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에 관한 글
자료 출처: 문화 관광부 문화 사랑방(국어 정책과)
'우리말 우리글 바로쓰기'에 관한 글입니다.
국어의 힘 - 이 익 섭 (전 국립국어연구원 원장)
한글 맞춤법과 띄어쓰기 - 임 동 훈 (국립국어연구원)
표준어와 방언 - 이 승 재 (카톨릭대학교)
표준 발음법 - 송 철 의 (서울대학교)
외래어와 외래어 표기 - 김 세 중 (국립국어연구원)
언어 예절 - 허 철 구 (국립국어연구원)
바른 글쓰기- 민 현 식 (숙명여자대학교)
표준어와 방언
이 승 재 (카톨릭대학교)
1. 머리말
표준어는 한 나라의 공통어로서 그 나라를 대표하는 언어이다. 표준어는 한 나라의 국민을 언어적으로 통일시켜 주는 언어요, 방언보다 품위가 있고 공적인 상황에 적합한 언어이다. 따라서 모든 국민들이 표준어를 널리 익혀서 정확하게 구사할 줄 아는 능력을 길러야 할 것이다.
그런데도 우리 주변에는 방언을 자주 섞어서 사용하는 사람들이 꽤 많다. 의도적으로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고 표준어를 잘 몰라서 방언을 사용하는 사람도 있다. 공적인 상황에서 의도적으로 방언을 사용한다면 그것은 표준어 제정의 정신에 어긋나고 표준어를 무시하는 행동이다. 표준어를 몰라서 방언을 사용하는 것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표준어는 국민 모두가 학습하여 사용해야 하는 우리의 공통어이기 때문이다.
일반인들 중에는 표준어와 방언의 차이를 모르거나 표준어의 개념이나 특성에 어두운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 글은 이들을 대상으로 표준어와 방언의 혼용 사례를 들어 표준어의 윤곽을 잡게 한 다음 표준어의 몇 가지 조건을 하나씩 정리해 보기로 한다.
2. 표준어와 방언의 혼용
우리가 쓰는 말은 아주 다양하여 하나의 개념에 대하여 둘 이상의 단어를 사용하는 때가 많다. 이 다양성은 방언 어휘 분야에서 가장 잘 드러난다. 하나의 단어에 여러 가지의 방언형을 쓰고 있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새우'의 방언형으로 '생이, 새뱅이, 새갱이, 새강지, 새웅개, 새비' 등을 비롯하여 모두 10여 개의 방언형이 쓰이고 있는 것을 예로 들 수 있다. 어휘의 양을 늘려 국어를 살찌우고자 할 때에는 단어를 다양하게 구사하는 버릇을 들이는 것이 좋다. 이것은 우리말의 향기와 맛을 더하는 지름길이 될 뿐만 아니라 국어 사랑을 실천하는 방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이 방언의 다양성이 문제를 일으키는 때가 적지 않은데 그 예로서 필자가 초등학교 시절에 경험했던 일을 하나 소개하고자 한다. 지리산 산골에 살다가 광주로 전학을 간 지 얼마 되지 않은 때의 일이다. 어느 날 담임 선생님께서 내일까지 '새비'를 하나씩 가져오라고 하셨다. 처음에는 그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 얼른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필자가 당시에 사용하던 말로는 '새비'가 '새우'를 지칭하는 것이었기에 도대체 왜 학교에 '새우'를 가져오라고 하는지 이해할 수 없었던 것이다. 나중에야 담임 선생님이 '새비'를 '새 빗자루'의 뜻으로 말한 것임을 알고 혼자서 쓴웃음을 지은 적이 있다. 이처럼 방언에 얽매이면 의사소통이 잘 이루어지지 않는 때가 적지 않다.
