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
방송연예 | |||||||||||
큐레이터 김선희의 작고 겸손한 집 아이리스 | 2011.04.16 | 조회 3,211 | 추천 81 댓글 2 |
|||||||||||
|
|||||||||||
베이징에서 머물다가 하루 뒤면 상하이 오피스에서 밀린 일을 처리하고, 미국을 거쳐 서울에서 새로운 전시를 기획하고 있는, 정말 숨 돌릴 새 없이 바쁜 큐레이터 김선희. 그녀에겐 평창동의 작고 겸손한 집으로 가는 길이 항상 특별한 경험이다.
정말이지 그녀는 무척 바빴다. 도쿄 롯폰기에 있는 모리미술관 큐레이터로 일해온 긴 시간을 뒤로하고, 지금은 중국 현대미술상 디렉터와 아트 컨설팅을 겸하는 독립 큐레이터로 일하고 있는 김선희가 평창동의 조그마한 주택을 일부 허물고 개축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 집 촬영을 욕심 내온 에디터에게 김선희가 베이징에서 보내온 메일은 그녀의 살인적인 스케줄을 새삼 확인시켜주는 것에 불과했다. 베이징과 상하이, 로스앤젤레스, 도쿄와 유럽을 오가다 보면 서울에서 머물 수 있는 날은 고작 2~3일에 불과하지만 일부러라도 서울을 꼭 경유한다고 했다. 장거리 비행에서 오는 체력적인 소모를 생각하면, 차라리 다음 도시에 일찍 도착해 여독을 푸는 것이 좋을 텐데도. 한국과 중국, 일본의 느낌이 섞여 있는 갤러리스트 김선희의 작고 겸손한 집 거실 풍경 그녀는 도쿄에서의 생활을 이렇게 회상한다. “도쿄에서는 롯폰기에서 한 정거장 거리인 토라노몬에 살았어요. 사람들은 시내 중심지에서 어떻게 사느냐며 신기해했지만, 제가 느끼는 매력은 다른 데 있었죠. 오피스가 많고 아파트가 얼마 없는 동네여서 밤이 되면 조용했고, 공원이 옆에 있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길이 즐거웠어요. 뒷골목에는 오래된 목조주택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었는데 아침 9시만 되면 에이프런을 두른 주부들이 거리에 빗질을 하며 꽃에 물을 주는 풍경을 흔하게 볼 수 있었어요. 출근길을 바쁘게 서두르는 나와는 다른 세계였죠.” 어떻게 보면 유목민 같은 긴 방랑의 세월을 거쳐 서울에 가지게 된 첫 집이니 평창동 주택이 얼마나 애착이 가는 존재일지 충분히 예상하고도 남음이 있었다. 바쁜 그녀를 자꾸 서울로 끌어당기는 힘은 아마도 ‘집’에서 오는 것이 아니었을까. 먼 길을 돌아와도 몸을 편히 누일 내 집이 있다는 든든함이 생겼기 때문이리라. 벽에 걸린 팝한 추상화 작품은 파리에서 거주하며 작업하는 한순자 작가의 작품. 흰 페인트로 칠한 테라스는 유리 온실 같은 공간으로 건축가 조병수는 말렸지만, 김선희의 고집으로 완성된 곳이다. 벽돌집의 증개축 모습을 잘 보여주는 사진. 슬레이트 블루 컬러로 칠한 철제 대문을 열고 들어서면 빨간 벽돌 굴뚝과 적갈색 지붕이 보이고 그 옆에 콘크리트 블록으로 증축된 집이 나타난다. 얼핏 보이는 작은 규모로는 짐작하기 어렵지만, 이 주택은 건축가 조병수와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 아트 디렉터 전용성의 힘이 보태진 그야말로 드림팀의 작품이다. 건축가 조병수는 김선희와의 인연을 이유로 설계비도 받지 않은 채 이 집의 리노베이션을 맡아주었다. 1960년대 초 국민주택이었던 평창동의 빨간 벽돌집은 그 당시 100여 채가 지어졌는데, 이제 이 집 하나만 남았다고. 주방 풍경. 철제 선반 위에는 여러 도예가의 생활 자기를 진열했다. 소박한 삶을 지향하는 큐레이터 김선희. 김선희는 이 집이 처음부터 좋았다고 말한다. “무척 오래되고 낡은 집인데도 참 정겨웠어요. 거실보다 낮은 부엌 아궁이와 일어서면 허리를 굽혀야 할 정도로 낮은 다락이 있는 구조였어요. 난방은 형편없고 날림으로 지어진 벽돌집이어서 라디에이터를 사용해야 할 정도로요. 철거 공사할 때 보니 옛날 신문이 천장에 붙어 있더군요.” 김선희가 작은 산이라 부르는 뒷마당에서 본 게스트 하우스의 모습. 