쟈.. 다시 저의 스물두살 때로 돌아가봅시당.
저는 외국어를 전공하고 있었어요.
대학 3학년이 되자 대부분의 남자사람들은 군대에 갔고,
여자친구들은 어학연수를 가버려 친한 친구들은 다 휴학..
심심해진 저는 3학년이 되어서야 처음 도서관이란 곳엘 기웃거려봤습니다.
사건이 벌어진 그 날은 금요일이었고,
저는 흰 가디건에 검정 잔주름 치마에
남색 이스트팩 가방을 짊어지고, (참, 뭔 놈의 패션이...ㅋ)
그날도 전 도서관에 있었어요.
심심해서 위에 말했던 선생님에게 문자를 보냅니다.
(그 땐 선생님을 선생님으로 좋아하는 순수한 학생의 맘으로 안부문자를 보낸거였어요.)
며칠 전 있었던 학원 동문 모임에서 선생님얘기도 나오고해서 생각이 났던 거죠.
암튼 그렇게 문자를 하나 보냈는데, 선생님이 바로 저에게 전화를 한 겁니다.
불금에 라이브러리 웬말이냐 며.
선생님이 맛난것 사줄테니 나오라 며.
오 예!! 눈누난나 나갔습니다.
제가 학원 다닐때만 해도 작은 동네학원 슨상님이었지만,
그 땐 쫌 성공한 학원사업가가 되어 계시니,
‘슨상님이 쫌 맛난 거 사주시겠지~’ 하면서요...
역시나 맛난 거 사주십디다.
회!
아, 근데 광어랑 우럭이랑 그른 것이 아니고!!!
접시 문양이 비치는 복어회부터, 꽃게회까지..
생전 첨 먹어본 회였어요...;;
둘이 먹으며 이런저런 얘기하며 화기애애하게 잘 먹고 있었습니다.
신분과 나이차를 떠나 남자가 여자에게 돈을 거저 쓸리 없다는 걸
그 땐 너무 어려 몰랐던 거죠.
제가 술을 한 잔만 마셔도 몸전체가 빨개져서 잘 안 마시는데 자꾸 권하는 거예요.
그래서 버티다버티다 매취순 딱 한 잔을 받아마셨어요.
저는 신입생때도 술먹이려는 선배한테 버럭 화냈던 무서운 아이라
역시나 선생님한테도 술 먹인다고 열라 신경질내면서 딱 한잔에서 끊었죠.
이건 지금 생각해도 증말 잘 한 거 같아요.
주는대로 마셨으면 어찌됐으까요?
슨상님은 저녁을 잡숫다 말고, 야릇한 이야기를 하십니다.
학생이 모두 예쁘지만 특히 눈길이 가는 학생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너다.
요즘 알다시피 나는 돈도 좀 잘 벌고 있고,
네가 너무 예뻐서 용돈도 주고 싶지만 그건 좀 오바같아서 맛난 걸 사주는 거다.
(뇌 청순한 스물두살의 저는 속으로 생각합니다.
‘용돈 줘도 되는데... ㅋㅋㅋ’
정말 뭘 몰라도 너무 몰랐던 거죠.)
아, 참. 너 가라오케는 가봤니?”
가라오케는 물론 가본 적 없습니다.
어떤 곳인지 당연히 모릅니다.
걍 좀 좋은 술파는 노래방 정도로 생각하고 냉큼 가보고 싶다고 대답했어요..
지금 와 생각해보면,
저... 학생 때 노래방 가자고 애들 선동했던 학생이라
선생님이 저 노래방 좋아하는 거 알고 미끼를 던진 것으로 추정됩니다.
노래방은 너무 저렴하니 가라오케란 곳으로 꼬시는 거였죠.
자리를 옮기기로 하는데 선생님이 양복에서 두툼한 봉투를 꺼내더니
주방장과 서빙한 아줌마에게 만원짜리 뭉탱이를 팁으로 주고,
또 그 봉투의 돈으로 밥값계산도 합니다.
절대 신용카드 안씁니다.
카드쓰면 사모님한테 걸릴까봐 라는 몹시 초보적 상식을 스물두살 꼬꼬마는 알지 못합니다.
가라오케로 갑니다.
내려가는 계단부터 기분이 살짝 이상? 신기? 합니다.
그러나 호기심을 참지 못하고 따라 들어갔습니다.
방으로 들어가니 뭔가 꽃도 있고 촛불도 있고 그럽니다.
담당 웨이터가 마이크를 세팅하고 디제이를 불러줍니다.
보이쉬한 여자 디제이가 들어와 노래를 하는데..
우와... 정말 잘하네요!!