방언의 다양성은 역설적으로 표준어 사정의 필요성을 대변해 준다. 어느 것이 두루 쓰이고 권할 만한 말인지 결정해 주지 않는다면 여러 방언의 화자들이 앞을 다투어 자신의 방언형이 표준이 되고 규범으로 삼을 만하다고 주장할 것이다. 실제로 가나다 전화를 통하여 경북의 한 방언 화자가 '뚫어'는 잘못된 말이므로 '뚧어'로 고쳐 써야 한다고 강변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이것은 표준어인 '구멍을 뚫어' 대신에 '구녁을 뚧어'나 '궁기를 뚧어'를 표준으로 삼자는 말과 같은데 이러한 주장은 두말할 필요도 없이 본말이 전도된 것이다. 모든 방언 화자들이 자신의 방언만을 사용한다면 의사소통에 지장을 초래할 뿐만 아니라 언어적 통일을 성취할 수가 없다. 따라서 방언 화자들은 자신의 방언형을 강조하기 이전에 그 방언형에 대응하는 표준어가 무엇인지 배워서 익혀야 할 것이다.
복합어를 만들 때에도 방언에 따라 조금씩 차이가 난다. 한 예로 '볍씨'와 '&씻나락'을 들 수 있다(방언형 앞에는 &표를 붙임. 이하 같음). 표준어 '벼'를 남부 방언에서는 대체적으로 '&나락'이라 일컫는다. 그런데 '벼의 종자'를 뜻하는 '볍씨'를 남부 방언에서는 '*나락씨'(*표는 쓰이지 않는다는 뜻임)라 하지 않고 '&씻나락'이라 한다. 이처럼 형태의 차이뿐만 아니라 어순의 차이가 방언차 기술의 중요한 대상이 될 때도 있다. 그런데 '&씻나락'이 '귀신 씻나락(/*볍씨) 까먹는 소리 한다'라는 속담에 쓰이고 있어 흥미롭다. 대개의 속담은 표준어를 기준으로 채집된 것인데 어찌하여 이 속담에서는 '볍씨' 대신 방언형 '&씻나락'이 쓰이게 되었을까? 방언이 아니라 표준어가 아닐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이처럼 어느 말이 표준어이고 어느 말이 방언인지 구별하기 어려운 때가 적지 않다. '(아주) 맛나다'를 주로 사용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아주) 맛있다'를 즐겨 쓰는 사람도 있고 어떤 이는 이 두 단어를 적절하게 섞어서 사용하기도 한다. 둘 중에서 어느 것이 표준어인가를 물으면 갑자기 당황하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1) 가. 맛나다 - 맛있다 - &맛지다
나. 재미나다 - 재미있다 - &재미지다
다. *멋나다 - 멋있다 - 멋지다
라. 신나다 - *신있다, *신명있다 - 신명지다
'맛나다, 맛있다'와 '재미나다, 재미있다'는 모두 표준어이다. 그 대신 '&맛지다'와 '&재미지다'는 일부 지역에서만 사용되는 방언이다. '맛있다'를 중립적인 단어라고 한다면 '맛나다, 재미나다'는 '나다[出]'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고 '&맛지다, &재미지다'는 '기름지다, 살지다' 등의 '-지다[肥]'의 의미를 강조한 것이다. 표준어 화자에게는 '&맛지다, &재미지다'가 어색한 말일 수밖에 없지만 조어법이나 단어 형성론에서는 아주 흥미로운 말이다. '멋'이나 '신명'에는 '-지다'가 통합되어도 아주 자연스러운 표준어가 되기 때문이다.
표준어와 방언이 경쟁 관계에 있는 때도 많다. 표준어였던 '빈자떡'을 '빈대떡'이 밀어낸 것이나, 표준어 '우렁쉥이'보다 방언형 '멍게'가 더 많이 쓰이게 되어 '멍게'가 복수표준어로 승격된 것을 그 예로 들 수 있다.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경기도 지역에서는 '(댁에) 계신다'를 쓰지 않았다고 한다. 그런데 언제부터인가 방언형 '계신다'를 쓰기 시작하여 지금은 '(댁에) 계시다'보다 더 많이 쓰는 상황이 되었다. 이것이 정착된다면 '계시-' 어간의 문법범주를 형용사에서 동사로 바꿔야 할지도 모른다. 이 예는 방언의 간섭이 문법범주의 변화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흥미를 끈다.
