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모(私募)펀드(fund). 말 그대로 사적으로 모인 펀드라는 뜻이다. 돈만 있으면 누구나 가입할 수 있는 공모(公募)펀드와 달리 사모펀드는 아무나 가입할 수 없다. 주로 소개·추천 등 인맥을 타고 모인 소수의 개인 또는 기관투자자가 최소 1억원에서 많게는 수천억원까지 투자한다. 또한 공모펀드와 달리 공시 의무도 없고 투자 제한도 없다. 펀드 가입 규모도 보통 10~20명 정도라서 누가 어디에 얼마나 투자해서 얼마나 벌어들였는지 소문이 새 나가는 일도 드물다. 사모펀드를 '진짜 부자들의 재테크'라 부르는 이유다.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국내 사모펀드 시장은 작년 말 331조원(순자산 총액 기준)으로 공모펀드(214조원)를 압도하고 있다. | <이미지를 클릭하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
최근 조국(54) 법무부 장관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 재직 시절 가족 명의로 코링크프라이빗에쿼티(코링크)라는 회사가 운용하는 사모펀드에 10억5000만원을 투자한 사실이 드러났다. 고위 공직자 중 사모펀드에 거액을 투자한 게 드러난 사례는 이번이 처음인 탓에 베일에 싸인 사모펀드 업계까지 덩달아 관심을 받고 있다. 업계 10위권 규모의 한 사모펀드 회사에서 일하는 펀드매니저 이모(39)씨는 "이 업계는 세상의 관심을 받아서 좋을 게 없는데 조국 후보 때문에 만나는 사람마다 사모펀드가 뭐냐고 물어보는 통에 부담스럽다"고 말했다.
티끌만큼 모여 태산을 굴린다
"사모펀드는 한마디로 (사람들이) 티끌만큼 모여 태산을 굴리는 거라고 보면 됩니다."
펀드매니저 이씨의 말이다. 증권투자회사법에서는 49인 이하 투자자에게 자금을 모아 투자하는 펀드를 사모펀드라고 규정하고 있다. 극단적으로 1명이 수백억을 투자해서 굴러가는 사모펀드도 여럿 있다. 법적 가입 기준이 별도로 있진 않지만 업계에선 최소 1억원부터 투자금을 받는다. 펀드 전체의 투자금 규모가 40억~50억원 정도면 가장 작은 축에 속하고 업계 톱클래스는 수조원을 굴린다. 국내 1위 사모펀드 회사인 MBK파트너스는 투자금만 9조8900억원(작년 기준)에 달한다.
사모펀드는 투자 형식에 따라 전문 투자형과 경영 참여형으로 나뉜다. 전문 투자형은 주식·채권·부동산 등 자산에 투자해 수익을 올리고, 경영 참여형은 저평가된 기업을 인수해 가치를 불린 뒤 되파는 방식으로 돈을 번다. 국내에서 소위 '대박'을 친 사모펀드 투자 사례로 자주 꼽히는 게 외국계 사모펀드 회사 KKR과 어피너티가 OB맥주를 2조1000억원에 인수한 뒤 6조8000억원에 팔아 4조7000억원을 남긴 것이다. 물론 이런 대박 사례는 흔하지 않다. 컨설팅 회사 맥킨지에 따르면 지난 12년간 국내 사모펀드의 연평균 수익률은 25%가량. 연평균 수익률이 40~50% 정도면 톱클래스 사모펀드 회사로 꼽힌다. 업계에 따르면 실제 사모펀드 운용사들은 전문 투자형과 경영 참여형을 딱 나눠서 한 분야만 하는 게 아니라 투자금 규모나 펀드매니저의 전문 분야, 시장 상황 등을 고려해 둘 다 운영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한다. 조 후보가 가족 명의로 가입한 펀드는 경영 참여형으로, 가로등 자동 점멸기 생산 업체 '웰스씨앤티'에 투자해 최대 주주가 됐다. 펀드 가입 시점이 조 후보가 청와대 민정수석에 임명된 직후였고 이후 웰스씨앤티의 매출이 두 배가량 늘었는데 모두 관급 공사 수주였다. 조 후보자는 "블라인드 펀드(투자 대상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투자금을 모으는 방식)라서 어디 투자하는지 몰랐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업계에선 투자 대상을 미리 정하지 않는 블라인드 펀드 방식이라고 해도 무턱대고 돈을 모으진 않는다고 설명한다. 펀드매니저 이씨는 "투자금을 모을 땐 반드시 대략의 투자 계획이 들어간 투자 설명서를 투자자에게 제출하게 되어 있다"고 말했다. 투자 설명서에는 어느 정도 투자금을 모은 뒤 어떤 기업이나 주식·채권 등에 투자해서 어느 정도 수익을 낼 것이란 '큰 그림'이 들어가 있다. 업계에선 이런 투자 계획을 '쿠킹(Cooking·요리)'이라고 부른다. 이 '쿠킹'이 그럴듯해야 투자자가 모인다. 펀드매니저 이씨는 "별 투자 계획이 없어도 그냥 투자금을 맡기는 경우도 있는데 그런 경우는 펀드매니저가 업계의 수퍼스타일 경우"라며 "친·인척이나 지인 회사에 투자하는 경우라도 '쿠킹'을 보지도 않고 10억 넘는 돈을 투자하는 게 흔한 일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조용히 돈을 굴리려면 사모펀드로 가라
"부자들이 사모펀드 하는 이유 중 하나는 소문 안 나게 돈을 묻으려는 거죠. 부자들로선 돈 버는 소문 나서 좋을 거 하나도 없거든요."
