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대학 거부자 3인 "문제는 대학 졸업 여부가 아닌, 대학에 부여한 지위와 특권"
[오마이뉴스 강연주 기자]
"따라 한다. 나도 서울대 갈 수 있다!"
1994년을 배경으로 한 독립영화 <벌새>에 나오는 말이다. 학생들은 담임선생님의 호령에 따라 위 구호를 여러 차례 반복한다. 처음엔 뚱한 표정으로 말끝을 흐리던 학생들도 결국 두 주먹을 불끈 쥐며 큰 목소리로 구호를 외친다. 프레임에는 모두가 한목소리로 '서울대'를 따라 하는 모습이 담긴다.
26년이 지난 지금도 상황은 같다. '2018 OECD 교육지표'에 따르면 고졸자 임금을 100으로 환산했을 때 대학원(석박사) 졸업자의 임금은 198이다. 전문대 졸업자의 임금은 116, 종합대 졸업자의 임금은 149로 환산됐다. 한 언론에서 제 20대 국회의원 당선인 300명의 출신대학을 분석한 결과, 서울대가 총 82명으로 1위를 차지했다. 소위 '인서울 대학교'라 불리는 대학교의 경우, 전체 인원의 약 62%였다.
여전한 한국사회의 '스카이 캐슬'인 학벌. 하지만 견고한 학벌주의 시대에 도전장을 낸 이들이 있다. 2011년도를 기점으로 '대학 거부'를 선언한 '투명가방끈' 활동가들이다. 학벌주의와 입시 경쟁주의를 반대하는 청소년 인권 단체로, 이름은 학벌이 낮은 사람들을 '가방끈 짧다'고 비유한 것에서 착안됐다.
하지만 이들의 행보에 대한 몇 가지 궁금증이 남는다. 이들은 왜 스스로 불안정한 삶을 택한 건지, 대학 거부 후 이들이 마주한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지, 이들의 현재는 어떨지에 대한 것이다. 답을 듣기 위해 지난 7일 '투명가방끈'으로 묶인 세 사람을 만났다. 인권운동사랑방 상임활동가 어쓰(활동명), 투명가방끈 상근활동가 피아(활동명) 그리고 청소년 인권모임 아수나로 활동가 공현(활동명)이다.
내가 대학을 거부한 이유
현재 이들은 시민단체에 소속돼 사회 운동을 하고 있다. 본래 사회 문제에 관심이 많았던 걸까? 모두 고개를 저었다. 각자가 속했던 당시의 환경이 자연스레 문제를 개선하기 위한 활동으로 이어지게 했다는 것. 그렇다면 이들 각자가 목격한 한국의 사회 문제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먼저 어쓰가 입을 열었다.
▲ 지난 7일 오후, 연남동 인근에서 대학거부자 3인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좌측부터 공현, 피아, 어쓰.
ⓒ 강연주
어쓰 : "제가 다니던 학교는 대학 잘 보내기로 유명한 사립고등학교였어요. 체벌과 학구열이 너무 심했죠. 뺨 맞아서 고막이 나가거나 허벅지 맞아서 근육 터지는 일이 흔했어요. 오전 7시부터 다음 날 오전 0시까지 학교에 있어야 하기도 했고요. 대학 잘 보내는 방법이 엄청나게 공부시키고 때리는 것이었던 거죠. 당시 자퇴는 물론이고 자살한 학생이 나온 적도 있었어요. 결국 저도 극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다 고등학교 1학년 때 자퇴를 했어요.
초반에는 학교를 나오고 나서도 정신적으로 힘들었어요. '내가 나약하거나 모자라서 이렇게 된 건가, 내가 잘못된 건가' 싶어서요. 하지만 청소년 인권 운동가들을 만나고 이들이 주장하는 얘기를 들으면서 문제의 원인이 학교에 있다는 걸 깨달았어요. 대학을 가지 않은 것도 이 연장선이에요. 현행 입시, 경쟁체제의 정점에 있는 대학을 거부한다는 상징성도 있었지만, 투명가방끈에서 말하는 현재의 교육방식과 이 사회에서 강요하는 경쟁을 거부해야 겠다는 생각에 공감했죠. 줄세우기식 교육을 바꾸진 못하더라도 일조해서는 안 되겠다고 생각했어요."
▲ 지난 7일 오후, 연남동 인근에서 대학거부자 3인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사진은 투명가방끈 상근 활동가 피아(활동명)다.
ⓒ 강연주
피아 : "전 사실 생존을 위해서 도망쳐 나왔어요. 집에서 부모님과 사이가 많이 안 좋았거든요. 맞는 일이 잦았어요. 이런데 학교에서는 한 마리의 경주마처럼 양옆 시야를 모두 가린 채 입시 하나만 보고 달려야 했고요. 청소년 인권 단체 '아수나로'를 알게 되면서 제가 속한 공간에서 어떤 게 문제였는지를 직시하게 됐어요.
