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뜬 둥근 달처럼 위장이 커지는 날, 추석이다. 연휴 내내 기름진 밥에 고기에 나물에 송편과 각종 전을 줄기차게 먹어댄다. 부모님 모두 막둥이로 태어난 덕에 우리 가족은 명절이면 큰 집, 외갓집을 두루 다니며 그저 배불리 먹기만 하면 되었다.
명절 당일 큰아버지 댁에 가면 ‘새언니들’(큰아버지의 며느리들)은 전날부터 와서 추운 부엌에서 허리가 꺾어지라 일해도 ‘아가씨’인 우리는 아랫목에서 윷놀이하며 깔깔댔다. 재미로 만두라도 빚을라치면 “아서요 아기씨, 저희가 빚어야 삶아도 안 터져요.” 하며 손사래를 쳤다.
그뿐인가. 외갓집에 가면 여자들보다 더 부지런히 움직이는 외삼촌과 오빠들 덕에 밥상에 숟가락만 놓아도 (역시 외삼촌의 며느리들인) 언니들이 설거지해 놓은 그릇의 물기만 닦아도 “손이 야무지다” 칭찬받았다.
그러나 결혼이라는 굴레는 여지없이 곱게 자란 ‘딸’들을 ‘며느리’라는 거친 운명 속으로 밀어 넣었다. 엄마는 그 불행을 일찍이 예감하고 본인 품에 있는 동안만큼은 부엌일을 안 시키셨다. 설거지를 도우려 하면 “시집가면 원 없이 한다.”며 손에 물도 못 묻히게 하셨고, 당신은 밤새도록 산더미 같이 쌓인 고구마순 껍질을 벗기면서도 “이다음에 시집가면 이런 거 절대 하지 마라” 당부했다.
아버지가 직장에 계신 동안 딸 넷 중 둘은 시집보내야 한다는 목표에 따라 큰 언니와 둘째 언니는 학업을 마치고 서둘러 결혼식을 올렸다. 셋째 언니도 서른 넘어 연하남과 사랑에 빠지는 바람에 ‘결혼’의 늪에 빠지고 말았다.
딸을 셋이나 떠나보낸 부모님은 일련의 과정을 통해 (그 가슴 아픈 사건들도 언젠가 소개될 날이 있으리라) 나이 찼다고 서둘러 결혼시키는 것이 얼마나 무모한 일인지, 시집보낸 후 어떤 난관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는지, ‘딸 가진 죄인’이라는 말을 절절히 느낀 덕에 막내인 나는 열외가 되었다. 덕분에 난 여느 여인들이 겪는 ‘명절 스트레스’를 체험할 기회가 없었다.
너무 잘, 운 좋게 지나왔던 탓일까? 아버지와 둘이 살며 전혀 다른 차원의 명절 스트레스가 생겼다. 연휴가 전혀 반갑지 않고, 연휴가 길면 길수록 더 깊어지는 고민, 바로 ‘이번 연휴는 또 아버지와 뭘 하며 보내나?’ 하는 것이다. 가장 치명적인 변화였다. 집에 아들이 없으니 이런 때 아쉽구나! 처음으로 실감했다. 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25&aid=000293796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