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국의 정취를 느끼며 바다 위의 제주 한라산을 한눈에 바라볼 수 있는 곳, 시인이 아니라도 시인이 될 수 있는 낭만의 섬, 자라나는 자녀들에게는 국토사랑을 심어줄 수 있는 대한민국 최남단의 작은 섬, 더 이상 가고 싶어도 갈 수 없는 한반도의 땅 끝. 그곳에는 마라도(馬羅島)가 있다. 마라도를 옛날에는 금(禁)섬이라 불렀다.
누구든 외지인이 이 섬을 다녀가면 흉년이 든다고 해서 출입을 금지했는데, 사람들은 해산물 채취를 위해 몰래 이 섬을 다녀가곤 했다. 마라도에 처음 사람이 정착하게 된 것은 1873년 모슬포항이 있는 대정읍에서 3세대가 이주해오면서부터다. 정착 초기에는 식량이 부족하여 미역, 톳 등의 해산물로 연명하다가 농사를 짓기 위해 울창한 숲에 불을 놓았다.
그 탓에 이 섬은 초원으로 변했고, 뱀과 개구리가 살지 않는다고 한다. 마라도는 작지만 섬 전체가 볼거리다. 면적은 10만평쯤이며 제일 높은 곳이 해발 34미터밖에 되지 않는다. 배에서 보면 바닷가 벼랑에 뚫려 있는 커다란 해식동굴만 눈에 들어올 뿐, 다가서면 비로소 섬을 덮고 있는 푸르고 푸른 잔디밭이 비단결 같이 고운 빛깔로 끝없이 일어서는데, 그때 가슴에서 불붙는 시심(詩心)은 어쩔 수 없다.
가파도 마라도 이야기
6월 9일. 모슬포항의 방파제를 뒤로 심한 파도를 가르며 뱃머리가 남으로 남으로 향한다. 날씨가 흐린 탓에 96명 정원의 삼영호에는 우리 일행 외에 서너 명의 마을 주민과 신혼여행객으로 보이는 두 쌍의 남녀가 고작이다. 새벽 일기예보에서는 바람을 동반한 비를 예상했지만 출발 때는 바람만 불어올 뿐이다.
맑은 날 모슬포에서 보면 마라도는 한눈에 들어오지만 나지막이 내려앉은 구름 탓에 어렴풋이 보일 뿐이다. 배는 파도의 깊이만큼 뱃멀미를 안겨 주더니 어느덧 하선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흘러나온다. 마라도 서쪽의 ‘자릿덕’ 선착장에는 모슬포로 돌아가려는 관광객과 민박 손님을 맞으려는 주민들이 분주하게 서성이고 있다.
이미 전에 마라도에 들른 적 있는 서준영 기자가 먼저 내리더니 어서 따라오라고 손짓한다. 선착장 계단을 오르자 너른 초원이 보이고 그 뒤로 마을이 옹기종기 모여있다. 우리는 마을 팔각정에 짐을 부리고 야영할만한 마땅한 장소를 찾아 나섰다.
서기자가 처음에는 전망이 좋은 서벽 위에 자리를 잡았으나 바람이 세게 불면 텐트가 날아갈 위험이 있어, 근처 울타리 없는 별장민박집 주인 김도형씨에게 양해를 구하고 집 앞 잔디밭에 텐트를 쳤다. 아침부터 배를 타기 위해 부산을 피우고 다닌 데다가 파도에 시달렸는데도 다들 처음 하는 해벽등반의 설렘 때문인지 피곤한 기색이 없다. 날은 점점 흐려오고 바람은 거세지며 푸른 파도 너머의 제주는 시꺼먼 구름 속에 모습을 감췄다.
민박집 주인이 “지금 육지에는 많은 비가 내린다”며 걱정 어린 눈길을 보낸다. ‘육지’. 나라 땅 제일 남단의 마라도에서는 ‘제주도’라는 ‘섬’도 육지로 불리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은 허기진 배를 채운 뒤, 사전 정찰을 나섰다. 만족할 만한 성과는 얻지 못했지만 주민들 인심은 섬의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좋았다. 제주도에서는 우스갯소리로 “가파도(갚아도) 좋고 마라도(말아도) 되는”이란 말을 한다. 세찬 바람과 억센 파도와 싸우며 서로 보듬고 살아가는 도타운 인정을 나타내는 말이다.
“왜 사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날씨가 마음에 걸렸지만 짜여진 일정 관계로 더 이상 시간을 늦출 수가 없었다. 발길은 자연스럽게 섬의 남쪽 끝으로 향한다. 거기에는 최남단을 알리는 비(碑)가 한반도의 땅 끝임을 알리고 있다.
‘최남단 비’ 주변에는 임시휴게소가 몇 군데 있다. 몇 년 전만해도 없던 것들이라고 서기자가 말한다. 거기에 살면서 기념품을 팔아 생계를 잇는 주민이 “뭐하러 왔느냐”는 질문에 “암벽등반을 하러 왔다”고 하자 “왜 사서 쓸데없는 짓을 하지? 괜한 짓 하다가는 일내지” 하며 혀를 끌끌 찬다.