대학을 가지 않는 이유는 다양해요. 금전, 생존의 문제로 가지 않는 경우도 있어요. 하지만 이런 맥락과 상관없이 대학을 가지 않았다는 이유만으로 사람의 삶의 질이 바뀌잖아요. 마치 사회가 벌주는 것처럼. 사회는 모두 여기에 수긍하는 분위기예요. 저는 이게 이해되지 않았어요. 학교 다닐 때 교과목만 공부하면 사회에서 그 많은 재화를 누리게 하는 게. 학벌만으로 한 사람에 대한 대우가 뒤바뀌는 게. 그래서 저 또한 이런 문제의식을 계기로 대학거부선언에 동참하게 됐어요."
내가 대학을 자퇴한 이유
공현은 앞선 두 사람과는 상황이 조금 다르다. 그는 서울대학교에 입학한 후 3학년 때 자퇴를 했다. 당시 그의 자퇴는 세간의 이목을 끌었다. 자퇴 후 그가 붙인 대자보 때문이다.
저번 주에 자퇴서를 냈는데
그가 교내에 붙인 대자보의 제목이다. 그는 대자보를 통해 입시경쟁 위주인 교육의 문제점을 지적하며 '학벌 중심의 사회를 바꾸기 위해 자퇴한다'는 이유를 밝혔다.
공현 : "제가 청소년 운동을 시작한 건 2005년도였어요. 당시에는 청소년 운동과 관련된 단체가 거의 없었을 때였죠. 대학 거부라는 언어나 행동방식도 없었고요. 그렇다 보니 대학을 안 간다는 생각을 못 했어요. 대학 준비는 하되 청소년 운동도 병행하는 게 당시 제가 했던 것이었죠.
2011년 대학거부선언에 동참하면서 대학을 나오게 됐어요. 청소년 운동 활동가로 산다면 대학 졸업장이 꼭 필요하지는 않겠다고 생각했거든요. 특히 선언에 동참하면서 대학 입학자라는 건 돌이킬 수 없지만 대학 졸업장을 받고 싶지는 않다는 생각이 컸고요."
N년 후, 지금
그렇게 대학을 거부하고 난 후, 이들이 마주한 사회는 어떤 모습이었을까? 세 사람 모두 답변이 달랐다.
피아 : "전 아르바이트와 사회활동을 병행했어요. 그렇다보니 아르바이트도 정말 많이 했죠. 그때 학벌이랄까, 사회적 차별도 참 많이 봤어요. 대표적인 게 약국에서 일 했을 때예요. 제가 일 할 당시 대학을 나오지 않으셨던 분이 저 말고도 한 분 더 계셨거든요. 마흔이 되신 분이셨어요. 잡일을 맡아주셨는데, 이분을 향한 멸시가 너무 자연스럽게 나오는 거예요. 작은 일을 해도 면박주고 없는 자리에서는 비난하고.
저한테는 아직 어리니까 공부 더 열심히해서 나중에 대학 가면 된다고 하더라고요. 저는 그 분을 보면서 혹여 대학을 가지 않은 내 미래가 저렇게 될까봐 너무 답답했어요. 단지 대학 하나 가지 않았다고 저런 차별과 멸시를 당연스레 받아들여야 한다는 건... 정말 화가 나고 답답했던 기억이죠."
공현 : "대학거부자들이 가장 어려워 하는 게 생계문제예요. 사회 운동과 생업을 병행하기가 어려워서 그렇죠. 청소년 인권 운동 기반이 약한 이유도 같아요. 주된 지지층인 청소년들은 경제력이 없고, 학생들이다 보니 외부 활동 시간도 한정적이죠. 대학거부자도 마찬가지로 생계 문제에 직면한 상태서 붙잡아 놓을 수도 없고요. 이 외에 힘들었던 점이라면, '어느 대학' 나왔냐는 물음? 제게는 그게 가장 어려운 질문이었고요."
어쓰는 교육의 폭이 좁은 것에 대해 아쉬움을 표했다.
어쓰 : "제가 일하는 인권단체에서는 전혀 접한 적 없던 새로운 의제를 직면할 때가 많아요. 이게 무슨 말인지 도통 이해되지 않을 때도 있어요. 가끔 '내가 대학을 가지 않아서, 배움이 충분하지 않아서 그런가' 라고 생각할 때가 있더라고요. 변명이죠. 사실 대학이 해결책일 수는 없으니까요.
결국 이것도 하나의 사회 구조적 문제라고 생각해요. 20살부터는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공간이 대학밖에 없는 거죠. 물론 요즘은 대안대학이라는 것도 나오고 있지만, 이곳도 굉장히 높은 학비로 유지되는 구조거든요. 물론 어떤 강좌나 세미나 등을 직접 찾아다니면서 공부를 할 수도 있지만 이 또한 일회성에 그치는 경우가 많죠. 어떤 체계적인 공부를 할 수 있는 곳이 한국 사회에 너무 부족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유지해온 현재. 두렵지는 않았을까?
