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반정도가 뭐에요, 3분의 2 이상은 줄어든 것 같아요. 요새 한국 관광객 얼굴 보기 힘들어요."
13일 낮 한국인들에게 인기 관광지인 일본 온천도시 유후인(湯布院)에서 만난 한 상인은 기자에게 이렇게 말하며 한숨을 내쉬었다.
"지난달 초부터 갑자기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더니 이런 상태"라며 한적한 거리를 가리키던 그는 "이대로 가다가는 큰일"이라면서 기자에게 앞으로도 계속 한국인 관광객이 안 올 것 같냐고 물었다. | 지난 13일 일본 오이타현 온천마을 벳푸(別府)의 '바다 지옥 순례(地獄巡禮)' 관광지. 평소 같으면 한국인으로 넘쳐났을 이곳에서 한국인 관광객은 드물었다. [연합뉴스 자료사진] |
규슈(九州) 오이타(大分)현의 작은 산골 마을인 유후인에서 한국인 관광객의 존재는 이 지역 경제를 떠받치는 든든한 버팀목이었다.
간판이나 음식점의 메뉴판에는 일본어나 영어보다 한국어가 더 먼저 적혀 있을 정도다.
마을 사람들이 큰돈을 들여 만들어 놓은 역 앞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도 한국인의 모습은 찾아보기 힘들었다.
| 지난 13일 한국인 관광객의 발길이 끊기며 한산해진 온천마을 유후인(湯布院) 거리 [연합뉴스 자료사진] |
센터 내에 쌓여있는 마을 안내 지도는 일본어와 한국어, 영어 등 3개 언어판이 배치돼 있었는데, 한국어 버전만 유독 수북이 쌓여 한국인의 발길이 뜸해진 상황을 엿볼 수 있었다.
이날 기자가 머무른 3시간 동안 유후인에서 목격한 한국인 관광객은 3팀뿐으로, 한국 관광객 사이에서 소문이 난 우동집에서였다.
한국인 관광객들의 필수 코스로 알려지면서 평소 30~40분은 줄을 서야 입장이 가능했다는 이 우동집은 점심시간인데도 빈자리가 듬성듬성 눈에 띌 정도였다.
다른 음식점 주인은 "솔직히 피해가 크다. 한국 여행사와 연계해 한국인 관광객을 적극적으로 유치하던 료칸(旅館·일본식 전통 숙박시설)은 대단히 힘든 상황이다"고 말했다.
상황은 같은 오이타현 내의 또 다른 온천마을인 벳푸(別府)도 마찬가지였다.
13일 오전 평소 같으면 한국인으로 넘쳐났을 벳푸의 '바다 지옥 순례(地獄巡禮)' 관광지에도 한국인은 드물었다.
이곳은 땅속에서 뿜어져 나오는 온천수와 진흙, 증기를 둘러보는 코스인데, 기자가 둘러본 1시간 동안 목격한 한국인 관광객은 10명이 채 안 됐다.
| 지난 13일 일본 온천관광지 유후인(湯布院)의 한산한 거리 모습. 라면 식당의 간판에 한글로 '라면'이라고 표기돼 있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평소에는 주차장에 한국인 관광객을 태운 관광버스가 20대 정도 있었다지만, 이날 주차장에 보인 관광버스는 중국인 관광객을 실어나른 1대 뿐이었다.
좌판에서 먹거리를 판매하던 남성은 "한국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확실히 보통 때보다 사람이 없다. 그래도 여긴 그나마 한국인 관광객들이 어느 정도 있긴 하지만, 다른 관광지에는 한국인이 절반 이하로 줄었다고 하더라"고 말했다.
벳푸시 관광협회에 따르면 작년 이곳을 찾은 외국인 관광객은 모두 59만7천명으로 이 중 55.3%인 33만명이 한국인이었다.
규슈는 한국과 가까운 지리적 특성 때문에 외국인 관광객 중 한국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특히 큰 곳이다. 작년 중국인 관광객은 5만명으로 한국 관광객의 6분의 1 이하였다.
일본 국토교통성에 따르면 지난 5월 규슈를 찾은 외국인 관광객 37만명 중 한국인은 49.5%인 18만3천명이나 됐다. 이 지역의 한국인 관광객 수는 그다음인 중국인 관광객의 수(8만2천명)보다 두배 이상이나 많았다.
기자가 둘러본 오이타현은 관광업이 특히 발달한 곳으로, 한국인 관광객에 대한 의존도가 높은 곳이다.
지난달 말 아사히신문이 조사한 결과 오이타현 소재 호텔과 전통 료칸(旅館) 3곳에서만 무려 1천100명분의 예약 취소가 발생하기도 했다.
| 지난 12일 한국인 관광객들의 인기 관광 코스인 다이마루 백화점 후쿠오카 덴진(天神) 지점의 모습. 한국인 관광객을 위해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입간판만 눈에 띌 뿐 정작 한국인 관광객의 모습은 좀처럼 보이지 않았다.[연합뉴스 자료사진] |
한국 공항과 오이타 공항을 연결하는 항공편은 한국의 저비용항공사(LCC) 티웨이 항공의 3개 항공 노선이 전부였는데, 모두 취소가 됐다.
기자가 벳푸와 유후인에 가기 전 들른 인근 후쿠오카(福岡)현도 상황은 마찬가지였다.
후쿠오카는 규슈 관광의 관문이다. 후쿠오카시는 도쿄(東京), 오사카(大阪), 나고야(名古屋)와 함께 일본 4대 도시 중 하나이기도 하다.
기자가 12일 낮 방문한 후쿠오카 공항 국제선 청사는 한국인 관광객이 줄어들면서 전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한산한 모습이다.
공항 내 버스 티켓 판매소 직원은 "한국 관광객이 많았을 때는 관광객들에게 꼭 미리 버스 티켓을 끊어야 한다고 당부했지만, 지금은 미리 티켓을 구매할 필요가 없을 정도로 버스가 한산하다"고 말했다.
같은 날 오후 찾아간 한국인 관광객들의 인기 관광 코스인 다이마루 백화점 후쿠오카 덴진(天神) 지점에는 기자가 보기에 민망할 정도로 썰렁했다.
이 백화점은 지난달 17~23일 한국인 쇼핑액이 전년 동기 대비 25% 급감한 곳이다.
지난달 중순 한국인 관광객의 편의를 위해 카카오페이로 결제하는 새로운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이를 알리는 입간판만 곳곳에 서있을 뿐 정작 한국인 관광객은 자취를 감췄다.
벳푸의 한 관광업계 관계자는 "새로운 예약이 줄어들고 있는 상황인 만큼 앞으로가 더 걱정"이라며 "한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찾는 곳은 지금 같은 상황이 계속되면 휘청이는 곳이 나올 수밖에 없다"고 걱정했다.
| 지난 12일 일본 온천관광지 벳푸(別府)의 역 앞 번화가 지하도 입구에 한글로 '지하도'라고 써진 모습. [연합뉴스 자료사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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