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달 전 남편이 자몽을 깨끗이 깎아 냉장고에 넣어둔 적이 있다. 스스로 까는 것이 귀찮아서 자몽을 먹고 싶을 때마다 남편에게 "까줘, 까줘!"라며 조르기도 하고, "저기요, 과일 깍기 요정님, 자몽 까주세요."라며 어리광일 부려보니 기적이 일어난 것이었다.
게으른 남편이 내 부탁을 들어주는 일은 드물다. 그런데 설마했던 고전적인 아양과 칭찬이 효과가 있었다. 그런데 그걸 엄청난 일인 양 생색을 내는 것이 아닌가. 분노를 넘어 환멸을 느낀다.
남편이 말하길 "효과의 지속성은 알 수 없지만 남자는 모두 칭찬에 약해."라며 무언가 시킬 때는 과일 깍기 요정 수법을 쓰란다.
중요한 것은 일을 부추기는 것이 아니라 냉장고에서 껍질 벗긴 자몽을 발견했을 때 "오예!"하고 기뻐하는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 모습을 보면 정말로 해주고 싶은 생각이 든다고 한다.
그렇군, 나의 무의식적인 기쁨의 표현이 그런 효과를 발휘하는 거였군... 그런데 그 사실을 안 이상, 자연스럽게 기뻐하거나 아양을 떨기는 어려울 것 같다.
이제부터 지속적으로 아내와 남편 모두 행복한 집안일 분담 방법을 찾아야 겠다.
-야마우치 마리코 ‘설거지 누가 할래’ 중-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