피아 : "불안했죠. 틀에 갇히지 않아 자유로울 수는 있어도 막막하니까. 대학을 가지 않는 순간부터 당장의 내 미래를 유추할 수 없으니까요. 고등학교 때는 학교에서 그려준 대로 따라가면 됐는데 여기서부터는 제 창의력을 발휘해야 하는 거죠. 내 인생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해봐야 하는 거고. 삶의 본질적인 문제에 직면할 때마다 찾아오는 무기력함이 정말 힘들었어요. 또 사회에 만연해 있는 차별을 직접 볼 때 그게 제 미래의 모습이지는 않을까 두려운 적도 있었고요."
어쓰 : "피아님 말에 동의해요. 대학 취업 결혼... 흔히 생각하는 인생의 루틴에서 벗어나는 거니까요. 물론 사회적 압박에서 자유로워진 측면은 있어요. 하지만 자유로운 게 다 좋은 건 아니잖아요. 막막하고, 무거운 일이니까. 10년 뒤에 내가 어떻게 살고 있을지 도통 모르겠기도 하고요.
이때 힘이 된 게 사회적 네트워크였어요. 사회운동이 그 일환이고요. 그 덕에 지금까지 올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새로운 삶의 방식을 접하며 이 과정에서 어떤 관계를 맺을 수 있다는 게 제가 운동하면서 얻은 큰 자원이었어요."
▲ 지난 7일 오후, 연남동 인근에서 대학거부자 3인을 만나 인터뷰를 나눴다. 좌측부터 투명가방끈 활동가 공현, 그리고 피아다.
ⓒ 강연주
대학을 가지 않은 것을 후회한 적은 없었을까?
공현 : "우리가 세상 모든 걸 다 알아야 하는 건 아니잖아요? 대학을 가야 보이는 것들이 있다, 없다는 말은 중요하진 않다고 봐요. 한국 사회가 대학에 부여한 지위와 특권이 문제인 거죠. '대학을 안 간 건 문제가 있다'라거나 '대학을 간 게 더 정상적인 거고 더 똑똑한 거다'고 생각하는 편견들이요."
어쓰 : "대학에서 배우는 게 분명히 있다고는 생각해요. 2년 혹은 4년. 오랜 기간 동안 한 공간에서 체계적인 공부를 하는 거요. 하지만 삶의 모든 과정이 성장이고 변화라고 생각한다면 대학이 더 특별하다고 느껴지진 않아요. 또 대학을 안 가야 보이는 것도 있다고 생각해요. 대학을 가야만 알 수 있다고 말하는 게 얼마나 갇혀 있는 말인지 알 수 있거든요."
피아 : "사실 저희가 입시 제도에서만 벗어났을 뿐이지 사회라는 큰 틀 안에서 사는 건 마찬가지예요. 다만 문제를 느끼는 무게에 차이가 있다고 봐요. 사회에서 학력의 높고 낮음으로 대우가 달라지는 게 바뀌지 않으면, 아무리 학교에서 교사와 학생의 권리가 평등해지더라도 바뀌는 게 없다고 생각해요. 여전히 이런 문제가 지속되기 때문에 해야 하는 게 사회 운동인 거고요."
만일 이들과 같은 고민을 하는 사람이 있다면 본인들의 삶을 권유해줄 수 있을까.
어쓰 : "그런 선택지를 내어줄 수 있는 사회가 되는 게 먼저인 것 같아요. 개인이 이런 선택을 내리는 게 얼마나 힘겨운 일인지 알고 있으니까요. 그래서 선뜻 제안하기는 어려울 것 같아요. 하지만 그의 고민을 들어주면서 대화를 나누겠죠. 동시에 좀 더 솔직히 얘기도 할 거예요. 대학을 안 가기로 선택한다면, 지금 한국 사회에서는 일정 부분 삶이 더 힘들어질 수 있다는 것을. 하지만 대학을 간다고 해서 삶이 꼭 행복해지는 건 아니라는 얘기도."
각자가 선택한 삶의 길을 각자의 방식으로 걷고 있는 세 사람. 이들에게 마지막으로 '10년 후에도 현재 선택한 길을 걷고 있을지'를 물었다.
공헌 : "분명 관련 활동들을 계속하고 있겠죠. 청소년 운동을 대중화하는 게 제가 오래전부터 꿈꿔 온 것이었거든요. 일종의 노동조합 같은 조직을 만들고 싶어요. 그러니 10년 후에는 지금보다 더 안정적인 기반을 갖춰서 그 윤곽을 드러내야 하지 않을까 해요(웃음)."
피아 : "대학거부자로서 앞으로의 미래에 관해 묻는 질문을 많이 받았는데 아직 어떤 모습이라고 말하기엔 불투명한 지점이 많아요. 더 많은 활동을 접하다 보면 선명해지겠죠. 일단 지금은 투명가방끈 활동을 비롯해 현재 하는 활동들을 지속해나가고 싶어요."
어쓰 : "인권이 단순히 도덕책에 나오는 좋은 말, 착한 말이 아니라 실제 사람들의 삶에 깊숙이 개입할 수 있도록 하는 것. 이게 제가 하는 인권 운동의 목표예요. 10년 후에는 인권도 어떤 법적인 영향력을 갖춘 사회가 됐으면 하는 게 제 바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