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죽거리
말죽거리는 현재 지하철 3호선 양재역 부근을 지칭하는데 강남 일대에서는 양재동, 역삼동이란 동명보다 말죽거리라고 하면 알아 듣는 사람이 더 많다.
주민들에 의하면 이 곳을 말죽거리라고 칭하게 된 내력은 옛날 제주도에서 올려보낸 말을 한양으로 보내기 전에 이 곳에서 최종적으로 손질하고 말죽을 쑤어 먹였기 때문이라고 한다. 따라서 얼마전까지도 양재동사무소 동쪽의 헌릉로변 게리 또는 거여리에는 많은 마방이 있었다.
옛날에는 서울에서 충청도·경상도로 가려면 한남동 나루터에서 배를 타고 한강을 건너야 했는데, 말죽거리는 이대로의 첫 길목이었다. 이와 반대로 지방에서 서울로 들어오는 사람들도 한강을 건너기 전에 마지막으로 휴식하는 곳이 말죽거리였다.
따라서 말죽거리에는 조선초부터 공무로 여행하는 이들에게 마필과 숙식을 제공하는 주막도 적지 않았다. 즉 멀리서 온 여행자들은 타고 온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하고, 자신도 저녁을 먹은 뒤이 곳에 묵었던 것이다. 또한 남쪽으로 떠나는 사람들이 압구정등에서 전송하는 벗들과 마지막 주연을 나누고 헤어져 저녁나절에 찾아든 첫 숙소가 말죽거리에 있는 주막이다.
이들은 이제부터 천리길을 가야 할 말에게 죽을 끓여 먹이도록 이르면서 자신도 주막에서 여장을 풀었던 것이다. 이때문에 이 곳 일대를 말죽거리로 불렀다고 한다. 또 다른 설로는 이괄의 난 때 인조가 피난을 가는 길에 이 곳에 이르러 유생 김이 등이 쑤어 올린 팥죽을 말 위에서 들고 갔기 때문에 말죽거리라는 이름이 유래했다고도 한다.
그 밖에 다른 설은 병자호란때 인조가 청나라의 침입을 피하기 위해 남한산성에 들어가자 청나라는 이 성을 완전히 포위하였다. 이 때 이 곳은 청나라의 장사 용골대가 지휘하는 우익군의 병참기지였다. 즉 청나라의 기마병들이 산성을 향하여 공격을 가한 후에는 교대로 이곳 병참기지에 물러나 말의 피로를 회복시키고 말죽을 쑤어 먹였다 하여 말죽거리라고 칭하였다는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