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3월, 석진국 씨는 자신의 사무실을 다른 변호사에게 고스란히 넘겼다. 법률서적이며 사무집기, 직원들까지 그대로 남기고 뱀이 허물 벗듯 몸만 빠져나왔다. 올해 나이 마흔하나에, 변호사 경력 11년인 석씨는 그렇게 변호사 인생을 일단락지었다. 섭섭이야 하지만 그야말로 시원했다. 가슴이 두근거리기까지 했다. 왜냐하면, 그에겐 이제부터가 진자 시작이니까.
경남 창원시 중앙동에 있는 헌책 위탁판매 서점 ´집현전´. 쉽게 말해 헌책방인 이곳이 석진국 씨의 새 일터이다. 예전의 그가 늘 말끔한 양복차림이었다면, 요즘은 간편한 티셔츠에 때때로 목장갑을 끼고 얼굴에 검댕이도 묻히며 산다. 하루에 바나나 상자로 몇 백권식 헌책들이 들어오는데, 그것들을 정리하다 보면 자연 그렇게 된다.
˝변호사 사회의 뿌리깊은 비리에 염증을 느끼고 깨끗한 직업인 헌책방으로 전업했다? 그건 아닙니다. 변호사를 그만둔 건, 무엇보다 제 적성에 맞지 않았기 때문이죠.˝
석씨는 서울대 천문학과 3학년 1학기에 휴학을 하고 입대를 했는데, 제대 무렵 아버지가 사업에 실패했다. 복학은커녕 등 붙이고 잘 곳조차 없었다. 장남인 석씨로서는 어떻게 해서든 가족을 극빈의 상태에서 구해야 한다는 생각뿐이엇다. 그래서 사법시험에 도전해보기로 한 것이다. 오직 배짱 하나만 믿고 말이다. 처음에는 삼촌댁에서 수험생활을 시작했고, 나중엔 건국대 법학과에 입학해 장학금을 받으며 공부를 하게 되었다. 그리고 수험준비를 시작한 지 3년 만인 ´85년 제27회 사법시험에 합격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