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니투데이 김진형 기자, 권화순 기자] ['소득·재산 있거나 연락두절만 소멸시효 연장'...'기계적 기한이익상실'→사전 채무자 면담 유도]
대출채권은 5년이 지나면 소멸시효가 완성돼 채무자는 더이상 변제의무가 없다. 하지만 일부 채무자는 2003년 카드 사태 때 연체한 대출로 지금까지 시달리고 있다. 금융회사들이 소멸시효를 계속 연장시키기 때문이다.
정부가 금융권의 관행적 소멸시효 연장에 제동을 건다. 소득·재산이 있는데도 갚지 않거나 연락이 두절된 채무자가 아니면 원칙적으로 소멸시효를 완성시키도록 하는 방안이다.
3일 금융권에 따르면 금융위원회는 다음주부터 '연체채권 관리 체계 개선 TF(테스크포스)'를 가동하고 연내 개인부실채권 처리 관행 개선 방안을 마련한다. 연체 발생 후 이어지는 기한이익상실, 소멸시효 연장, 채권추심 관행까지 부실채권 처리의 전 과정에 대한 '수술'이다.
금융당국은 우선 금융회사들이 기한이익상실 전에 채무자와 면담토록 유도할 방침이다. 신용대출은 연체후 30일, 주택담보대출은 연체 후 60일이 지나면 기한이익상실 대상이다. 기한이익이 상실되면 대출만기는 의미가 없어진다. 대출원금을 전액 상환해야 하고 갚을 때까지 높은 연체이자도 부과된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기계적으로 기한이익을 상실시키는 나라는 전세계적으로 우리와 일본 정도밖에 없다"며 "금융회사도 대출을 상환받는 것이 이익이기 때문에 채무자와 협의해 채무조정을 거치도록 하는 것이 서로에게 도움이 된다"고 말했다.
소멸시효 문제는 '원칙적 연장·예외적 연장'의 관행을 '원칙적 완성·예외적 연장'으로 전환시키는 것이 목표다. 민법상 대출채권의 소멸시효는 5년이다. 소멸시효가 완성되면 채무자는 더 이상 변제 의무가 없다. 하지만 금융회사는 소멸시효가 임박한 대출채권에 대해 법원의 지급명령을 받아 10년씩 연장시킨다. 나중에 회수할 수도 있는데 소멸시효를 완성시켰다 책임을 져야 할수도 있기 때문이다.
금융권은 현재 자율 규정을 통해 채무자가 70세 이상 고령자, 중증장애인, 기초수급자 등일 경우 소멸시효를 완성시키도록 하고 있다. 금융당국은 소멸시효 '완성'의 조건을 열거하는 지금과 반대로 소멸시효 '연장' 조건을 제시하고 나머지는 원칙적으로 완성시키도록 할 방침이다.
'5년만 버티면 안갚아도 된다'는 도덕적 해이를 조장할 우려가 있지만 갚을 수 있는 소득이나 재산이 있는 경우, 의도적으로 연락을 피하는 경우 등은 연장할 수 있도록 하면 부작용을 최소화할 수 있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5년간 추심을 하면서 채무자의 소득이나 재산 상태를 파악할 수 있다"고 말했다. 특히 소멸시효를 완성시킨 직원이 책임을 져야 하는 상황이 없도록 면책제도도 손볼 계획이다.
추심시장도 수술 대상이다. 금융위와 지자체에 등록된 채권매입추심자는 작년말 기준 1100여개에 달할 정도로 난립돼 있다. 과도한 추심을 제한하는 '공정채권추심법', '채권추심 가이드라인'이 있지만 폭행 등 위력 사용 금지, 야간 접촉과 하루 2회 초과 접촉 금지 등의 행위 규제 중심이다. 금융당국 관계자는 "추심업자들은 회수율을 높여야 돈을 버는 구조이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강한 추심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며 "채무자와 추심업자의 이해를 일치시키는 방향으로 관행을 바꿔나가야 한다"고 말했다.