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종로구 돈의문 부근에 자리한 스위스대사관. 올해 5월에 새로 지어졌다. 스위스대사관 제공.
서울 종로구 돈의문 터 가까이에는 고층아파트 사이로 3층 높이의 주한 스위스대사관이 자리하고 있다. 1974년부터 40여년 동안 사용해온 건물을 허물고 지난 5월 새롭게 지었다. 한옥을 현대식으로 해석한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대사관 건물은 말굽에 대어 붙이는 편자를 닮았는데, 너른 마당을 지나 건물 안으로 들어서면 통유리 너머로 바깥 풍경이 들어온다. 선조들이 한옥을 지을 때 창이나 문, 또는 기둥과 기둥 사이로 바깥 경치를 빌려온 ‘차경’의 멋을 대사관 건축물에 적용한 결과다. 스위스대사관 국제설계공모 당선작 제목은 ‘스위스 한옥’이었다. 한옥처럼 내부는 주로 나무를 이용했다.
이곳과 달리 프랑스대사관은 애초 모습을 살리는 공사가 예정돼 있다. 서대문구 충정로역 인근에 자리한 프랑스대사관은 1962년에 완공돼 ‘한국 전통건축의 현대적 해석’이라는 평을 듣는 건축물이지만, 그 원형이 상당 부분 훼손됐다. 아파트의 창시자이자 현대건축의 아버지로 불리는 프랑스 건축가 르코르뷔지에 아래서 건축을 배운 김중업 건축가가 한옥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 이곳은 내년에 재건축이 예정돼 있다. 지난 1일 부임한 필립 르포르 주한 프랑스 대사는 “프랑스대사관은 한국과 프랑스 공동의 문화유산으로 한국과 프랑스의 문화, 예술, 건축이 한데 담겨 있다”고 말했다.
오랜 시간 원형을 유지하고 있는 대사관도 있다. 서울 덕수궁 돌담길을 걷다 보면 만날 수 있는 영국대사관저가 대표적이다. 이곳은 1892년에 완공돼 130년 가까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한옥 기와에 커다란 철제문으로 가로막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대사관 사무동, 일반 외교관이 쓰는 관저, 대사관저가 나온다. 외교관저에는 빅토리아 여왕 시대에 지어진 건물이라는 뜻으로 브이(V)와 아르(R)라는 표기가 건물 정면에 새겨져 있다. 영국대사관 터는 1882년 조선과 영국이 통상조약을 맺은 지 1년이 지나 당시 조지 애슈턴 주일 영사가 100파운드(한화 17만원)에 사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주한 대사관에는 건축의 아름다움만이 아니라 근현대사의 자취도 고스란히 남아 있다. 중구 정동 덕수궁 뒤에 있는 미국대사관저의 옛 ‘미국공사관’ 건물에는 ‘1883-1905’라는 안내 문구가 보인다. 1905년 을사조약으로 대한제국이 외교권을 박탈당하면서 외교 관계를 맺을 수 없었던 역사가 담긴 문구다. 대사관저 터는 미국이 서구열강 최초로 1882년 조선과 수교를 맺은 뒤 1884년 조선 왕실로부터 매입했다.
한국에 속하면서도 외국의 영토이기에 좀처럼 열리지 않은 주한 대사관 6곳이 20일부터 ‘2019 서울도시건축비엔날레 오픈하우스서울' 행사를 통해 공개됐다. 이 행사는 도시의 장소를 재발견하고자 그동안 개방되지 않던 도시공간을 여는 축제다. 프랑스, 스위스, 영국, 이집트, 캐나다 대사관과 미국대사관저가 참여했으며, 행사는 29일까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