승객 300여명을 태운 고속철도(KTX) 기관사가 운전실 에어컨 고장으로 40도 가까운 고온에 노출된 채 열차를 운전하다 심신 이상을 호소하며 병원에 실려 가는 사건이 발생한 사실이 뒤늦게 확인됐다. 케이티엑스는 열차운행을 담당하는 기관사가 1명밖에 탑승하지 않기 때문에 자칫 대형 안전사고가 발생할 뻔했다.
12일 전국철도노조(철도노조)의 설명을 종합하면, 지난 3일 저녁 7시20분께 포항역을 출발해 9시54분 서울역에 도착할 예정이었던 케이티엑스 산천 472호의 기장 이아무개(51)씨가 중간 정착역인 대전역에서 119 구급대에 의해 병원에 이송되는 사건이 발생했다. 연일 폭염이 이어지는 가운데 운전실의 에어컨이 고장 난 상태로 열차에 올랐던 이씨는 열차가 출발한 지 1시간여가 지난 이날 저녁 8시35분께 경부고속선 경북 김천 아이이시(IEC·운행선 변경점)~충북 영동 아이이시 구간에서 얼굴과 손발의 마비증상을 대전 종합 관제운영실의 기술지원 팀장에게 알렸다. 이후 코레일은 열차팀장을 운전실로 이동하도록 해 기장과 동승한 가운데 서행을 하게 했다. 이 때문에 열차는 예정보다 9분 늦은 저녁 8시50분께 대전역에 도착해 3분간 정차했다. 이후 대전역~서울역 구간은 업무를 마친 뒤 귀가 중이던 서울고속철도기관차승무사업소 소속 기관사를 대체 투입해 운행했다. 이씨는 퇴원 뒤 현재 병가를 낸 상태다. 문제는 이씨가 운행한 열차가 사고 1~2일 전에도 운전실 에어컨 이상이 보고됐었다는 점이다. 김한수 철도노조 운전조사국장은 <한겨레>와 한 통화에서 “사고 1~2일 전 호남선 운행 중 운전실의 냉방이 안 된다고 통보된 차인데, ‘예비 차량이 없다’며 정비하지 않은 상태로 다시 포항으로 내려보낸 것”이라며 “열차 노후화로 운전실 에어컨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시속 120~130㎞로 달리는 무궁화·새마을호의 경우 창문이라도 열 수 있지만, 300㎞로 운행하는 케이티엑스는 창문 개방이 어렵다”고 말했다. 이에 철도노조는 지난 7일 조합원들에게 여름철 폭염에 운전실 냉방이 안 되는 기관차의 운행 거부를 내용으로 하는 ‘운전국 투쟁지침 1호’를 발령했다.
그러나 실제 열차를 운행하는 기관사들이 운전실 에어컨에 이상이 있는 열차의 운행을 거부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출발 전 냉방장치 이상을 확인하더라도 기관사의 거부로 열차운행이 지연되거나 취소되면 그에 따른 책임이 기관사의 몫으로 돌아갈 가능성이 크기 때문이다. 게다가 임시열차 등이 증편되는 여름 휴가철 성수기에는 예비 차량 부족으로 에어컨 고장 등을 정비할 최소 시간이 제대로 확보되지 않아 이 같은 문제가 반복되고 있다고 철도노조는 설명했다.
이에 대해 코레일 쪽은 “포항에서 열차가 출발할 당시 기관사에게 얼음 조끼와 선풍기를 지급했다”며 ”이번 사고와 관련해 5일 대책회의를 열어 신속한 차량 교체를 위한 예비 차량 확보를 장기적으로 계획 중”이라고 해명했다. 코레일은 이어 “서울역·부산역 등 주요 역에 냉풍기 16대를 배치해 냉방장치에 이상이 있는 차량에 얼음 조끼 등과 함께 지급하기로 했다”며 “또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해 운전실에 기장과 함께 동승할 ‘승무지도 지원’을 계획 중”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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