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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번 방이 내 방" 재개발 멈추게 한 할머니의 증언
자진모리 2019-09-23     조회 : 324

[대한민국임시정부 100년, '임정로드'를 떠나다] 열 번째 이야기, 리지샹위안소

[오마이뉴스 글:조종안, 편집:최은경]

 
▲  난징 리지샹위안소 유적전시관 건물
ⓒ 조종안
 
전통도시 난징(남경)은 역사적으로 '영고성쇠'를 거듭하였다. 옛 지명은 금릉(金陵), 세계 최대 규모의 성곽도시로 알려진다. 난징은 서기 229년 손권(孫權)이 오(吳)나라 도읍을 정한 후 진(晉)·송(宋)·제(齊)·량(梁)·진(陳)·명(明)·중화민국 등 여덟 개 국가 수도였다. 이처럼 많은 정권이 도읍지로 삼았으나 모두 단명으로 끝난 안타까운 기록을 간직한 도시이기도 하다.

중국 근대사에서 가장 비극적인 사건은 1937년 일본군에 의해 자행된 '난징대학살'로 꼽힌다. 그해 여름 중국을 침략한 일본군은 철옹성 같은 상해를 단박에 무너뜨리고 12월 수도인 난징을 점령한다. 그 과정에서 무고한 주민을 잔인하게 살육했으며, 부녀자와 어린아이도 무참히 강간하고 약탈하였다. 그중 가장 대표적인 사건이 '난징대학살'이다. 이 사건으로 30만 명이 넘는 중국인이 처참하게 학살당했다.

일본군의 야만적인 행위로 국제적인 비난이 쏟아지고, 군부대 내 성병이 날로 심각해지자 일제는 위안부 제도를 본격적으로 추진한다. 따라서 일본군이 주둔한 중국 전역에 위안소가 설치되는데, 난징에만 40개가 넘는 위안소가 있었다고 전한다. 그 과정에서 한국, 중국 등 동남아 각지에서 수많은 소녀가 강제로 끌려와 일본군의 성노예가 되었다.

일본군은 상해와 난징에서 세계사에서 찾아보기 어려운 민간인 학살과 성폭력을 자행했다. 기록에 따르면 중국 위안부 상당수가 일본군의 성적 학대를 견디다 못해 삶을 포기했으며 살아남은 사람도 지체 장애나 출산능력 상실, 극심한 심리적 고통에 시달렸다. 그런데도 일본 정부는 80여 년이 지난 지금도 사과나 반성을 하지 않고 있다.
 
오욕의 역사도 기록하고 복원해야
 
▲  리지샹 위안소에 대해 설명하는 김종훈 기자
ⓒ 조종안
 
지난 6월 1~8일, 기자는 대한민국임시정부 26년의 발자취(상하이에서 충칭까지)를 따라 걷는 '임정로드 탐방단 1기' 단원으로 중국에 다녀왔다.
 
탐방 넷째 날(4일)은 역사의 도시 난징에서 시작했다. 오전 8시 30분 호텔을 출발, 중국 현지 가이드와 <오마이뉴스> 김종훈 기자(<임정로드 4000km> 저자) 안내로 난징대학을 돌아보고, 리지샹위안소 유적진열관으로 이동했다.
 
현지 가이드는 '리지샹위안소 유적진열관(利?巷慰安所 舊址陳列館)'은 내부 촬영이 금지되어 있다며, '리지샹'은 거리 이름에서 비롯됐다고 귀띔한다. 규모가 큰 일본군 위안소가 '리지샹'이라는 골목(현 위치)에 실제 있었다는 것. 그래서 그런지 유적 진열관 인근 지명도 리지샹(利?巷)이었다.
"여기가 2015년 12월 1일 개관한 리지샹 위안소입니다. 재개발 현장이었는데 2003년 11월 박영심 할머니가 와서 '내가 생활하던 방이 두 번째 건물(B동) 19번 방'이라고 증언하니까, 재개발이 멈춥니다. 대단하죠. 그리고 난징 중심지에 있던 동양 최대 규모의 위안소 8개 가운데 6개를 복원합니다. 그래서 건물이 여섯 동 있어요. 일본군들이 사용했던 콘돔, 여성 생식기를 검사했던 틀, 박영심 할머니가 매를 맞았던 장소까지 다 복원해놓았죠.
 
저기 벽면의 사진, 베트남, 홍콩, 대만, 중국 등의 위안부 피해자분들 보이시죠. 그중 절반이 한국 할머니이에요. 이 점이 중요한 겁니다, 이 점이. 우리 오욕의 역사... 왜 우리는 이런 거 하나 제대로 복원을 못 하는지. 기억도 못 하고...(허탈한 표정) 저기 동상(銅像) 보이죠. 박영심 할머니가 이곳에 3년 있다가 송산위안소에 갔을 때 임신을 합니다. 나중에 유산하죠. 그 할머니의 아픔을 저렇게 남겨놓은 거예요. 저쪽에 있는 저 동상으로..."
 
▲  리지샹 위안소 마당의 박영심 할머니 동상
ⓒ 조종안
 
매년 8월 14일은 '일본군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

김종훈 기자는 마당에 세워진 동상(박영심 할머니 임신한 모습)을 가리키며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할 게 있습니다, 김학순 할머니입니다"라며 "박영심 할머니가 북측 최초 증언자였다면 김학순 할머니는 91년에 남측 최초로 증언하신 분이죠, 그분들 증언이 위안소 복원에 결정적 역할을 했던 겁니다"라고 덧붙였다.
 
