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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토크 | |||||||||||
볼펜의 발명 happykingdoom1004 | 2020.05.31 | 조회 291 | 추천 0 댓글 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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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로 형제 등의 볼펜더 편리하게 글을 쓸 수는 없을까? 직장인들에게 사무용품 가운데 가장 많이 사용하는 필기구를 꼽으라고 하면 단연코 ‘볼펜’이 압도적이지 않을까? 볼펜이 오늘날 이처럼 사랑받게 된 데는 좀 더 실용적인 제품을 열망하는 여러 발명가들의 열정과 노력이 담겨 있다. 만년필 시대를 지나 볼펜의 첫 역사를 연 인물은 바로 헝가리의 라디슬라스 비로(Ladislas Biro, 1899~1985)와 게오르그(Georg) 형제다. 형인 비로는 조각가이자 화가였으며, 또한 언론인이기도 했다. 그는 매일 많은 양의 글을 써야만 했는데, 만년필로 그 일을 하기에는 간단하지가 않았다. 취재나 교정 도중 만년필의 잉크가 말라버려서 잉크를 보충해야만 했고, 날카로운 펜촉으로 종이가 찢어지는 경우가 허다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출판을 위한 원고의 교정을 보던 비로는 ‘잉크를 보충해 주지 않아도 되고, 종이도 찢어지지 않는 필기구를 만들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는 곧바로 화학자이던 동생 게오르그에게 끈적거리는 잉크의 필요성을 설명하고, 그날부터 둘은 새로운 필기구 발명에 몰두했다. 1938년 그들은 몇 번의 실패 끝에 볼베어링을 통해 특수잉크가 나오도록 하는 현대식 볼펜을 발명하는 데 드디어 성공했다. 하지만 헝가리에서 특허는 받았으나 잉크를 녹이는 기름을 찾지 못해 생산에는 실패했다. 결국 이들은 2차 대전이 일어나자 아르헨티나로 이주하였고, 그곳에서 영국인 헨리 마틴의 후원으로 1943년에 특허를 획득하고 ‘Birom’이라는 브랜드로 볼펜을 생산할 수 있었다. 이후 그들은 잉크가 새는 피스톤식의 볼펜을 튜브식으로 바꾸는 등 품질을 개선하였다. 볼펜은 영국 공군에 처음 지급되었는데, 고도에서도 잉크가 새지 않아 큰 호응을 얻었다. 비로의 볼펜은 출시되자마자 세계 여러 나라에서 큰 인기를 얻었으며, 미국 시장에서도 큰 인기를 모았다. 미국에는 밀턴 레이놀즈에 의해 알려졌는데, 그는 아르헨티나의 부에노스아이레스를 여행하던 중 비로의 볼펜을 접하게 되었다. 이후 그는 잉크를 내보내는 시스템을 개량한 볼펜을 만들었으며, 미국 정부는 레이놀즈의 볼펜 10만 개를 구입해 군인들에게 지급하였다. 오스트리아 출신의 미국인 화학자 프란츠 제이크는 찰기가 있는 잉크 개발에 성공해 ‘물속에서도 쓸 수 있는 펜’이라는 광고로 히트했다. 비로에 앞서 미국인 존 로우드가 1888년에 볼펜을 발명하여 특허를 취득했었지만, 만년필 때문에 빛을 보지 못했다고 한다. 이와 같이 필기구 시장에 일대 혁명을 몰고 온 볼펜은 여러 사람들의 연구가 보태져 실용성과 편리성을 갖추게 되었다. 한편 한국에 볼펜이 처음 들어온 것은 1945년 해방과 함께 들어온 미군에 의해서였다. 이후 1963년 들어 국내 생산이 시작되었고, 60년대 말부터 대중 필기구로 정착되었다. 현재 아르헨티나는 비로의 생일인 9월 29일을 발명가의 날로 지정, 기념하고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비로 형제 등의 볼펜 - 더 편리하게 글을 쓸 수는 없을까? (발명상식사전, 2012. 1. 10., 왕연중) 형제들의 위대한 발명품이네요. 볼펜.. 편리하고 좋죠. 학창시절 볼펜 지우개도 생각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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