마라도에서 등반 가능한 대상지는 동북쪽의 ‘살레덕’ 선착장에서 남쪽 해안선을 따라 ‘장시덕’까지 이어진, 길이 800여미터, 높이 25~40미터의 수직벽, 그리고 해식동굴과 해저동굴이 있는 서벽. 그러나 여느 바닷가의 해벽이 그러하듯 파도가 심하면 접근이 수월치 않고 물때도 잘 맞추어야 한다. 일행은 먼저 마라도 등대께의 동벽으로 향한다. 원래 살레덕 선착장 계단을 통해 걸어서 내려가면 되지만 파도가 계단까지 들이쳐 밑부분 3미터를 잃은 터였다.
사다리나 보조줄을 준비해서 내려가야한다. 일행은 등대 바로 옆으로 하강하기로 한다. 때마침 등대 주변에는 주민들이 해산물을 채취할 때 쓰는 확보용 콘크리트가 20∼30미터 정도의 간격으로 설치되어 있다. 어느덧 시간은 오후 5시. 날씨는 종일 변덕스럽더니 빗방울까지 내린다. 기자는 하강을 위해 자일을 바위 밑으로 힘차게 던진다. 몰아치는 바람에 자일은 허공에 잠시 멈추다가 떨어진다.
기자가 먼저 30미터 하강한다. 하지만 바람과 파돗소리 때문에 위에 있는 일행과 의사 소통이 어렵다. 어쩔 수 없이 주마링으로 다시 올라와 등반계획을 세우고 서기자부터 조심스럽게 내려간다. 동벽은 바위상태가 불안정해 낙석이 발생할 수 있으며 바위가 날카로우니 자일 꺾이는 부분을 주의해야 한다. 조심조심 하강한 서기자는 부딪치는 파도와 불어오는 바람에 몸을 맡기며 환호성을 지른다.
마라도 동쪽 수직 해벽은 제주도 젊은 산꾼들이 가끔 찾는 곳이지만 바위벽에 확실한 확보물을 설치하기가 힘들다. 따라서 동벽을 등반하려면 코스를 개척한다는 자세로 필요한 장비를 고루 지니고 임해야 한다. 마라도 해벽은 바위 틈새가 많아 너트와 프렌드가 주로 쓰인다. 오랜만에 선등을 하는 기자. 조금은 부담이 되었지만 “이것이 등반의 묘미 아닌가” 하며 첫번째 홀드를 잡았다.
주로 확실한 스탠스와 홀드를 잡고 오르는데 손에 땀이 나는 이유는…. 설치한 확보물을 이리저리 흔들어 확인해가며 애써 오르는데, 사진을 찍어야만 되는 서기자는 기자의 마음을 아는지 모르는지 ‘이렇게 해봐라, 저렇게 해봐라’ 주문한다. “완료!”라 소리치지만 밑에서는 아무 소리 없다. 확보를 하고 줄을 당긴다. 첫날 등반을 마칠 때쯤 등대불은 저 멀리 외로운 밤바다를 비춘다. 이튿날 아침. 새벽부터 동네 개들이 취재진 텐트 앞에 모여 아침회의를 하는지 한바탕 소란을 피우고는 사라진다. 덕분에 새벽잠을 설쳐 다들 피곤해 보인다. 날씨는 어제보다는 좋았지만 육지 쪽의 비구름이 언제 몰려올지 불안하다.
물보라를 일으키며 부서지는 파도
일행은 아침을 해결하고 어제 처음 정찰한 팔각정 서쪽에 있는 서벽으로 이동한다. 서벽에는 자일을 확보할 만한 마땅한 확보지점이 없어 비교적 각이 많이 진 현무암 돌출부에 슬링을 돌려 확보지점을 만든다. 코스는 해식동굴이 있는 ‘남대문’ 부근의 40도에서 95도 경사의 벽을 선택했는데 동벽과는 달리 바위상태가 좋다.
일행이 하강할 때쯤, 동네 청년 두 명이 다가와 바위 턱에 걸쳐져있던 밧줄을 던진다. 우리가 하강하려는 곳으로 슬리퍼를 신고 성큼성큼 내려가는 게 아닌가. 그러더니 통발을 건져서는 잡힌 고기를 손아귀에 움켜잡고는 올라와 뒷모습을 보이며 사라진다. 해수면 가장 인접한 곳으로 내려갈수록 바위에 부서지는 파도는 물보라를 일으키며 우리를 환영한다.
중간에 짧은 오버행이 있지만 비교적 쉬운 남대문 해식동굴의 좌벽을 오른다. 계속 파도가 들이치는 출발지점은 한 평쯤 되는 테라스다. 동벽과는 달리 발디딤과 손에 걸리는 틈새가 확실하다. 짧은 오버행을 후킹 동작으로 넘어가자 다소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벽이다. 이곳부터는 자신의 역량에 맞는 등반선을 그으며 오르면 된다. 등반을 마친 일행은 변덕스러운 날씨와 짧은 일정 속에 정신없이 다닌 탓에 다들 무엇인가 아쉬움이 남는 듯한 눈빛이다. 막배를 놓치지 않으려면 바쁘게 움직여야한다. 이제 왔던 길을 다시 돌아가는 일만 남았다. 가면 오고, 오면 가는 일상으로…. <글·박요한 기자 사진·서준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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