방언이 표준어에 간섭하는 대표적인 예는 '다르다[異]' 대신에 '틀리다[僞]'를 사용하는 현상일 것이다. 대부분의 남부 방언 화자들은 '다르다'를 써야 할 곳에 '틀리다'를 곧잘 사용하지만 원래의 표준어 화자들은 이 둘을 '異'와 '僞'의 뜻으로 엄격하게 구별해 왔다. 그런데 남부 방언의 용법이 서울말에 침투하여 이제는 다음과 같은 말을 서울에서도 자주 들을 수 있게 되었다.
(2) 가. 이 일은 그 일과 틀려요/달라요{*틀렸어요/달랐어요}.
나. 두 사람 말이 서로 틀리지/다르지{*틀렸지/달랐지} 않은가?
이와 비슷한 예를 부정법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형용사 부정문의 경우 표준어에서는 일반적으로 부정소를 형용사의 뒤에 두는 이른바 장형 부정문을 사용한다. 이와는 달리 남부 방언에서는 부정소를 형용사 앞에 놓는 단형 부정문을 사용하는 것이 원칙이다.
(3) 가. 산이 안 높다. → 산이 높지 않다.
나. 얼굴이 안 예쁘다. → 얼굴이 예쁘지 않다.
남부 방언의 이 용법이 서울말에 밀려 들어 온 결과 이제는 '안 높다, 안 예쁘다'라고 말하는 사람들이 제법 많아졌다. 이처럼 문법적 측면에서도 방언은 표준어에 커다란 영향을 미친다. 방언의 간섭에 의한 문법적 변화는 얼른 눈에 띄지 않는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어휘 변화는 말이 바뀌었음을 금방 확인할 수 있으나 문법 현상에서의 변화는 전문가들조차도 찾아내기 어려운 때가 많다.
3. 표준어의 개념
지금까지 표준어와 방언의 몇 가지 예를 들어 보았다. 비록 단편적인 예에 지나지 않지만 표준어와 방언을 뒤섞어 사용하는 혼용 현상도 논의해 보았다. 그러나 이것만으로 표준어와 방언의 차이를 모두 기술할 수는 없다. 표준어의 개념과 특성에 대해서는 따로 논의할 필요가 있다.
[표준어 사정 원칙] 제1장 제1항을 보면 "표준어는 교양 있는 사람들이 두루 쓰는 현대 서울말로 정함을 원칙으로 한다"라고 규정되어 있다. 이 규정은 1988년에 고시되었으므로 그 이후에 학교 교육을 받은 사람들은 이 규정을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이전에 학교 교육을 마친 사람들은 이 규정을 잘 모를 뿐만 아니라 알고 있더라도 그것이 구체적으로 무엇을 뜻하는지 쉽게 서술해 주기를 바라는 사람도 많다.
이 규정에는 네 가지 조건이 포함되어 있다. 표준어는 첫째 '교양이 있는 사람'의 말이어야 하고 둘째 '두루 쓰는' 말이어야 하며 셋째 '현대'에 사용하는 말이어야 하고 넷째 '서울말'이어야 한다. 둘째 조건은 사소한 것 같으면서도 아주 중요하다. 어느 것이 보편적이고도 일반적인 어형인지를 결정하는 일이 의외로 어렵기 때문이다. 이 조건은 또한 다른 세 가지 조건에 두루 적용되는 상위의 조건이다. 그런데도 이를 제외하고 나머지 세 가지 조건만을 풀이하는 때가 많다. 이 글에서도 편의상 나머지 세 가지 조건을 중심으로 서술하되 필요할 때마다 어느 어형이 '두루' 쓰이는지에 관심을 기울일 것이다.
