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문을 두드리는 밤바람 소리가 잠을 못 이루게 한다. 가랑잎이 쓸려가는 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으면 강원도 두메에서 있었던 일들이 그리움으로 묻어온다.
싸릿가지로 엮은 울타리 너머 넓디넓은 자갈밭, 그 밑으로 깊이 패여 흐르는 강물이 푸르고, 물 속에 비친 산 그늘은 언제나 변화가 무쌍하였다.
부산에서 새벽버스를 타고 밤이 이슥하여야 닿을 수 있는 곳. 남편이 두 번째 전속해 간 곳이 강원도 화천군 부촌면 부촌리.
오래 머물러 있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곳이었다. 주민들의 대부분은 이동하는 부대를 따라다니는 철새라고 할지? 그들의 얼굴에는 이방인의 애수가 짙게 묻어 있었다. 처음 이사 와서는 낯선 곳에 정을 붙이려 애쓰고, 얼마만큼 생활의 때가 묻으면 또 단봇짐을 꾸려야 하는 유랑민의 서글픔 같은 것이 안개처럼 젖어 있는 마을이었다.
우리가 세든 방은 행랑채에 달린 방. 바닥이 울퉁불퉁 고르지 않고, 간단한 세간을 들여 놓고 둘이 누우면 발을 뻗을 수 조차 없었다. 다 찌그러진 쪽마루가 삐닥거렸다. 그런 방이었지만 나는 첫눈에 세들기로 결정하였다.
방문을 열면 한 눈에 들어오는 산과 강이 깊고, 안온한 생각들을 몰아와 내 사색의 뜰을 풍요롭게 할 것을 생각하니 그것만으로도 방세가 헐 했다. 아무튼 생활은 낭만이나 감상이 아니라는 것을 조금은 깨달을 나이였는데 숫제 편리함을 외면한 것이다.
한 지붕 아래 다섯 가구가 살았다.
문간방에 김중위네, 위채에 살면서 주인 대신 집 관리를 하는 장상사, 아내를 귀부인처럼 받들고 모시는 뒤곁의 정하사, 키가 껑충하고 무골호인풍의 김대위네, 그리고 군위관이던 우리집, 아침 저녁으로 좁은 집안은 시골장처럼 붐비었다.
비록 바깥 주인들의 소속부대가 다르고, 계급이 다르지만, 모두가 그곳의 잠간 잠깐 머물다 가는 사람들, 그 한가지만으로도 가족처럼 다정하게 지낼 수 있었다.
쿵쿵 산너머 대포소리가 들려오는 최전방. 민간으로서 더 들어갈 수 없는 그 곳은 시야(視野)에 험한 산을 빼고 잡히는 것이 없었다. 높고 높은 빌딩은 말할 것도 없고, 넓은 벌판조차 볼 수 없는 삭막일색이었다. 남자들이 모두 부대로 출근하고 나면 온 집안에 정적이 내리고, 나는 마을 나들이라도 할 듯이 서둘러 설거지와 빨래를 끝냈지만, 고작 뜨락 옆으로 다가가 흐르는 강물을 유심히 지켜보는 것이 일과처럼 되어 버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