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는 이랬지, 그때는 저러기도 했지…”
비와 함께 떠오르는 것이 어디 동동주와 파전뿐일까? 추적추적 비가 내릴 때 어렴풋이 떠오르는 것이 지금보다 더 어렸을 때의 연애사다.
옛 연인과 자주 갔던 공간과 함께 쌓았던 추억들. 지금보다 더 어리고 철모르던 시절의 추억이 피식, 웃을 만큼 유치하고 후회되기도 하지만 그때만큼 달콤하고 순수했던 추억이 어디 또 있을까?
옆에 현재의 연인이 버젓이 두 눈 뜨고 있음에도, 장마철에는 왜 이렇게 감상적인 기분으로 옛 연인을 추억하게 되는 것일까?
장마철에는 일조량 부족으로 우리 몸에서 멜라토닌이라는 호르몬이 분비된다. 멜라토닌은 생체 리듬에 관여하여 우울한 기분을 유발하는데 이 때문에 장마철에 더욱 감성적인 기분에 빠져들게 든다. 사람이 감성적이 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또한 옛 연인에 대한 아련한 추억일 것이다.
“그 사람은 지금쯤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잘살고 있을까?”
하지만 막상 옛 연인이 잘 사냐, 못사냐는 크게 중요하지 않다. 그보다는 예전과 많이 변했는지, 어떻게 변했는지,가 더 궁금한 것이다.
때로는 장마철의 마법에 취해 옛 연인의 이름과 나이를 애써 더듬어 인터넷으로 추적하기도 한다. 미니홈피나 블로그, 트위터 등을 샅샅이 뒤져 기어코 발견한 뒤에 환호도 잠시. 너무나 멀쩡히 잘 사는 모습에 옛 추억을 아련히 떠올리다가도 씁쓸한 기분이 든다.
“나 없이는 못산다 하더니, 나 없이도 잘 살고 있구만.” 사랑은 움직이는 거라 해도 뜻 모를 배신감이 드는 것은 왜일까?
한편으로는 옛 연인도 장마철에 취해 나의 신변을 추적하고 있을지 모른다는 생각에 미니홈피나 블로그 꾸미기에 심취하기도 한다. 매우 행복한 일상을 보내고 있는 것마냥 잘 나온 사진을 전체공개 해놓거나, 현재 솔로인 것마냥 연락할 여지를 남겨놓기도 한다.
비는 사람을 울적하게 하고 옛 상념에 빠져들게 만든다. 그래서 옛 연인을 추억하다가 연락이 닿아 재만남을 기약하는 위험한 발상을 하기도 한다.
옛 연인과 재회했지만 큰 소득 없이 오히려 옛 추억에 대한 좋은 기억마저 쇠퇴해버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당시와 지금은 때와 상황이 달라져서 그때처럼 애틋한 상황이 지속될 리 만무하다. 오히려 추억마저 변색될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과거는 과거로 남겨져 있을 때 아름다운 법이다. 옛 연인의 상념은 담아둘수록 넘치기 십상이니 현재를 위해 자연스럽게 흘려버리는 것이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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