표준어는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여 정한다는 것은 표준어의 지리적.공간적 조건을 밝힌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우리말은 지역에 따라서 아주 다양한 차이를 드러낸다. 앞에서 이미 들었던 것처럼 '새우'의 방언형이 아주 많은데 서울을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서 두루 사용하는 대표적인 방언형은 역시 '새우'이다. 서울에 사는 사람들 중에도 '새우' 대신에 '생이, 새:'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일부 있다. 그렇다 하더라도 '새우젓을 담근다'거나 '고래 싸움에 새우등 터진다'고 하지 '생이젓(새:젓)을 담근다'거나 '고래 싸움에 생이등(새:등) 터진다'고 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즉 '생이'보다는 '새우'가 두루 쓰이고 있으므로 '새우'를 표준어로 삼는 것이 마땅하다.
그런데 서울에서 쓰는 말이라고 하여 모두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니다. 서울에서는 /ㅗ/ 계통의 여러 문법 형태를 /ㅜ/로 발음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또한 서울말을 조금만 관찰해 보면 '하-' 대신에 '허-' 동사를 쓰는 때가 많다는 사실도 바로 드러난다.
(4) 가. 이리루 가지 말구 저리루 가두룩 하세요.
→ 이리로 가지 말고 저리로 가도록 하세요.
나. 서루 잘났다구 오늘두 싸우구 있든데.
→ 서로 잘났다고 오늘도 싸우고 있던데.
(5) 우리가 학교 댕길 적에는 우리말을 쓰지 못허게 허구 일본말을 쓰라구 했어.
→ 우리가 학교 다닐 적에는 우리말을 쓰지 못하게 하고 일본말을 쓰라고 했어.
서울에서는 (4∼5)의 밑줄 친 부분을 발음할 때 /ㅗ/로 발음하지 않고 /ㅜ/로 발음하는 것이 일반화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이리루, 말구, 서루, 잘났다구' 등을 표준어로 삼지는 않았다. 또한 '한다'와 '헌다'가 모두 쓰이는데 '허-'를 버리고 '하-' 동사를 표준으로 삼았다. 이처럼 서울에서 쓰이는 말이라 하여 모두 표준어가 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에 주의할 필요가 있다.
이 점을 강조하면 서울말은 자연 언어인 데에 비하여 표준어는 인공 언어라고 할 수 있다. 보통의 서울말은 방언의 하나로서 인위적인 요소가 배제된 자연 언어인 데에 비하여, 표준어는 서울말을 기준으로 하였지만 인위적인 요소를 가지고 있는 인공 언어인 것이다. 이 인위적 요소에는 여러 가지가 있는데 대표적인 것으로 '-구, -루'를 버리고 '-고, -로'를 택한 것과 '허-'를 버리고 '하-'를 택한 것을 들 수 있다. 이것은 대개 역사적 표기 관습을 중시한 데에서 빚어진 결과이다. 그밖에도 '숫놈'과 '웃눈썹'을 버리고 각각 '수놈'과 '윗눈썹'을 표준어로 삼은 것과 '句節, 引用句, 絶句' 등의 독음을 각각 '구절, 인용구, 절구' 등으로 통일한 것도 인위적 처리의 대상이다. 이들은 대개 한 가지로 통일할 필요가 있어서 인위적으로 표준어 규정에 포함시킨 것들이다.
실제로 표준어가 아닌 단어들도 서울 토박이 말에서 자주 들을 수 있다.
