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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의전당, 3.1운동 음악회에서 친일파 노래 '열창' |
유빈유나맘 |
2019-09-22 조회 : 32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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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운동 100주년'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을 표방한 음악회에서 친일파 작품이 공연되는 것도 모자라 그런 작품이 피날레를 장식한다면, 어이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그것도 문화예술진흥법에 의해 설립된 기관이 주관한 행사라면, 더욱 더 그럴 것이다.
예술의전당이 지난 8월 30일과 9월 21일 주최한 '2019 예술의전당 가곡의 밤'은 3·1운동과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해 열린 음악회다. 그런데 이 행사에서는 친일파 작품들이 대거 공연됐을 뿐 아니라 두 공연 모두 친일파 작품들로 피날레가 장식됐다.
8월 30일 토요일의 첫날 공연은 국군교향악단의 <독립군가 메들리> 연주로 시작했다. 그런데 공연 중간에 친일 작곡가 김동진의 <목련화>와 <진달래꽃>이 불려지더니, 피날레에서는 관객과 출연진의 합창으로 <선구자>가 불려졌다. <선구자>는 친일파 윤해영이 작사하고 친일파 조두남이 작곡한 가곡이다. 독립군의 노래와 친일파의 노래가 동일한 무대에서 연주된 것이다.
예술의전당은 선곡에 대해 "올해는 3.1운동·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맞아 우리가곡들 중 많은 사랑을 받고있는 레퍼토리 중에서 '조국과 사랑', '그리움'이란 주제로" 곡을 골랐다고 홈페이지에 밝히기까지 했다.
친일은 물론 해방 후 독립운동가 행세까지
▲ 첫날 공연에서 제공된 팸플릿의 촬영본. <오마이뉴스> 독자 김태래 씨가 제공한 파일.ⓒ 김태래
태풍 때문에 2주 연기된 9월 21일 토요일에 열린 둘째 날 공연에서는 친일 작곡가 김성태의 <동심초>, <이별의 노래>와 김동진의 <가고파>가 불려졌다. 특히 <이별의 노래>는 공연의 피날레를 장식했다.
두 공연 모두 친일파 작품이 엔딩곡이 된 것이다. 다른 공연도 아니고 3·1운동 및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에서 친일파 작품이 가장 빛나는 위치에 놓인 것이다.
▲ 둘째날 공연의 팸플릿.ⓒ 김종성
KBS 2TV <불후의 명곡-전설을 노래하다>는 3·1운동 100주년 특집인 3월 9일 방송에서 친일 작곡가 박시춘의 작품을 들려줬다가 비판을 받았다. 그날 연주된 <비 내리는 고모령>은 '어머니의 손을 놓고 돌라설 때엔/ 부엉새도 울었다오 나도 울었소'라는 가사로 시작한다. 이 노래 내용 자체는 일본을 찬양하지는 않지만, 일본을 찬양했던 사람의 영혼이 실린 노래다. 그래서 3·1운동 100주년 특집에는 부적합한 노래다.
박시춘은 1942년부터 일본제국주의를 위한 군국가요를 13곡이나 작곡했다. <혈서지원>, <아들의 혈서>, <결사대의 아내>, <아세아의 합창> 등을 만들었다. 그런 친일파의 노래를, 다른 명의도 아니고 3·1운동 100주년 특집으로 내보냈으니 공영방송 KBS가 비판을 받지 않을 수 없었다.
8월 30일과 9월 21일 예술의전당 공연에 소환된 친일 작곡가들은 박시춘보다 훨씬 더 무게 있는 인물들이다. 일제강점기 당시의 영향력으로 보나 해방 이후의 사회적 위치로 보나 그러하다. 그런 이들의 작품이 3·1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 등장했으니, 친일 문제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인식 수준이 어느 정도인지 짐작할 수 있을 것이다.
첫날의 <목련화> 및 <진달래꽃>과 둘째 날의 <가고파>를 작곡한 김동진은 만주국 수도 신징(신경, 지금의 창춘)에서 일본과 한국·만주·중국·몽골 5족(族)의 공존공영과 일왕(천황) 지배 하의 낙원 건설을 찬미한 친일파다.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은 그의 친일 행적 중 일부에 관해 이렇게 말한다.
"1943년 1월 신징기념공회당에서 만주악단협회와 신징음악단 공동 주최로 열린 '(만주국) 건국 10주년 경축 악곡 발표회'에서 관현악곡 <건국 10주년 경축곡>, <양산가>와 합창곡 <건국 10주년 찬가> 세 곡을 직접 작곡하고 지휘해 발표했다. <양산가> 이외의 두 작품은 오족협화와 왕도낙토의 만주국 통치 이념, 그리고 일본의 대동아 건설을 그린 작품이다."
<선구자>의 작곡자 조두남은 일제강점기 때 일본을 찬미한 것도 모자라, 해방 뒤 애국자로 가장하기까지 했던 인물이다. 독립운동과 조금도 관련 없는 <선구자>를 독립투쟁과 연관시키기까지 했다. 그가 인터뷰 등을 통해 그런 거짓말을 했다는 점은 2015년 2월 발행된 <관훈저널> 제137호 등에서 확인할 수 있다.
