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들과 약속은 온데간데 없었다. 슈퍼 스타 크리스티아누 호날두(34, 유벤투스)와 유벤투스가 K리그 팬들을 기만했다. 호날두의 12년 만의 방한으로 시작부터 큰 관심을 모았던 유벤투스와 ‘하나원큐 팀 K리그’의 친선전이 주객전도의 장이 됐다. 예정보다 1시간 늦은 킥오프로 빈축을 샀다. 당초 유벤투스와 팀 K리그는 26일 오후 8시 서울월드컵경기장서 친선전을 할 예정이었지만 오후 9시가 다 돼서야 킥오프했다. 팀 K리그는 오스마르(서울), 세징야(대구), 타가트(수원)의 골을 앞세워 유벤투스와 3-3으로 비기며 자존심을 지킨 게 유일한 위안거리였다. 이날 오전부터 서울, 인천 일부 지역에 호우주의보가 내리는 등 궂은 날씨가 발목을 잡았다. 당초 호날두는 오후 3시 용산구의 그랜드하얏트 호텔서 동료들과 함께 팬미팅 및 사인회를 개최할 예정이었다. 태풍의 영향으로 중국에서 한국으로 향하는 비행기가 2시간 정도 연착되면서 일정이 꼬였다. 팬들은 오매불망 호날두를 기다렸지만 끝내 사인을 받지는 못했다. 호날두는 컨디션 저하를 이유로 사인회에 불참했다. 호날두를 대신해 잔루이지 부폰, 마티아스 데리흐트 등 5~6명의 선수들이 사인회장에 섰다. 주최 측은 추후 호날두의 사인을 보내주겠다고 약속했지만 200여 명 팬들의 아쉬움을 달래지는 못했다. © 제공: Osen 더 큰 문제는 경기 시작 지연이었다. 통상 킥오프 1시간 전부터 몸을 푼다. 유벤투스 선수단은 서울 시내의 교통체증에 발목을 잡혔다. 오후 8시 32분이 돼서야 웜업을 시작했다. 이 때문에 경기는 8시 57분이 돼서야 시작됐다. 날씨와 교통체증 탓만은 아니다. 초유의 사태는 어느 정도 예견된 일이었다. 주최 측의 무리한 일정이 문제였다. 경기 당일 입국해 다른 장소에서 팬미팅 및 사인회를 한 뒤 서울 시내의 교통체증을 뚫고 제 시간에 경기장에 가는 건 애초에 불가능에 가까웠다. 팬미팅 및 사인회를 전격 취소해서라도 다른 방법을 강구했더라면 경기가 지연되는 촌극이 벌어지진 않았을 것이다. 호날두의 사인회를 기다린 팬은 200여 명이었지만 경기장에선 6만 5천여 명의 팬들과 팀 K리그 선수들이 목빠지게 킥오프를 기다렸다. 상상을 초월한 티켓 가격도 도마에 올랐다. 최저가인 3등석-휠체어석은 3만 원, 2등석 10만 원, 최고가인 프리미엄 S석은 40만 원이었다. 뷔페, 음료 및 주류, 주차권 6매가 제공되는 스카이박스 29인실은 무려 1700만 원에 달했다. 주최 측은 호날두 등 슈퍼 스타들의 티켓 파워를 고려해 책정했다고 설명했지만 팬들은 티켓 가격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지 못했다. 팬들과 약속을 어긴 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앞서 주최 측은 호날두가 45분 이상 출전한다고 약속했지만 지켜지지 않았다. 사인회까지 불참한 호날두는 기대와는 달리 벤치에서 시작했다. 호날두의 모습이 스크린에 비칠 때마다 팬들의 열렬한 환호가 이어졌다. 약속대로라면 최소 후반 시작과 동시에 그라운드를 밟았어야 했지만 끝까지 벤치를 지켰다. 호날두 유니폼을 입고 경기 시작 몇 시간 전부터 슈퍼 스타를 기다린 팬들을 기만한 행동이었다. 호날두가 좀처럼 나오지 않자 팬들의 환호는 후반 10분 야유로 바뀌었다. 세계적인 스타가 뛰는 모습을 상상해온 팬들은 후반 중반부터 호날두의 이름을 연호했지만 끝내 외면 당했다. 팬들은 후반 44분이 되어도 호날두가 나오지 않자 그의 라이벌인 리오넬 메시(바르셀로나)의 이름을 외치며 항변했다. © 제공: Osen 팬들뿐 아니라 애꿎은 K리그 스타들도 피해를 봤다. 유벤투스 선수단보다 한참 전에 경기장에 도착한 K리그 별들은 8시 28분이 돼서야 그라운드를 밟았다. 친선전 개념이었지만 K리그 올스타전 성격이 짙은 경기였다. K리그 팬들과 약속을 어긴 호날두와 유벤투스는 거센 비난을 면치 못하게 됐다. 한 여름 밤의 꿈 같은 축제는 '그들'만의 거짓말 잔치로 끝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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