건축가 조병수와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은 이 집의 ‘소박한 아름다움’에 더 큰 가치가 있다고 생각했고, 집주인 김선희 역시 ‘옛것에 대한 향수’와 ‘앤틱의 가치’를 높이 평가하는 사람이었기 때문에 이 집은 최대한 원형을 보존하며 리노베이션 공사가 진행됐다. 하지훈은 철거할 때 나온 나무 바닥재를 수거해 테이블과 벤치로 만들었고, 지금은 창문 프레임을 활용한 수납장을 디자인하고 있다. 시공 과정에서 현실적으로 바뀐 부분도 있지만 건축가와 디자이너, 집주인 모두 옛날 것을 유지하겠다는 기본 설계안을 존중했고, 그렇게 완성된 집에는 담백함을 좋아하며 대상을 편견 없이 바라보는 갤러리스트 김선희의 취향이 잘 배어 있다. 1 테이블 위에 올려둔 마리코 모리의 말차용 다기 세트. 무지갯빛 흰색은 그녀가 즐겨 사용한다. 2 가구 디자이너 하지훈이 디자인한 의자 뒤로 아직 포장도 뜯지 않은 미술품이 보인다. 게스트 하우스의 벽 선반. 차를 좋아하는 그녀의 취향이 여실히 반영된 다기 세트와 허은경 작가의 자개 작품이 보인다. 그녀가 작고 겸손하다 말하는 집의 거실에는 벽 한 면을 가득 채우는 크기의 그림에서부터 벽에 기대둔 액자, 아직 포장을 뜯지 않은 설치작품이 뒤섞여 한 컬렉터의 소장전이 열리는 갤러리를 연상케 했다. “난 소장가가 아니라서 가지고 있는 작품도 우연히 어떤 기회로 지니게 된 것뿐입니다. 아마도 오랜 인연이 있는 작가인 동시에 가장 좋아하는 작가라서 그렇게 되었던 것 같아요. 마리코 모리의 다기 세트는 모리미술관에서 제작해서 쉽게 구입할 수 있었어요. 마리코 모리는 일본 사람인데 지금 뉴욕에서 활동하는 작가로 먼 과거와 먼 미래가 통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에요. 프라다 재단과 작업한 드림 템플 프로젝트를 보면 마치 스톤헨지를 연상케 하는 신비스러운 분위기가 있어요. 전통과 다도에도 관심이 많아서 그녀의 작업을 꽤 오랜 시간 눈여겨봐 왔죠. 1 옛날 집에서 뜯어낸 바닥재로 만든 테이블. 2 가까운 지인인 오민호 감독이 선물한 김동규 작가의 십자가. 1 침실 반닫이 위에 올려둔 드로잉은 송현숙 작가의 작품. 2 집에서 가장 신경 쓴 공간 중 하나인 욕실. 거실 벽에 건 그림은 제가 가장 좋아하는 작품이에요. 독일 함부르크에 살고 있는 송현숙 작가의 그림입니다. 송현숙 작가는 작품을 내놓는 데 시간이 걸려요. 렘브란트가 했듯 자기 손으로 물감을 만들고 붓도 만드는 여류 화가죠. 이 작품은 어렸을 때의 기억을 풀어낸 것이라 하더군요.” 김선희는 애정에 달뜬 목소리로 송현숙 작가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갔다. 다른 것을 흉내내지 않고 자신만의 언어로 어떤 의미와 영감을 줄 수 있어야 좋은 작품인데, 그녀가 보기에 송현숙 작가는 삶과 자연, 문명과의 문제를 시적으로 읽어내는 보기 드문 작가이다. 그 고귀한 정신에 반해 작품을 구입했다. 프랑스에서 활동하는 한순자 작가도 빠뜨리면 섭섭하다. 동그란 것에 강박증이 있는 이 여류 화가는 원에 우주적인 큰 의미를 부여한다. 사각 욕조에 히노키 나무 프레임을 둘러 목욕을 할 때마다 나무향이 진하게 난다. 세면볼과 욕조, 비데 일체형 양변기 모두 아메리칸 스탠다드(1588-5903, www.americanstandard.co.kr) 제품. 게스트 하우스의 평화로운 코너. 게스트 하우스의 내부. 낮은 창문 밖으로 작은 연못이 보이고, 하지훈의 채상과 쿠션이 놓여 있다. 그녀는 많은 사람을 만난다. 그리고 전시를 위해 만난 다양한 사람들의 삶은 심플 라이프를 지향하는 김선희에게 큰 영향을 미친다. 이 집을 지을 때 송현숙 작가를 떠올렸다. 고민의 흔적이 남아 있는 집, 쓰임새가 좋지만 화려하지 않고 은근히 세련되면서 소박한 집. 직접 만든 뒷마당의 작은 개울에서 올챙이가 놀고 있고 작은 텃밭과 철마다 다른 꽃이 피는 화단. 이제 서울에 정착할 마음을 가진 큐레이터 김선희는 그녀가 만난 고귀한 정신을 가진 다른 사람들처럼 자연스럽고 소박하게 심플 라이프를 살아가는 것이 꿈이다. 멀리서 그녀를 찾아온 손님이 묵어가고 좋은 차를 마실 수 있으면 족하다는 작은 무릉도원.
|
|||||||||||
|
|||||||||||
|
|||||||||||
|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