올해 초 국내 10위권의 재벌 그룹 오너 집안 사람 하나가 서울 강남에 있는 사모펀드 회사 사무실을 찾았다. 그는 "집안 돈을 조용히 굴리고 싶다"며 "우리 집안은 건물 하나만 사도 신문에 이름 나고, 파는 사람도 괜히 값을 더 높게 부르기 때문에 직접투자가 어렵다"고 사모펀드에 투자하는 이유를 설명했다고 한다. 이 투자를 상담했던 펀드매니저 김모(44)씨는 "그분은 이미 투자할 물건까지 다 알아 왔더라"며 "이런 경우는 사모펀드 회사로선 거저 먹는 거나 다름없다"고 말했다. 재벌 그룹도 사모펀드를 통해 투자하는 경우가 있다. 한 재벌 그룹 관계자는 "우리 회사가 땅을 산다고 하면 지역사회에서 반대 여론이 터지기 때문에 사모펀드를 끼고 땅을 산 경우도 있다"며 "회사 이름을 내세워서 득 될 게 없는 투자라면 사모펀드를 통해 하는 게 훨씬 효율적"이라고 말했다.
사모펀드를 증여세 회피 목적으로 악용하는 경우도 있다. 가장 흔한 수법이 자녀에게 증여할 금액을 사모펀드에 투자한 뒤 자녀 이름으로 5000만원을 추가 투자하는 방식이다. 5000만원은 증여세가 부과되지 않는 상한선이다. 그런 뒤 투자 약정서를 쓸 때 약정 금액을 일부러 큰 금액으로 쓰고 그 돈을 모두 투자하지 않을 경우 이미 투자한 돈은 위약금으로 다른 투자자들에게 나눠 준다는 조항을 넣으면 된다. 예컨대 50억원을 약정한 뒤 본인 이름으로 10억원, 자녀 이름으로 5000만원을 투자하고 이후 추가 투자금을 넣지 않으면 10억원은 약정서 조항에 따라 자녀에게 돌아가게 된다. 이 경우 법적으로 투자 수익이 되기 때문에 증여세를 내지 않게 된다.
재벌가의 신종 '일감 몰아주기'에 사모펀드가 악용될 수 있다는 얘기도 나온다. 종전 일감 몰아주기는 공정거래위원회에 적발되기 때문에 재벌가 자제들이 사모펀드에 투자한 뒤, 그 사모펀드가 투자한 회사에 일감을 몰아주는 것이다. 펀드매니저 김씨는 "투자 약정서는 펀드와 투자자 간의 사적 자치 영역이고 투자라는 외피를 쓰고 있기 때문에 가능한 방식"이라며 "업계에선 이미 이런 식으로 증여한 재벌이나 부자들의 소문이 몇 건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대펀'이 제일 중요하다
"조 후보 사모펀드 이슈가 터진 다음에 업계 사람들끼리 '조국의 '네트워킹'이 저거밖에 안 되나'라는 게 화제였어요."
사모펀드 업계에서 10년가량 일한 펀드매니저 신모(40)씨 얘기다. 신씨는 "부산 지역 유지 집안에 서울대 법대 교수, 청와대 민정수석 타이틀이면 적어도 미래에셋 같은 업계 최고 회사의 상무나 전무가 직접 만나 영업을 뛰어도 될까 말까 하다"며 "서로 타이틀 보고 급 맞춰서 만나는 이 업계에서 조국 케이스는 이례적이다 못해 이상한 수준"이라고 말했다. 코링크의 핵심 펀드매니저 2명은 각각 보험사 부지점장 출신과 중소기업 회계 담당이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조 후보는 5촌 조모씨 소개로 코링크의 사모펀드에 투자한 것으로 확인됐다.