(6) 지끔은 신랑을 끌:구 겉이 댕기면 데이트두 해보구 대화두 허구 친절허게 지:내다 결혼허지 않우? ...... 혼인허구 보면, 여자가 애꾸눈이두 있고 남자는 절뚝발이두 있구 ... 절을 잘 배얘 시집간다 그래
(5)의 '댕길'을 표준어로 고치면 널리 알려져 있듯이 '다닐'이 된다. '지금'은 표준어에서는 '지금'으로 발음하나 서울 토박이들은 (6)에서처럼 항상 '지끔'으로 발음한다. 따라서 진짜 서울 토박인지 아닌지를 판단할 때 '지금'의 발음은 좋은 척도가 된다. (6)의 '애꾸눈이'와 '절뚝발이'는 어느 사이에 '애꾸'와 '절름발이'에 밀려 듣기 어려워진 서울 토박이 말이다. 특히 (6)의 '배얘'는 엄격히 말하면 서울 방언이라고 해야 옳을 것이다. '밴:다, 배:구, 뱄:니'의 활용형에서 볼 수 있듯이 이 어간은 '배:-'로 굳어져 표준어와 크게 차이가 난다. 이처럼 표준어와 동떨어진 서울말도 적지 않다는 데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표준어 규정]에는 '현대' 서울말이라는 시간적 조건이 들어가 있다. 모든 언어는 시간이 흐름에 따라 조금씩 변화한다. 서울말도 이와 마찬가지인데, (6)의 '애꾸눈이'와 '절뚝발이'는 이제 '애꾸'와 '절름발이'로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다.
(7) 우리는 개와집이서 살았져. 성 안으루는 초개집이 드물었구. 지끔은 초개집이 읎지.
(8) 버리 새에가 깜배기가 있는 거지. 점배기 옥수수를 심구믄 깜배기가 꺼멓게 생기구.
(7)의 '개와집, 초개집, 지끔'은 각각 '기와집, 초가집, 지금'으로 바뀌었고, (8)의 '버리, 깜배기, 심구믄'도 각각 '보리, 깜부기, 심으면'으로 바뀌었다. 이처럼 서울말에도 현대에는 '두루' 쓰이지 않는 것들이 있다. '기와집, 보리' 등이 새로운 표준어로 자리잡는 데에는 문자 교육과 방송 매체의 영향이 결정적인 역할을 하였다. 표준어는 한번 정하면 고정되는 것이라는 인식이 넓게 깔려 있으나 시간의 흐름에 따라 두루 쓰이는 서울말이 바뀐다면 표준어도 그때그때 새로 정할 필요가 있다.
위에 든 예들은 어느 쪽이 표준어인지 쉽게 가려낼 수 있다. 그러나 현재 서울에서 쓰이고 있는 말 가운데에도 어느 것이 고형이고 어느 것이 신형인지 판단하기 어려운 때도 있고 고형과 신형 중에서 어느 것이 두루 쓰이는 말인지 결정하기 어려운 때도 있다. 아직도 경쟁 관계에 있는 형태들이 많은 것이다.
(9) 넝쿨/덩굴, 두동무니/두동사니, 철따구니/철딱서니/철딱지, 자물쇠/자물통, 성글다/성기다, 서럽다/섧다, -뜨리다/-트리다(자빠뜨리다/자빠트리다), 길잡이/길라잡이
이럴 때에는 위의 예들과 같이 둘 이상의 형태를 모두 표준으로 인정할 수밖에 없다. 그런데 만약에 '자물쇠'나 '섧다'보다 '자물통'이나 '서럽다'를 많이 쓰는 변화가 나타난다면 언젠가는 그 변화를 수용하여 단수 표준어로 수정할 필요가 있을 것이다.
외래어도 표준어 사정의 대상이 된다. 특히 근래에 들어온 외래어로서 실생활에서 흔히 쓰고 있는 말인데도 어느 것이 표준어인지 맞추기 어려운 것들이 많다. 외래어 표기법에 관련된 문제이기는 하지만 '가스, 버스, 주스, 초콜릿, 뉴턴(인명)'이 맞는지 '까스, 뻐쓰, 쥬스, 쵸코렛, 뉴톤'이 맞는지 갑자기 결정하기 어려워진다. 이러한 것들에 대해서는 어느 것이 외래어 표기법에 맞는 것인지를 일일이 정해 줄 필요가 있다. 이들을 어떻게 발음할 것인지도 문제가 된다. 이들에 대한 표준발음법이 아직 마련되어 있지 않은 상황에서는 '가스, 버스' 등으로 발음하는 것이 좋을 것이다.
