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격적으로 제 얘기를 하자면..
지금 연락하는 남자가 있어요.
만나게 된 연유는... 조금 창피하기도 하지만..
1km라는 스마트폰 어플을 아시나요?
거기서 만나게 됐어요.
나이도 같고 동네도 바로 옆 동네에 심지어 졸업한 대학교까지 똑같았죠.
이런 어플에서 만나면 조심해야 될 것들이 많아지니까,
저 역시 조심하고자 했는데, 이 사람은 처음부터 뭔가 오래된 친구같고 편했어요.
그래서 연락한지 1주일만에 만나게 되었습니다.
첨 만난 날.
뭔가 두근두근거리면서도 나쁜 짓하는 기분이 들기도 하고.
부모님이 아시면 모르는 남자 덜컥덜컥 만나고 다닌다고 등짝을 치실꺼고.
친구들도 나이먹고 주책이라 할텐데...
두근두근.. 약간의 죄책감도...
그 친구는 안경을 썼다고 했었던게 생각났어요..
그래서 안경낀 남자가 절 보기만 해도,
“쟨가?” “아니면 저 사람인가?” 하면서 두리번 두리번..
그리고 우리 둘은 막 서로를 못찾고 헤매다 약속시간보다 좀 늦게 만나게 됐었습니다.
첫 인상은 괜찮았어요.
잘 생긴건 절대 아니었지만 차림새가 깔끔하여 호감이 가더라구요.
첫 날 만남이 끝나고, 이 남자는 절 집근처까지 데려다주며,
“네가 맘에 든다. 내일 또 보자.”고 했습니다.
그리고 정말 다음날 만나서 밥먹었고,
그 담주에 둘이 시간이 되는 날 또 만나고 그랬어요..
근데, 온라인으로 만나서 그런건지..
께름칙한 마음이 사라지지 않았고..
왠지 좀 믿음이 안가는거에요.
예를 들자면,
1. 제 성은 박씨인데 자꾸 배씨라고 부르더라구요;
뭐 구두로 제 이름을 한번정도 밖에 안말하고,
‘항상 성빼고 이름만 부르니까 그럴수도.’
하며 쿨하게 넘어가려면서도 뭔가 찝찝했어요.
2. 저랑 데이트를 하려고 하면 의도치 않은 일이 많이 생기는 거 같더라구요.
할머니가 위급하시고, 갑자기 뒤차가 자기차를 박고,
계획에 없던 야근이 생기고, 멀리멀리가는 출장이 갑자기 잡히고..
3. 그리고 젤 좀 불편했던 건..
(전 쓸데없는 기억력이 정말 남들 이상이에요. 그래서 제가 얘기한 건 다 기억하거든요.)
제가 말했던 거를 반복해서 물어보는 거였어요.
놀이기구를 못탄다고 난 분명 말했는데, 그 담주에 놀이기구 잘타? 물어본다던가
설 연휴때 난 아무데도 안간다고 말했는데, 그 뒤로 3번이나 어디안가? 물어보는 것.
같은.. 아무튼 소소한 거지만 전 다기억해요!! ㅠ
그런 의심하는 마음을 가지고도,
전 긴가민가.. 하면서 몇 번을 더 만났어요.
만날땐 저한테 엄청 잘해주고 온갖 감언이설을...
심지어 전 그 친구의 친구커플이랑 밥도 먹었구요,
엄마한테도 제 이야기를 했다고 말하더라구요.
자긴 이제 결혼할 때라서 진지하게 사람을 만나야 하는데,
그러기엔 “네가 딱이다!!!”를 외쳐주면서 저의 의심 무장을 해제시켰습니다.
가장 최근에 만났을 때 그는. 저에게 사귀자고 말했어요.
근데 전 풀리지 않은 의심의 덩어리가 한가득이었어요.
물증은 없지만 심증이 너무 강했어요.
아 싫지는 않은데.. 뭔가 냄새가 나요.
“생각할 시간을 달라. 난 아직 너에 대해 잘 모르겠다.
그니까 한두번만 더 만나보고 결정을 하도록 하자.”라고 답했어요.
그러던 어제!
저는 제일 친한 친구를 만나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1km어플 이야기를 하게 된 거에요.
장난으로 막 “너랑 그 남자랑 1km에서 만나면 완전 대박이겠다!!”
이러면서 수다를 떨고 있던 거죠..
(전 이 남자가 절 만나면서 1km따위는 이제 하지 않는 줄 알았어요.
제가 그랬으니까요.)
어! 근데 말을 하고보니 촉이 안 좋은거에요..
전 빨리 다시 어플을 깔고 그 남자를 찾아봤습니다.
당연히 없
기는 개뿔.
마지막 접속시간은 6시간 전.
그의 프로필은 [여친구함][외롭다]
조금 절망했어요. 아니 많이 절망했나봐요.
전 주사위를 던지기로 결심했습니다.
절친에게 그 남자한테 말을 걸으라고 시켰어요.
아. 이 남자..
제 친구한테 미인이시라며 대답이 청산유수.
전 동시에 그에게 카톡을 보내보았어요.
근데 저에게는 답이 없네요... ㅠㅠ
그때부터 제 친구는 제 아바타가 되어 저의 뜻에 따라 그와 성실히 채팅을 합니다.
그 남자 프로필 사진들 중에 커피사진이 있었어요.
근데 이 남자. 저한텐 커피를 안먹는다고 했거든요.
제가 전에 “난 커피 못마시는데...” 라고 하니까,
“어? 나도나도!! 우리 진짜 잘 통한다!!!” 했었거든요..
친구한테 커피좋아하느냐고 물어보라고 시켰어요.
답이 왔어요.
커피를 좋아한다고.
“같이 커피한잔 어떠심까??”이라는 작업 멘트와 함께ㅋㅋㅋㅋ
저의 멘탈은 붕괴에 이르렀습니다.
이제서야 왜 제 성을 자꾸 헷갈리고,
똑같은 질문을 계속하는지 의문이 풀리더라구요..
친구가 손가락이 아플 것같아,
이 속고 속이는 이 게임을 그만두기 위해 마지막 질문을 친구에게 시켜보았습니다.
제 친구 : 전 이런 거 첨해보는거라 잘 모르는데... 자주 해보셨어요? 이렇게 대화하다가 진짜로 계속 연락하고 직접 만나기도 하고 그래요??
그 남자 : 전 안만나봤어요. ^^ 하지만 님처럼 좋은 분이라면 꼭 한번만나고 싶네요.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