신씨는 "사모펀드에서 제일 중요한 게 '대펀(대표 펀드매니저를 가리키는 업계 용어)'"이라며 "보통 대펀은 서울대나 외국 명문대 출신에 해외 유명 사모펀드 근무 경력 등 이력서가 화려하고 정·재계 2~3세도 꽤 있다"고 말했다. MBK파트너스의 김병주 대표는 고(故)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의 사위로 하버드 MBA를 마친 뒤 골드만삭스에서 일했다. KKR 아시아총괄대표로 OB맥주 매각을 주도했던 조셉 배(한국명 배용범) 역시 하버드대를 나온 뒤 골드만삭스에서 일했고, 이내건 흥아해운 명예회장의 사위다. 신씨는 "정황으로 보면 조 후보가 5촌을 믿고 10억원을 맡긴 셈인데, 아무리 친척이라도 그 큰돈을 선뜻 맡기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며 "투자에 대한 확신이 있었거나 당사자들만 아는 어떤 '딜'이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수익률 높은 만큼 위험도 커… 다른 펀드 수익 올리는데 이용 당하기도
감독 느슨한 사모펀드, 사고도 많아
사모펀드가 항상 승승장구하는 건 아니다. 크게 얻을 수 있는 기회만큼이나 크게 잃을 위험도 있다. 수익률이 조금만 떨어져도 다른 펀드로 갈아타는 투자자도 많다.
실적을 내기 위해 불법·편법을 동원하는 사모펀드 회사들도 있다. 대표적인 게 이른바 '수익률 돌려막기'다. 대부분의 사모펀드 회사들은 여러 개의 펀드를 운용하는데, 한 펀드에서 수익률이 낮게 나오면 다른 펀드의 돈을 동원해 수익률을 인위적으로 끌어올리는 수법을 쓴다. 수익률이 낮은 펀드가 투자한 주식이나 회사 가치를 높이기 위해 고객의 돈을 끌어 쓰는 것이다. 최근 국내 톱클래스 사모펀드 회사 중 하나인 라임자산운용이 대형 증권사를 끼고 CB(전환사채) 편법 거래를 통해 '수익률 돌려막기'를 하는 것 아니냐는 의혹이 불거져 금융감독원이 조사에 나섰다. 게다가 이 회사는 내부 정보를 이용해 문제가 일어날 회사 주식을 미리 파는 수법으로 6억원대의 손실을 회피한 혐의 등으로 검찰 조사도 받는 중이다. 펀드매니저 신모씨는 "사모펀드는 굴리는 돈의 단위가 워낙 크기 때문에 수익률이 0.1%만 떨어져도 수억원이 허공에 날아가는 것"이라며 "정기적으로 투자자에게 수익률을 보고하면서 오는 압박 때문에 '수익률 돌려막기' 같은 유혹을 느끼는 펀드매니저들이 적지 않다"고 말했다.
부동산 같은 실물 자산에 투자하는 게 아니라 주식·채권이나 복잡한 금융 파생 상품에 투자하는 사모펀드는 원금을 몽땅 날리는 경우도 종종 생긴다. 최근 문제가 되고 있는 'DLS(파생결합증권·채권 금리에 연계된 파생 상품의 일종) 사태'가 그 단적인 예다. 우리은행·KEB하나은행과 일부 증권사 등은 작년 하반기부터 올해 상반기 사이 고액 예금자들을 따로 관리하는 프라이빗뱅커(PB) 등을 통해 인당 최소 1억원 이상의 투자금을 모았다. 이렇게 모은 돈 1조원가량을 사모펀드 형태로 운용했는데, 이 펀드가 투자한 파생 상품들에 문제가 생기면서 투자금 손실이 40~90%에 달하고 있다. 가입자 대부분이 개인 자산가이지만, 정부 고용보험기금도 이 펀드에 585억원을 투자했다가 현재 477억원을 손해 본 상태다. 원금의 8할을 날린 셈이다. 이 펀드에 2억5000만원을 투자한 허모(63)씨는 "은행에서 선진국 국채 같은 안전한 상품에 투자하기 때문에 절대로 안전하다며 가입을 권유하길래 믿었는데 1년도 안 돼서 1억원 넘는 손실을 봤다고 하니 기가 막힌다"고 말했다. 금감원은 은행이나 증권사가 고객들에게 이 펀드의 투자 상품에 대한 위험성을 충분히 고지했는지 여부 등을 조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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