특히 최근에 들어온 외래어를 사정하는 일도 중요하다. '휴대전화, 전자우편'을 사용할 것인지 '핸드폰, 이메일'을 사용할 것인지를 통일해 주지 않는다면 두 가지가 각각 서로 다른 것을 지칭하는 듯한 혼란이 일어나게 될 것이다. 데이터베이스에 한 쪽에서는 '휴대전화'와 '사이버'로 입력하고 다른 쪽에서는 '핸드폰'과 '싸이바'로 입력했다고 가정해 보자. 이 데이터베이스를 이용하여 빈도를 측정하거나 전환 프로그램을 만든다면 낭패할 때가 많을 것이다. 이러한 비효율을 사전에 봉쇄하기 위해서라도 새로 들어온 외래어를 하나로 통일해서 쓰는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이 점을 감안한다면 표준어 특히 외래어 사정 작업은 수시로 이루어져야 마땅하다.
표준어 규정의 첫머리에 나오는 '교양이 있다'는 말은 어떤 뜻인가? '교양'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하나는 문화 생활에 필요한 일정한 정도의 지식을 뜻하고 다른 하나는 인간으로서 갖추어야 할 격식이나 품위를 뜻한다.
일상 생활에서는 '교양'이 지식보다는 올바른 태도와 동일시될 때가 많다. 즉 실용적 의미에서의 '교양'은 말을 주고받을 때의 품위나 올바른 자세와 관련된다. 우리는 일상적으로 '말버릇이 좋지 않다'거나 '말씨가 아주 곱다'거나 하여 상대방의 말투를 평가하곤 한다. 이것은 우리들이 언어에 매우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음을 드러내 준다.
그런데 표준어에 비속어가 포함된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곱고 다듬어진 말만 표준어로 인정하여 다음의 '귀퉁배기, 발목쟁이, 볼따구니, 뺨따귀' 등을 표준어에서 은연중에 제외하고 있는 것이다.
(10) 귀퉁머리, 귀퉁배기 → 귀퉁이 발모가지, 발목쟁이 → 발목
볼따구니, 볼퉁이, 볼때기 → 볼 뺨따귀 → 뺨
그러나 현재의 표준어 규정에 따르면 비속어도 엄연히 표준어의 일부이다. 그렇다고 하여 비속어를 권장하는 것처럼 오해해서는 안 된다. 비속어는 표준어에 들어가기는 하지만 따로 비어 혹은 속어라고 분류하게 된다. 비속어는 표준어의 일부에 속하기는 하나 되도록이면 사용하지 않아야 '교양'을 갖출 수 있기 때문이다.
경어법이 발달한 국어에서는 말투가 특히나 중요한 역할을 한다. 경기도 남부 지역의 방언을 조사하면서 어느 제보자로부터 들었던 이야기로서 지금도 기억에 생생한 것을 하나 소개해 본다.
(11) 가. (시간이 없으니) 어서 가자. 어서 가시지요.
나. (시간이 없으니) 빨리 가자. ??빨리 가시지요.
(12) 가. 안녕히 가세요.
나. 또 오세요.
그 제보자는 웃어른에게 '빨리 가시지요'라고 말하면 말버릇이 없고 돌아가는 손님에게 '안녕히 가세요' 해도 실례가 된다고 하였다. 이처럼 '빨리'와 '어서'의 경어법상의 차이 그리고 '가-' 동사의 주변적인 의미(즉 [死])에까지 신경을 쓰는 분들이 우리 주변에는 적지 않다. 이런 분들이야말로 국어에 대해 '교양이 있는' 분들이라고 할 수 있다. 표준어를 규정할 때 이처럼 예의 바르고 공손하면서도 말을 정확하게 사용하려고 노력하는 분들을 표준으로 삼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일이다.
그러나 표준어 규정의 '교양'이라는 단어가 화자의 언어적 품위나 말하는 자세만을 가리킨다고 이해하는 것은 곤란하지 않을까 한다. '교양'이 일정한 정도의 지식을 지칭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 해석에 따르면 국어에 대한 지식을 어느 정도 갖추어야만 정확한 표준어 화자가 될 수 있다.