<선구자>가 독립운동과 무관한다는 점은, 조두남과 함께 만주에서 활동한 조선족 기타리스트 김종화의 증언에서도 나타난다. 이 증언을 다룬 1996년 11월 27일자 <한겨레>는 "항일 독립의 기상을 표현한 가곡 <선구자>의 원 제목은 <룡정의 노래>였으며, 가사도 현재와는 전혀 다른 내용이었다고 중국의 한 조선족 음악가가 주장해 관심을 모으고 있다"고 보도했다. 그런 뒤 이렇게 말했다.
"그는 <룡정의 노래>가 44년 봄 헤이룽장성 무단장(목단강)시 인근의 닝안(영안)에서 열린 조두남 씨의 신곡 발표 공연에서 첫 선을 보였다면서, 당시 가사에는 '활을 쏘던 선구자', '조국을 찾겠노라 맹세하던 선구자' 따위의 구절은 없었으며, 그 대신 '눈물의 보따리', '흘러온 신세' 같은 유랑민의 설움이 주조를 이루었다고 돌아봤다."
1944년이면 조두남이 한창 친일을 할 때였다. 그런 시기에 자기가 독립운동을 생각하며 <선구자>를 작곡했노라고 해방 뒤에 거짓말을 했던 것이다. 김종화씨가 증언한 것처럼, 해방 뒤에 가사를 바꿔놓고 그렇게 위장했던 것이다.
<동심초>와 <이별의 노래>를 작곡한 김성태는 군국가요뿐 아니라 일본 국민가요까지도 퍼트리는 데 열성을 보인 친일파다. 총독부가 만든 친일 영화 <농업보국대>의 음악을 담당한 적도 있다. 그의 친일 활동 중 일부는 아래와 같다. <친일인명사전>의 설명이다.
"1942년 1월 라디오로 방송된 <아세아의 힘>, <미·영 격멸가>, <기쁘다 마닐라 함락>, <남진 남아가>, <흥아 행진곡>, <태평양 행진곡> 등을 부르는 경성방송혼성합창단을 지휘했다."
"이러니 아베가 대한민국 무시하는 것"
이런 친일파들의 작품이 예술의전당에서 연주되는 것을 보고 심리적 혼란을 경험한 관객이 있다. 첫번째 공연을 관람한 <오마이뉴스> 독자 김태래씨가 그 주인공이다. 그는 첫날 공연에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다"는 느낌을 받았다. 3·1운동 100주년 기념을 표방한 음악회에서 친일파 작품들이 울려퍼졌기 때문이다.
8월 30일 밤 서울에서 공연을 관람하고 밤늦게 귀가한 김태래씨는 다음날 오전 두 차례의 이메일을 통해 공연 소감을 보내줬다. 일종의 제보였다. 팸플릿을 촬영한 파일과 더불어 동영상 파일은 별도로 보내줬다. 이메일에서 그는 이렇게 토로했다.
"8월 31일 토요일 오후 7시 30분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가곡의 밤'에 다녀와서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프로그램을 보고 '이건 아니다' 싶었습니다.
발표된 가곡 중 김동진의 곡이 두 곡이나 있었고, 프로그램 말미에는 전 출연진과 사회자를 포함하여 관람객 모두가 <선구자>를 합창을 하는데... 3·1운동과 대한민국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음악회에서 대표적인 친일파인 윤해영 작사 조두남 작곡의 <선구자>를 거리낌없이 합창하는 현실이 너무나 안타까웠습니다.
친일청산을 제대로 하지 못해서 무의식적으로 남아 있는 친일의 잔재를 언제 깨끗하게 씻어낼 수 있을지... 그러기에 아직도 아베 같은 인물들이 대한민국을 우습게 여기는 게 아닐까요?"
▲ 김태래 씨의 이메일.ⓒ 김종성
김태래씨가 보내준 이메일들과 파일을 받게 되니, 이 공연에 관심을 갖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3주 만에 열리는 둘째 날 공연에 가보게 됐다. 가봤더니, 이번에도 친일파 김동진이 한번 더 등장하고 친일파 김성태의 곡이 피날레로 연주되는 상황을 직접 접하게 됐다.
예술의전당은 한국 최대의 공연 시설일 뿐 아니라 문화예술진흥법을 근거로 운영되는 기관이다. 이 법 제37조는 제1항에서 '문화예술을 창달하고 국민의 문화 향유 기회를 확대하며, 그 밖에 문화예술 진흥을 위한 사업을 추진하기 위하여 예술의 전당을 둔다'고 한 뒤 제4항에서 '국가는 예술의 전당의 원활한 운영을 위하여 필요하면 국유재산법에도 불구하고 대통령령으로 정하는 국유재산을 예술의 전당에 무상으로 양여할 수 있다'고 규정했다.
이런 기관이 3·1운동 100주년 기념 음악회에서 친일파들의 작품을 생각 없이 틀어주는 것은 황당하고 어처구니없는 일이 아닐 수 없다. 작품에 대한 기본적인 체크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3·1운동 100주년 기념 행사를 열었다는 말이 된다. 우리 사회의 '친일 인지(認知) 감수성'이 어느 정도인지 절감케 하는 사례라 할 수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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