기록에 따르면 김학순 할머니는 1991년 8월 14일 기자회견을 통해 자신의 위안부 피해 사실을 처음으로 공개했다. 당시 김 할머니는 '잘못된 위안부 관련 내용이 뉴스에 보도되는 걸 보고 바로잡아야 한다는 생각에 기자회견을 하게 됐다'고 밝혔다. 이후 8월 14일은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리는 국가기념일로 정해졌고, 정부는 해마다 행사를 개최하고 있다.
 
두 번째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기림의 날'이었던 지난 8월 14일, 문재인 대통령은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글에서 "우리가 오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기릴 수 있었던 것은 28년 전 오늘, 고 김학순 할머니의 피해 사실 첫 증언이 있었기 때문"이라며 "정부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존엄과 명예를 회복하기 위해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다짐했다.
 
리지샹위안소 유적진열관에서

리지샹위안소 유적 진열관에는 게시물 1600여 점과 사진 680장이 참혹했던 당시 상황을 생생히 보여주고 있다. 몇 장의 사진과 자료만으로도 일본군이 중국에서 어떤 만행을 어떻게 저질렀는지 감지된다. 만주 하얼빈의 731부대 생체실험 전시장에서 봤던 참혹한 모습들이 시나브로 떠오르면서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비인간적인 행태에 몸서리가 쳐진다.
 
군용임을 나타내는 '돌격 일번'과 별 마크가 선명한 콘돔도 보인다. 성병 치료제 연고인 성비고(星秘膏)와 위안부를 정기적으로 검사했던 산부인과용 시술 도구도 전시되고 있다. 일제가 위안소를 조직적으로 운영했음을 실증적으로 보여주는 유물들이다. 일본군들이 위안소에 들어가기 전 콘돔과 연고를 지급받았을 거라 생각하니 분노가 치솟는다.

무척 지치고 괴로워 보이는 모습의 위안부 네 명과 한 남자가 활짝 웃고 있는 사진 역시 충격적이다. 신영전 교수(임정로드 탐방 단원)는 "이 사진 속 남자가 일본군, 혹은 일본 종군기자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은 그렇지 않다"라며 내력을 설명했다.
 
"많은 사람이 이쪽 이 남자를 일본군으로 알고 있는데 아니에요. 제가 일본사람들을 만나 이 사진을 보여주면 정색을 해요. 비참한 상황에서 웃고 있는데, 일본군이 아니라는 거죠. 여기(안내문)에 보면 일본군 위안소에서 네 명의 조선 위안부를 구출한 중국군이고, 배가 부른 여성이 고통스러운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고 돼 있어요. 만삭의 몸으로 고통스러워하고 있는 오른쪽 첫 번째 분이 바로 박영심 할머니죠."
 
박영심 할머니가 온갖 능욕을 당하며 3년을 머물렀던 방으로 이동했다. 앳된 한 소녀가 성노예로 갇혀 있던 공간이다. 한쪽 구석에 덩그러니 놓여 있는 낡은 화장대, 주전자, 거울, 침상 등을 혼이 나간 사람처럼 한참을 들여다본다. '초개같은 목숨'이란 말이 있다. 하지만 생명은 질긴 것. 차마 죽지 못해 하루하루 견뎌냈을 할머니 모습이 그려지면서 울컥해진다.
 


마음을 가다듬고 찬찬히 들여다보니 낯익은 모습도 보인다. 이옥선 할머니다. 이 할머니는 2015년 8월 군산 동국사 경내에서 열린 '평화의 소녀상' 제막식에 참석, 열네 살 때 심부름 다녀오다가 길에서 강제로 트럭에 태워져 만주 일본군 위안소로 끌려가 당했던 고초를 힘겹게 증언해서 사람들 마음을 아프게 하였다.
 
이 할머니는 울먹이며 "일본은 열두세 살짜리 처녀들을 총으로 쏴 죽이고, 칼로 찔러 죽이고 했으면서도 위안소가 없었다고 거짓말하고 있다. 일본의 이런 태도 때문에 더 화가 나 명예회복과 배상을 요구하는 것"이라며 "나는 몇 번 도망쳤지만 금방 붙잡혔다. 그때마다 폭행을 당하고 심지어 팔다리를 칼로 찌르기도 했다"라고 해서 행사장을 숙연하게 했다.
 
진열관을 나서려다가 '끝없이 흐르는 눈물'이란 이름이 붙은 한 할머니 조각상 앞에서 멈춘다. 조각상 아래에는 '그녀의 눈물을 닦아 달라'는 문구와 함께 손수건이 놓여 있다. 밭고랑처럼 움푹 팬 주름살, 그 사이로 눈물이 끊임없이 흘러내린다. 당사자들의 진심 어린 사과가 없어서일까. 손수건으로 닦고 또 닦아도 눈물이 멈추지 않는다.
 
김종훈 기자는 "중국 정부는 난징에 아시아 최대 규모 위안소를 개관했는데, 위안부 할머니들을 기억하고 지켜줘야 할 박근혜 정부는 그해(2015) 12월 28일 일본으로부터 지원금 10억 엔(100억 원)을 받으면서 대단한 결단이라도 한 것처럼 '최종적이고 불가역적'이라는 말도 안 되는 위안부 협상 타결 발표로 할머니들을 모욕했다"라며 씁쓸해했다.
 
치미는 분노와 충격을 억제하며 힘겹게 돌아본 리지샹위안소 유적진열관, 일행은 더욱 무거워진 발걸음으로 버스에 올라 조선혁명간부학교 훈련소였던 천녕사로 이동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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