사실상 우리는 우리말에 대해서 어느 정도의 지식을 모두 갖추고 있다. 이 말보다는 저 말을 많이 쓴다든가 이것보다는 저것이 자연스러운 우리말이라는 등의 판단력은 가장 기초적인 국어 지식에 속한다. 이 기초 지식을 잘 활용하면 한글 맞춤법이나 표준어 규정을 쉽게 이해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이 지식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노력을 게을리하는 데에 문제가 있다.
다음의 예를 보도록 하자.
(13) 가. *먹읍니다/먹습니다 → *먹었읍니다/먹었습니다
*잡읍니까?/잡습니까? → *잡았읍니까?/잡았습니까?
나. 머물다/머무르다 *머물어/머물러
서둘다/서두르다 *서둘었다/서둘렀다
다. 배가 몹시 ??아프니까/아파서 결석했습니다.
현행 한글 맞춤법에서는 '먹읍니다, 잡읍니까?'를 버리고 '먹습니다, 잡습니까?'를 쓰기로 하였다. 그런데도 '먹읍니다, 잡읍니까?'로 써야 맞지 않느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이러한 의문은 '먹었습니다'와 '먹었읍니다' 그리고 '잡았습니까?'와 '잡았읍니까?'의 발음이 서로 같다는 데에서 비롯된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먹읍니다'나 '잡읍니까?'로 발음하지 않고 '먹습니다'나 '잡습니까?'로 발음한다는 사실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것을 바탕으로 여러 예들을 관찰해 보면 '남-, 싶-'처럼 자음으로 끝나는 어간 뒤에서는 '-습니다, -습니까?'를 쓰고 '가-, 오-'같이 모음으로 끝나는 어간 뒤에서는 '-ㅂ니다, -ㅂ니까?'를 쓴다는 규칙을 발견하게 된다.
이러한 규칙을 찾아낼 수 있는 능력은 한국인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다. 따라서 표준어 규정에서 요구하는 '교양'이란 그렇게 어려운 것도 수준이 높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도 국어 현상을 관찰해 보려 노력하는 일반인들은 극히 소수에 불과하다. 국어 분석은 국어학자들이나 하는 것으로 생각하는 태도는 결코 바람직한 태도라고 할 수 없다. 본말과 준말의 관계에 있는 '머물다'와 '머무르다'를 모두 표준으로 인정하면서도 모음 어미가 연결될 때에는 준말의 활용형을 인정하지 않았다. 우리의 현실 발음을 조금만 돌아보면 '머물어, 서둘었다'로 쓰지 않고 '머물러, 서둘렀다'를 사용한다는 것을 쉽게 알 수 있다. 이처럼 우리말에 관심만 가지고 있다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고 설명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이에 비해 (13다)에서 '아프니까'가 어색한 까닭을 설명하는 일은 쉽지 않다. 그렇다 하더라도 이곳의 '아프니까'는 '아파서'에 비하여 아주 어색하다는 것을 모어 화자라면 금방 판별해 낸다.
어느 것이 정확한 우리말인지를 가려내는 판단력은 우리 국민이라면 모두가 갖추어야 할 소양이다. 이 판단력은 지적 수준과도 관련이 되는바 표준어를 정확하게 구사하기 위해서는 일정한 정도의 지식을 갖추어야 한다. 이 지식을 구비했을 때에야 비로소 '교양이 있는 사람'이 될 수 있는 것이다.
표준어는 앞에서 서술한 여러 가지 조건을 갖춘 언어이다. 그 조건과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말은 표준어가 아니다. 그러나 실제로 언어 생활을 하다 보면 표준어인지 아닌지 얼른 구별이 되지 않는 예들이 아주 많다는 사실을 알게 된다.
