지금이나 같이 본받는 바이니


여기에서 두 가지란 지혜로 통치했을 때와 지혜롭지 않음으로 통치했을 때 각각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를 말하는 것이다. '계식()'에는 몇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계()'를 대부분의 판본에 그렇게 되어 있는 것처럼 '해()'의 가차자로 보고 '법식()'이라는 의미로 푸는 경우다. 하상공 등 대부분의 해설이 이렇게 되어 있다. 둘째는 왕필처럼 '계'를 '동()'과 같은 의미로 보고 부혁이 주해했듯이 고금이 같이 본받는다〔〕는 의미로 보는 경우다. 셋째는 '계'를 『상서』의 용례를 따라 옛날 일을 살핀다는 뜻으로 보고 옛날 일을 살피는 법식이라는 의미로 보는 경우다(육희성). 이외에도 '식()'이 원래 수레의 가로대를 의미한다는 것에 착안하여 오징처럼 겸손함을 본받는다고 푸는 경우도 있다. 여기에서는 앞문장의 뜻을 감안하여 두 번째 견해를 택하기로 한다.

뭇 사물과 다른 길을 택하여 크게 순응하는 데 이른다


이 문장은 왕필처럼 "사물과 함께 그 진실됨(근본·처음)으로 돌아온다"고 해석할 수도 있다. 하지만 "뭇사람이 다스릴 때는 지혜를 사용하는 것을 귀하게 여기고, 성인이 다스릴 때는 지혜를 사용하지 않는 것을 귀하게 여기기 때문에(설혜)" 이런 말이 나온 것이라고 보는 것이 훨씬 생동감이 있다. 동사정·오징도 이렇게 보았다. 평범한 것〔〕들과 다르고 그들이 이해하기 쉽지 않기 때문에 현묘한 덕이 되고, 그런 범상하지 않은 길을 따르기 때문에 작게 순응하는 것이 아니라 크게 순응하는 데 이르게 된다.

백성들은
그렇게 하게 할 수는 있어도
그 이유를 알게 할 수는 없다

―『논어』 「태백」

[네이버 지식백과] 옛말에 도를 행하는 사람은 백성을 지혜롭게 하지 않고 우매하게 한다고 하였으니 [古曰爲道者, 非以明民也, 將以愚之也] (노자(삶의 기술, 늙은이의 노래), 2003. 6. 30., 김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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