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럼부스의 달걀은 발상전환의 전형적 일화입니다. 발상의 전환 없이는 결코 경쟁에 이길 수 없다는 신자유주의의 메시지로 오늘날도 변함없이 예찬되고 있습니다. 아무도 달걀을 세우지 못했지만 콜럼부스는 달걀의 모서리를 깨트림으로써 쉽게 세워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발상전환의 창조성이라고 하기보다는 생명 그 자체를 서슴지 않고 깨트릴 수 있는 비정한 폭력성이라 해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이 감히 달걀을 깨트릴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은 그것이 생명이기 때문입니다. 달걀이 둥근 모양인 것은 그 속의 생명을 안전하게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모지지 않고 둥글어야 어미가 가슴에 품고 굴리면서 골고루 체온을 전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타원형의 모양으로 만들어 멀리 굴러가지 않도록 하거나, 혹시 멀리 굴러가더라도 다시 돌아오게 한 것 모두 생명을 지키기 위한 고뇌의 산물입니다. 그러한 달걀을 차마 깨트리려는 생각을 하지 못하는 사람과 그것을 서슴없이 깨트려 세울 수 있는 사람의 차이는 단지 발상의 차이가 아닙니다. 인간성의 차이라고 해야 합니다.
이것은 콜럼부스 개인의 이야기가 아님은 물론입니다. 그것을 천재적인 발상전환이라고 예찬하고 있는 우리들의 이야기임은 말할 나위도 없습니다. 콜럼부스가 도착한 이후, 대륙에는 과연 무수한 생명이 깨트려지는 소리로 가득 찼습니다. 생명이 무참하게 파괴되는 소리는 콜럼부스의 달걀에서부터 오늘날의 이라크에 이르기까지 세계의 곳곳에서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음이 사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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