(14) 가. 조금(○조끔, ○쪼끔, ×쬐깨, ×쬐꼼)
나. 이때(○입때), 저 때(○접때, ×저때))
다. 재떨이(×재털이), 먼지떨이(×먼지털이), 혼자(×혼차), 팔꿈치(×팔쿰치)
일상적인 구어에서는 어느 말이 표준어인지 관심을 가지지 않다가도 글로 문장을 쓸 때에는 어느 말을 골라 써야 하는지 생각하게 된다. 글을 쓸 때에야 '조끔'을 '조금'으로 고쳐야 하지 않을까 또는 '입때'나 '재떨이'가 틀린 것은 아닐까 하고 고민하는 것이다.
이때에 참고가 되는 것이 국어 사전이다. 국어 사전에는 방언형 또는 비표준어라는 정보가 들어가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여 훨씬 더 정확한 표준어를 구사할 수 있을 것이다. 국어 사전을 자주 뒤져보는 일이야말로 표준어를 빨리 익히는 지름길이 된다.
국어 사전에 나오지 않는 우리말도 적지 않다. 일부의 지역에서만 쓰이는 방언이 그 대표적인 예이지만 요사이는 아직 사전에 오르지 않은 신어들이 종종 문제를 일으킨다. 신어는 새로 만들어 사용하기 시작한 말이기 때문에 사전의 올림말에서 제외될 수밖에 없다. 대표적인 예로 '먹거리, 도우미, 레포츠, 시골스럽다' 등을 들 수 있다. '먹거리'는 한 개인이 애정을 가지고 퍼뜨려 이제는 사용하는 사람이 많아졌다. '도우미'는 '도움'에 접사 '-이'를 붙여서 만든 듯하고 '레포츠'는 '레저'와 '스포츠'의 혼태형이다. '시골스럽다'는 아직 널리 쓰이지는 않지만 '촌스럽다'를 대신하여 전원적 분위기를 내는 데에 적합하다.
이와 같이 새로운 말을 만들어 쓰려는 노력은 높이 평가할 만하다. 그러나 어법에 맞아야 한다는 것을 강조해 두고자 한다. '먹거리'는 국어의 문법에 따르면 완전히 잘못된 신어이다. '먹거리'는 '먹을거리'가 되어야 어법에 맞다. '볼거리, 땔거리' 등의 예에서 확인할 수 있듯이 동사 어간에 '-ㄹ거리'를 붙여서 말을 만드는 것이 원칙이기 때문이다. '반찬거리, 일거리' 등에서는 'ㄹ'이 들어가지 않는다는 점을 들어 '먹거리'에는 아무런 잘못도 없다고 강변할지 모른다. 그러나 '반찬, 일' 등의 명사 뒤에는 'ㄹ'이 올 수 없지만 '보-, 때-, 먹-' 등의 동사 어간 다음에는 반드시 'ㄹ'을 넣어야 우리의 문법에 맞다는 점을 알아야 한다. 이 점을 강조하면 '먹거리'는 분명히 우리말 조어법을 어긴 신어이다. 따라서 신어를 만들어 쓸 때에는 우리말 문법에 맞는 것인지를 항상 확인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하겠다.
4. 맺음말
방언을 사용하여 향토애를 불러일으키고 친근감을 불어넣을 수 있다는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방언을 지나치게 남용함으로써 지역 우월주의에 빠진다거나 다수 국민의 정서를 해치는 일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어느 사회 단체나 국가든지 언어적으로 단일화되어 있지 않다면 정치.사회.문화적 통일을 이룩할 수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모든 나라에서 표준어를 정하여 언어적 단일화를 꾀하고 있는바 우리가 표준어 교육에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이 점에서 여러 교육 기관에서는 방언 화자들에게 어느 것이 표준어인지를 알려야 하며 나아가서 표준어의 개념과 속성을 설명해 주는 데에 힘써야 한다. 거꾸로 국민 각자는 자신이 사용하는 말이 표준어인지 아닌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여러 기관들이 나서서 표준어 교육에 열성을 보인다 한들 수용자의 자세가 흐트러져 있다면 아무 소용이 없다. 표준어 습득에는 언어적 교양을 갖추려는 마음가짐이 가장 중요한 요소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