자기가 옛날에 가수였답니다.
오홋!!!! 그러고보니 기억이 납니다.
"기쁨도 같이 해야 해~ 슬픔도 같이 해야해~
매일밤 내게 전화해 잘자라 속삭여야 해. 내 사랑아 상처주지마~
그런 너를 만났고~ 사랑하게 되었고~"
뭐 요 비슷한 가사의 노래였어요.
(혹시.. 아시는 분? ;; 제목이 생각이 안나요...;;;)
노래한곡을 뽑고나서,
저희 더러 무슨 사이냐 묻길래, 사제지간이라고 했습니다.
디제이가 떨떠름하게 연인사인줄 알았다길래
전 펄쩍 뛰었습니다. 절대 아니라고. ㅋ
선생님은 이번에도 역시 현금으로 만원짜리를 대강 웅쿰 쥐어
팁으로 주고 디제이를 내보냅니다.
저더러 노래하랍니다.
저는 열창했어요..;;;;
그런데 그 사이 양주를 시켰네요.
또 지겹게 술을 권하길래,
성질부리면 한잔으로 딱 끊었습니다.
선생님은 혼자 홀짝홀짝 잘도 마시네요.
그러더니 자꾸 제 옆으로 오고, 어깨동무 하려고 하고 그럽니다.
그전엔 이상한 "기분”이라 긴가민가 했다면,
이젠 본격 징그러워서 저는 슬금슬금 엉덩이를 슨상님 반대쪽으로 밀어 이동했어요...
그러는 새 시간이 훌쩍 12시를 향해가고 있습니다.
집에서 전화오고 난립니다.
저는 결혼전까지 통금 10시였어요..
회사 다닐 때는 못 지킬 때도 많았지만
대학생때만 해도 칼같이 지키는 착한 딸래미였습니다.
사실 그때 전 택시비도 카드도 없어서
선생님이 데려다주지 않으면 집에 못 갈 것만 같아서
이제다 가려나, 저제나 가려나 하고 있었거든요.
스물두살적엔 딱 점심값이랑 지하철 정기권만 들고 다녔거든요.
선생님한테 이제 좀 가자고 해봐도,
딱 한 잔만 딱 한잔만 더를 외치며 자꾸 안가려고 하면서
또 저에게 가까이 다가옵니다.
아 놔 그제서야,
‘아... 선생님도 남자인거임??? @.@’
를 깨닫게 되는 무지몽매했던 저였습니다.
이제 맘이 급해집니다.
선생님이 엉겨붙건말건 가방을 둘러메고 걍 무작정 나옵니다.
그러니 따라 나오며 모범택시로 데려다주겠답니다.
지금 같아선 그냥 택시타고 집에 가서 엄마한테 돈들고 나와달라고 했겠지만,
그 땐 엄마한테 욕먹는 것도 싫었고,
그 돈도 아까운 것같아서 알겠다고 했어요.
다행히 택시 잡아타고 집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뒷자리에서 또 자꾸 제 옆으로 밀착해와,
저는 택시 문에 딱 달라붙어서 집까지 갑니다.
집에 도착하니 새벽 1시네요.
암튼... 제가 술을 안 마신 게 넘 다행입니다.
제가 주는 술 받아먹고 정신줄 놨으면 이 넘은 제게 어떤 짓을 했을까요.
그 뒤로 이 일을 누구한테 얘기하는 것도 짜증나서
아무에게 말도 못하고...
그 담 모임에서 그 인간을 똑바로 쳐다보며,
“안녕하세요?” 인사했더니 제 눈을 피합디다.
훗. 뭐 찔리는 거 있으셈?
그리고 시간은 훌쩍지나,
서른을 앞둔 크리스마스 때, 그 동문회의 동기들과 모였습니다.
전부 여자들만 모였습니다.
그날의 멤버 중에 그 동문회 안에서 남자를 사귀지 않은 사람은 저밖에 없었어요.
그러다, 이젠 오래된 얘기이기도 하고,
위의 사건을 친구들에게 얘기해줬습니다.
애들이 그럽니다.
네가 짱먹어라!!! ㅋㅋㅋㅋㅋㅋ
초울트라캡숑 스캔들은 너에게 있었구나!!!!
좀 특이하면서도 재밌는 기억으로 남아있던 동문회였는데...
지금 알고 있는 걸 그 때도 알았더라면
저 인간을 잘 혼내줄 수 있는데...
에라이.. 키팅은 얼어죽을..
이 변변치 않은 유부남같으니라고. ㅎㅎㅎㅎ
쓰고보니 저의 뇌도 한때는 참말 청순했네요. ㅋㅋ
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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